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열망을 논한 대만문학, 한국서 통했다
일제강점 경험·민주화운동 등
한국과 역사 굴곡 유사 공감대
대만 초청 작가 작품 매진행렬
천쉐 데뷔작 ‘악녀서’ 국내 첫선
퀴어여성들의 사랑 과감한 묘사
류즈위 ‘여신 뷔페’ 한국팬 만나
여성 인권·성평등 비판적 서술

5일간 약 15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모으며 지난 22일 막을 내린 2025 서울국제도서전은 대만 작가들을 초청했다. 지난해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출판계를 초청하는 등 매해 주빈국을 선정·초청하는 서울국제도서전이지만 올해 초청된 대만 작가들에 대한 인기는 유독 뜨거웠다. 독자들의 큰 관심을 증명하듯 도서전 기간을 맞아 대만 작가들의 책을 번역해 내놓은 민음사, 글항아리 등의 부스에선 대만 작가들의 책이 연일 매진되는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
대만 문학을 향한 이와 같은 관심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한국과 대만이 유사한 역사적 굴곡을 지녔다는 점이다. 한국이 35년간 일제 식민 통치의 아픈 역사를 지녔듯이 대만은 일본으로부터 약 50년 동안 식민 통치를 겪었다. 양국이 포기하지 않고 항일 독립운동을 계속했다는 점도 유사하다. 또한 한국에 제주 4·3, 광주 5·18과 같은 민주화운동과 민간인 학살의 역사가 있다면 대만도 1947년 2·28 항쟁으로 인한 학살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동시에 대만에는 섬의 원주민, 일본 패전 직후 중국 대륙으로부터 이주한 외성인, 동남아 이주민 등 상상 이상으로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산다. 이처럼 모호한 민족적 정체성이 다양한 문학 작품으로 피어나니 한번 빠지면 그 매력에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다.

대만 문학계의 거장 궈창성, ‘귀신들의 땅’으로 전 세계 독자의 눈을 사로잡은 천쓰홍, 데뷔작 ‘밤의 신이 내려온다’(이상 민음사)로 대만의 양대문학상 중 하나인 금전상을 수상한 장자샹 등 약 30명의 대만 작가들이 한국을 찾았다. 그중에서도 이미 30년 전에 여성 간의 사랑을 쓰며 여성의 정욕을 가감 없이 작품에 드러낸 천쉐, 여성에 대한 성차별을 직격한 작품으로 페미니즘 소설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류즈위가 눈에 띈다.
천쉐는 자신의 데뷔작 ‘악녀서’(글항아리)를 들고 한국을 찾았다. 30년 전 현지 출간 당시 ‘18세 이하 열독 금지’ 스티커를 붙인 채 포장지에 꽁꽁 싸여 미리보기조차 허용되지 않던 문제작이다.
지난 18일 문화일보와의 만남에서 천쉐는 ‘동지(同志)문학’(퀴어문학)의 기념비적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당시에) 읽고 싶은 작품이 없어서 썼다”며 “글로서 가장 뜨거운 문제를 토론하고 싶다는 것은 30년째 일관된 신념”이라고 말했다. 책 속 4편의 단편 소설들은 여성 간의 사랑을 다룬다. 여성이 여성을 만날 때만 느낄 수 있는 정신적, 육체적 희열이 가득하다.
다만 미성년자의 접근을 불허했던 것처럼, 여성 간 성행위의 묘사는 아름다운 문체임에도 불구하고 거침없다. 심지어 여성을 욕망하는 일을 모성의 결핍과 연관 지어 엄마를 욕망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하는 발칙함까지 보인다. “여성끼리 몸으로 교류하는 일, 사랑은 글로 써낼 가치가 있어요. 정욕은 사랑을 증명하는 수단이죠.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래도 괜찮죠.”
또한 천쉐는 30년 전 커밍아웃을 통해 성 정체성을 밝히고 활동해 온 오픈리(openly) 레즈비언 작가이기도 하다. “존재를 공개하고 외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걱정은 없었어요. 누구보다 저 자신을 위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이후 현재까지 대만의 동지문학은 더욱 다양해졌고 현재는 오픈리 퀴어 작가도 많다. “백화제방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도 여전히 버스를 기다리듯 소설가의 자리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고요. 글쓰기는 정욕과 닮은 점도 있는데요, 쓰고 난 뒤에만 알 수 있는 게 있다는 점이죠.”
류즈위는 그의 첫 책 ‘여신 뷔페’(민음사)로 한국 독자를 사로잡았다. 대만은 지난 2019년 아시아 국가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한 것을 비롯해 진보된 성평등 국가로 인식되곤 한다. 그렇기에 대만 내에서 여성은 이미 남성과 평등해졌다는 인식도 팽배하다. 지난 19일 만난 류즈위 또한 “반핵, 성소수자 운동 등에 열심히 참여했던 나조차 여성의 불평등한 현실을 주제로 글을 써보라는 요청에는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류즈위는 진정 성평등은 이뤄졌는가 하며 다시 한번 주변을 살폈다. 그러자 여성을 향한 일상적 차별, 성폭력, 출산과 모성, 승진을 위한 남성성 강요 등 여전히 불평등이 만연해있음을 확인했다. 류즈위는 세밀한 묘사를 통해 공포와 불안, 자기 검열을 반복하는 여성의 내면을 그려낸다. 8개의 단편들은 때로는 동양과 서양의 신화를 빌려오기도 하고, 실제 사건을 비틀어 재현하는 등 가상과 현실을 넘나든다. “건재한 가부장제 전통의 모습을 사회 곳곳에서 발견했어요. 모든 사안을 고소를 통해 해결할 수 없다면 분명한 반항이 필요하죠.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더 큰 자유를 요구해야 해요.”
장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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