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75주년…"함경도 길주까지 북진했다. 그러나 중공군에 밀려 강원도로 퇴각했다" 전쟁 중 두눈 실명한 고 김용만의 『북진일기』

김용만씨는 1930년 영천시 조교동에서 태어나 1949년 7월 20세에 군에 입대했다. 제3사단 병기부에서 하사로 근무하던 중 6·25 전쟁에 참전했다. 전쟁 중 두 눈을 잃는 큰 부상을 입고 부산 국군병원에 입원한 후 제대했다. 그런 참상을 겪으면서도 이 『북진일기』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10월에는 함경북도 길주까지 북진했다. 길주의 풍경은 한마디로 '허무러진 길주'였다. 온 세상이 파괴된 모습,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담았다. 함경북도 길주까지 북진한 경험을 담아 김 씨의 일기장은 '북진일기'로 명명됐다.
한겨울, '인해전술'로 새카맣게 밀려오는 중공군의 참전으로 부대는 남쪽으로 다시 밀려 내려오게 됐다. 후퇴였다. 1951년 5월 부대는 강원도에 도착했으나 포격을 받아 뿔뿔이 흩어졌다. 중공군의 급습으로 패잔병으로 전락한채 겨우 살아남은 군인들이 '3사단집결지'(三師團集結地)라고 쓰인 푯말을 찾아 모여들었다. 아뿔사! 중공군의 함정이었다.
중공군의 총탄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김씨는 총알 세례를 피해 초가로 들어갔고 방안에서 응전했다. 어느 순간 망치로 머리를 내려치는 듯한 충격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김용만 하사가 죽었다"고 생각한 동료들이 죽은 이들과 함께 눕혀뒀다. 시체 더미에서 보름 후 깨어난 김씨는 자신이 포탄에 맞아 눈을 잃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죽음을 선택하려 했으나 그러나 끝내 죽지 못하고 살았다.
천신만고 끝에 고향 친구의 도움으로 부산 국군병원에 도착한 김 변호사의 아버지는 전쟁 중 양눈에 큰 부상을 당했다. 오른쪽 눈은 총탄에 의해 시신경이 끊어졌고, 왼쪽 눈은 수술로 제거됐다. 병원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만났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입원군인들에게 "어디 불편한 데는 없는가?"라고 물었고, 아버지는 손을 번쩍 들며 답했다. "우리나라는 전쟁이 아니어도 힘들고 어려운 형편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쟁이 터진 상황이라 더더욱 힘들다는 걸 잘 압니다. 우리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이 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아버지의 답변은 이 대통령의 마음을 울렸다. 대통령은 아버지의 희생과 자부심을 인정하며 "이 친구의 이름을 적어놓게"라고 지시했다.

김 변호사는 아버지의 용감한 희생과 대통령의 격려를 기억하며 "아버지는 지팡이를 짚지 않았고, 선글라스도 거절했다. 항상 당당한 모습만 보이고 싶어하셨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은 김 변호사에게 깊은 존경과 그리움을 남겼다. 김섭 변호사는 아버지의 자칭 『북진일기』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용기를 동시에 보여주며 6.25의 의미를 다시한번 되새겼다. 김 변호사는 선친이 남긴 유산을 기증할 계획을 갖고 있다.
박웅호 기자 park8779@idaegu.com
Copyright © 대구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