[이야기의 힘] 어우러져 피어야 할 유월에

신현랑 소설가·㈜플립온코리아 지역문화콘텐츠연구소장 2025. 6. 2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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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랑 소설가·㈜플립온코리아 지역문화콘텐츠연구소장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은 기습적이었다. 여유로운 일요일 여명이 시작될 찰나였고 일부 군인들은 휴가 중이었다. 한반도 적화통일의 기치를 세우고 북한군이 몰려왔다. 준비되지 않은 남쪽 땅은 순식간에 초토화되었다.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북한군을 막기 위해 한강대교와 철교가 끊어졌고 대전, 대구를 거쳐 부산에 임시 수도가 정해졌다.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며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전쟁은 깊은 상흔을 남겼다. 소년병, 젊은 군인뿐 아니라 민간인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경북은 낙동정맥을 낀 영덕군에서 민간인 희생자가 가장 많이 발생했다.

영덕에서 유독 민간인 희생자가 많았던 건 6·25 전쟁을 전후하여 국군과 빨치산의 대립이 심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영덕군인민위원회와 사회단체 활동가들은 조선공산당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이들을 빨치산이라고 불렀는데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명망 있는 인사도 더러 있었다. 빨치산은 게릴라전을 벌여 일부 지역의 행정권을 쟁탈하기도 했다.

영덕 지역에서 좌우 세력의 경쟁과 갈등은 전쟁 전부터 있었기에 공무원 가족들과 이장들의 피해가 컸다. 평소 알고 지내던 빨치산을 도와주면 국군에게 피해를 입었고, 국군편을 들면 빨치산에게 당했다.

영덕문화관광재단에서 펴낸 '영덕 옛이야기와 어르신들의 이야기' 동화 중에 축산면 관련 전쟁 일화가 있다.

인민군이 폭격 맞은 탱크를 몰고 와 디딜 방앗간에 숨겨놓았다. 인민군은 국군의 눈을 피해 탱크를 고치다가 심심해지면 아이들을 불러모아 노래를 가르쳤다. 인민군들이 부르는 노래인데 외우지 못하면 야단을 맞았다. 인민군은 대여섯쯤 위로 보일 만큼 어려 보였다고 축산면 어르신들은 말했다. '꽃바람도 새바람도'로 시작하는 가사를 잠자면서도 외웠는데 학교에서 절대 부르면 안 된다고 엄마가 신신당부했다고 전한다.

축산면은 인민군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이 이루어진 곳이다. 축산면 성호초등학교 뒤편 계곡에서 12명이 결박당한 채 학살되었다.

빨치산 토벌을 목적으로 국군들의 횡포도 심했다. 창수면 어르신의 기록에 의하면 군인이 산에서 내려와 마을 사람들을 모이라고 했다. 빨치산에게 도움을 준 사람들을 따로 불러내어 한 곳으로 데려갔는데 언니도 영문을 모른 채 따라갔다. 밤이 되어도 언니가 오지 않자 가족들이 찾아 나섰다. 강가에 여러 구의 시체가 엎어져 있었고 그곳에서 언니를 발견했다.

영덕은 국군과 빨치산에게 학살되어 한 날에 제사 지내는 집이 많다. 여든을 훌쩍 넘긴 어르신은 그때 상황을 이렇게 말했다. "정치가 뭔지 이념이 뭔지 그런 거 난 몰라. 아침에 같이 놀던 언니가 저녁에 왜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는지 그게 궁금하단 말이지."

전쟁의 후유증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 휴전선 인근 지역에 대남방송 송출이 정지되었다. 그동안 괴기스러운 소리에 동물들은 이유도 모른 채 쓰러졌고 주민들은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6·25 전쟁이 발발한 지 반세기를 훌쩍 넘어 한 세기를 향해 가고 있다. 길어진 정전 협정 속에 국민들의 대다수는 전쟁을 겪지 않는 세대가 되었다. 전쟁에 무심해질 수 있는 이때,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모른척하지 말자. 남의 나라 일처럼 방관하지 말고 유월에라도 전쟁의 상처를 기억하되 되풀이하진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