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적 위원회 형식으론 온전한 역할 힘들다”

나경희 기자 2025. 6. 24.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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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진화위가 활동을 마무리했다. 기간 만료로 조사하지 못한 사건만 2000건이 넘는다. 전현직 조사관들과 피해자, 유가족은 한시적인 위원회 대신 상설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2019년 11월27일 국회의사당역 출구 지붕 위에서 과거사정리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 중인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 최승우씨. ⓒ시사IN 신선영 

대선을 앞둔 5월22일, 국회에서 추락 사고가 났다. 형제복지원 생존 피해자인 최승우씨의 갈비뼈 아홉 대가 부러졌다. 대선후보에게 제3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 출범과, 자신과 같은 수용시설 피해자를 위한 특별법 제정 약속을 받아내기 위해 국회 의원회관 처마에 오르던 중이었다.

최승우씨는 2020년에도 국회 의원회관 지붕에 올랐다(제664호 “‘짐승에서 사람으로’ 38년 만에 찾은 어린이날” 기사 참조). 당시에는 여야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정리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해 사흘 만에 땅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해 5월20일 마침내 과거사정리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최승우씨와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대표는 927일 동안 투쟁한 농성장의 천막을 정리했다. 그들의 투쟁으로 과거사정리법 개정안이 통과된 덕분에 2기 진화위가 출범할 수 있었다. 형제복지원은 2기 진화위의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2기 진화위의 활동 기간은 5년이었다. 2020년 12월10일 문을 열었고 지난 5월26일 조사 기간이 끝났다. 이날 박선영 진화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1년 조사 개시 이후 총 2만924건 중 1만8808건(89.9%)을 처리했다고 밝혔다. 진실규명으로 결정된 사건, 진실규명이 확인된 1만1908건과 불능·각하·취하·이송 결정을 받아 종료된 6900건을 더한 수치다. 나머지 2116건(10.1%)은 조사 기간 만료로 조사가 중지됐다. 박 위원장은 “위원회 기간이 연장되면 약 2000건의 조사 중지 사건들도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을 마무리하는 시간이 지나고 오는 11월 2기 진화위는 아예 문을 닫는다. 3기 진화위가 출범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부족해 미처 조사하지 못한 2116건은 그대로 묻힌다. 조사 신청 시기를 놓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도 475명이나 된다. 최승우씨가 다시 한번 국회 지붕에 오르려 했던 이유다.

2022년 8월24일 진화위에서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해 생존자 최승우씨가 발언하고 있다.ⓒ시사IN 포토

2기 진화위에서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을 맡았던 김진희 전 조사팀장은 이전에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에도 참여했다. 그는 한시적 기간을 두고 운영되는 위원회 형식으로는 온전한 진상규명이 힘들다고 말한다. 그는 김광동 전 위원장 재임 기간에 조사를 방해하는 압력을 느껴 공개적으로 비판 입장을 밝힌 뒤 진화위에 사표를 냈다. 윤석열 정부가 임명했던 김 전 위원장은 “제주 4·3은 공산주의 폭동” “5·18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등의 발언으로 피해자와 유가족의 반발을 샀던 인물이다. 그의 뒤를 이어 임명된 박선영 위원장 역시 5·16 쿠데타를 혁명이라 주장하고 윤석열의 비상계엄을 옹호한 바 있다.

김진희 전 조사팀장은 정부에 따라 바꿔 임명되는 위원장의 정치적 성향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기간이 정해진 위원회다 보니 좋은 인력을 끌어오기가 힘들고, 서로 멤버십도 없다. 물론 열심히 하는 분도 있지만 파견 공무원들은 대개 위원회에 오는 걸 안식년쯤으로 생각한다.” 한 위원회가 끝나면 다른 위원회로, 끝없이 위원회를 전전하는 ‘위원회 낭인’도 있다. 그 안에서 인력이 돌고 도니 늘 똑같은 방식으로 세팅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조사한다. 이전 위원회의 한계를 고스란히 답습할 수밖에 없다.

설령 뜻이 있고 능력 있는 조사관이 뽑히더라도 실력을 온전히 발휘하기 힘들다. 국회에서 여야 간 치고받는 싸움 끝에 겨우 특별법을 만들고 위원회를 띄우는 데 모든 에너지를 써버리기 때문이다. 정작 법이 통과된 이후부터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빠르게 일이 진행된다. 사참위에서 위원장을 지낸 장완익 변호사 역시 이 점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월호 특조위 때 청문회를 열 수 있는 규정을 넣느냐 마느냐로 엄청나게 싸웠다. 그 이후 만들어진 위원회 대부분은 청문회 규정이 들어갔지만 정작 2기 진화위나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청문회를 연 적은 없다. 3기 진화위가 출범하기 전 과거사정리법을 한번 개정해야 할 텐데, 정말 필요한 조사권인지, 그렇지 않다면 그걸 포기하는 대신 실효성 있는 다른 조사권을 넣을 것인지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천덕꾸러기 되는 위원회 권고안

위원회가 출범한 뒤에는 어떻게 조사를 할지 기획할 시간도 없다. 김진희 전 조사팀장 자신도 당장 이튿날부터 피해자 진술을 받아야 했다. “그때가 5월 말인데, 10월 말에 사건을 마무리하고 12월에 보고서가 나올 수 있게 하라더라. 어차피 법적 권한이 없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피해자가 국가배상 소송에 가서 이기게 하는 것밖에 없으니, 진화위 결정문이 재판 증거로 쓰일 수 있도록 피해자 진술만 쭉쭉 받아서 피해 사실을 입증하고 끝내라는 거다.”

5월26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2기 조사기간 만료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연합뉴스

진화위가 만들어진 이유는 단순히 피해자 진술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름 자체에 명시돼 있듯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가 목적이다. “피해자는 여전히 진술을 할 때마다 너무나 힘들어하고 괴로워한다. 한번은 트라우마 전문가에게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진술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가 아주 혼이 났다. ‘그동안 자살을 수없이 생각했던 사람에게 다짜고짜 도와줄 테니 진술하라고 하면 어떡하느냐, 잊고 있던 트라우마가 올라오면 면담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차도로 뛰어들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나도 정신을 차렸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은 피해자가 상처를 회복하고, 늦었지만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돌아올 수 있게 하기 위함인데, 시간에 쫓기고 마음이 급하니 앞뒤가 바뀐 거다(김진희 전 조사팀장).”

시간이 부족한 데서 생기는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면서 권고안을 내는데, 권고안 이행이 이루어지는지 감시하고 감독할 주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참위도 활동을 종료하며 총 80개 권고를 했지만 대부분 지켜지지 않았다. 4·16 연대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둔 2024년 4월 권고안을 12개 분야로 나눠 살펴본 결과 이 중 11개가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피땀 섞인 투쟁으로 만들어진 위원회의 활동이 공공자산으로 남지 않고 불과 몇 년 만에 그 누구도 떠맡기 싫어하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셈이다.

사참위 권고를 포함해 대부분의 위원회 권고안에는 ‘기록 폐기를 금지하고 공개하여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으나 위원회가 종료되면 힘들게 쌓은 기록 대부분이 국가기록원으로 넘어간다. 한 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상임위원은 국가기록원을 ‘자료의 무덤’이라고 표현했다. “보존은 잘 된다. 그런데 그게 전부다. 한번 들어간 자료는 아무도 보지 않고 보기도 힘들다. 사본이라도 남겨서 연구가 이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진희 전 조사팀장을 비롯해 위원회를 경험한 전현직 조사관들은 입을 모아 상설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계엄 이후 민주주의를 다시 고민하는 지금 이때가 적기다. 과거사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국가전략을 명확히 정립해야 한다. 지금까지 반복됐던 위원회의 문제를 알면서도 다시 위원회를 만들자고 할 수는 없다. 그동안 수많은 위원회를 거쳤는데도 사회적 변화를 느끼지 못했던 시민들도 위원회라는 형식에는 더 이상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김진희).”

나경희 기자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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