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다다다” 소리 사라진 제주 서문시장, ‘미싱’이 멈췄다 

김찬우 기자 2025. 6. 24. 15:3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장] 포목점-이불집 명성 옛말, 죽어가는 전통시장
제주 서문공설시장 2층 점포 5곳이 모집공고에도 불구하고 주인을 찾지 못해 비어있다. 포목점과 한복집, 이불집으로 성황을 이뤘던 시장의 옛 명성은 재봉틀 박음질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제주의소리

"코로나 이후부터 손님이 점점 줄어들고 휴대폰으로 편하게 물건을 부르는 시대가 되다 보니 할머니들이나 어쩌다가 올라오지, 젊은 사람은 아예 안 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쓸데없는 말 해봤자…"라며 말을 집어삼켰다. 뒤이어 내뱉은 한숨 끝에는 큰 소리로 켜둔 텔레비전 소리를 집어삼킬 정도의 깊은 단념이 배어 있었다.

24일 오전 취재기자가 찾은 제주시 용담동 서문공설시장은 공실로 비어 있는 점포들로 적막감이 감돌 정도였다. 손님이 찾아올지 모를 시간인데도 문을 열지 않은 점포도 수두룩했다. 

형형색색 다양한 빛깔의 원단을 자랑하는 포목점은 생기를 잃어가고 한복이나 이불을 만드는 상점에서는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흔한 대화 소리도 없었다.

시장의 적막함을 깨우는 건 이따금 내뱉는 상인들의 깊은 한숨 소리였다. 장사가 안돼 힘들다는 걱정 가득한 한숨이 아니라 모두 내려놓은 듯한 체념만 남아있는 끝자락 숨이었다. 

서문공설시장은 총 90개 점포 가운데 5개 점포가 주인 없이 비어 있다. 경제 불황기 이 정도면 선방한 것 아닌가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손님은 물론 상인들도 시장에 없었다.

제주시는 최근 서문공설시장 내 비어 있는 7개 점포 입점자 모집공고를 진행, 2개 점포 최종 입점자를 선정했다. 나머지 5개 점포는 신청자가 없어 여전히 비어 있는 상태다. 

모집공고는 이번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꾸준했다. 특히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뒤로 버티지 못한 상인들이 하나둘씩 떠나가면서 시장 입점 상인을 찾는 공고는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주인을 찾지 못해 비어있는 채로 남은 서문공설시장 점포. ⓒ제주의소리
서문공설시장 2층 고객쉼터는 손님이 없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서문공설시장의 경우 1층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정육점에서 고기를 사다 차림비를 받는 식당으로 가져가 구워 먹는 정육식당 영업이 활성화되면서 시장의 맥을 이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2층과 3층의 경우 상황이 안 좋다. 손님들의 발걸음이 뜸해지자, 문을 열지 않는 점포가 늘어났고 영업을 포기한 점포들이 생기면서 어수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서문공설시장에서만 40년 넘게 이불집을 운영해 왔다는 김복희(가명) 씨는 "장사가 일절 안 된다"고 말했다. 이틀 넘게 마수걸이도 하지 못했다는 그의 말에는 체념이 묻어났다. 

김씨의 손끝에는 구입 당시 최고였다는 일제 미싱(재봉틀)이 아직도 건재한 상태로 두꺼운 이불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재봉틀은 베개커버 테두리만 박음질할 뿐이었다.

그는 "장사가 안된다. 상인들도 일감이 있으면 나오고 없으면 다른 곳에서 돈을 번다. 여기서 매일 아침 문을 열고 저녁에 문을 닫는 가게는 3~4개 밖에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시는 지난 4월 11일, 서문공설시장 2층 빈 점포 입점자를 모집한 바 있다. 월 사용료는 최소 5만1700원에서 최대 8만6040원으로 그렇게 비싼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28일 최종 선정자 공고에는 2개 점포만 주인을 찾았다. 나머지 5개 점포는 여전히 텅 비어 있는 상태다. 

김씨는 "장사가 안 되니까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는다. 또 입점하더라도 이틀, 일주일 넘게 가게를 열지 않는 상인들도 있다"며 "그 사이 시장은 완전히 죽어버렸다. 장사가 되든 안 되든 문을 열어두고 손님이 오게끔 해야하는데 그런게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로 손님이 줄기 시작했고 휴대폰으로 주문하는 시대가 되니까 어쩌다 할머니들만 올라오지 젊은 사람은 아무도 찾지 않는다"며 "그러니 우리도 물건을 다 갖추지 못한다. 팔려야 가져다 놓을 텐데, 가져다 두면 재고만 쌓이게 되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1980년 초 구입했다는 일제 재봉틀. 소를 팔아 살 정도로 당시 비쌌다는 기계는 아직도 건재한 상태로 일감을 기다리고 있지만, 정작 일감이 없어 놀고 있는 형편이다. ⓒ제주의소리
목화솜 가득 넣은 무거운 이불을 만드는 이불집 입구 '솜태웁니다' 글자가 눈에 띤다. ⓒ제주의소리

이날 김씨는 마수걸이를 하지 못한 상태였다. 조심스럽게 하루 매출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2~3일 넘게 마수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루 1만원이라도 벌면 감사할 따름"이라며 "아는 사람이 오면 하나씩 팔아주곤 하지 오늘도 누가 올지 모르겠다. 진짜 낭패"라고 토로했다.

그는 과거 서문시장 일대가 가구와 한복, 이불 등 혼수 1번지로 활약하던 시절에는 재봉틀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또 시장 2층의 경우 바느질 라인, 수선집 라인, 한복 및 이불집 라인 등으로 구역별 상권이 형성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예전에는 다들 이불이나 한복을 직접 맞추고 수선도 하니까 그런대로 장사가 됐다. 바느질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았다"며 "서문시장 가구거리에서 가구를 맞춘 손님들이 소개를 받아 이불까지 주문하면서 물건을 직접 가져다주곤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런데 이 장사도 이제 한물 갔다. 나이 든 사람들이 돌아가시거나 그만두면서 텅 비었다. 일부 점포에 상인들이 들어와도 예전과는 다르다"며 "나도 언제까지 할 수 있겠나 싶다. 그래서 더 이상 물건을 들이지 않고 남은 것들로만 장사하다가 그만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 젊은 사람들이 걱정이다. 우리야 나이가 들 만큼 들었고 또 놀기 삼아 가게에 나온다고 쳐도 젊은 사람들은 힘들지 않겠나. 살려고 몸부림쳐도 살기 힘든 세상이라 걱정이다. 행정에 바라는 것도 딱히 없다. 시장이나 잘 관리해줬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내뱉었다.
다양한 빛깔로 자태는 뽐내는 한복이지만, 그늘에 가려져 있는 모습이다. ⓒ제주의소리
제주서문공설시장 2층 점포 대부분이 문을 열지 않거나 공실인 상태였다. 38곳 중 이날 문을 연 점포는 7~8곳 뿐이었다. ⓒ제주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