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일] 말타기 가르치며 장애 극복 돕는다 | 월간축산
이 기사는 성공 축산으로 이끄는 경영 전문지 ‘월간축산’6월호 기사입니다.
육중한 미닫이를 옆으로 밀고 들어가니 실내운동장에 말 세 필과 열서너 명이 있었다. 네 다리에도 갈기가 있는 얼룩말, 백마, 갈색 말에 한 사람씩 올라 있고, 말마다 두세 명이 동행하고 있다. 한가운데서 프로그램을 총괄 진행하는 신정순 재활승마지도사(코치)가 명랑하고 쾌활하게 분위기를 이끌고 있었고, 턱이 높은 사무실 쪽에선 기록지를 들고 서서 유심히 관찰하며 연신 끄적이는 이가 있었다.
“민기, 참 잘했어요. 떨어지려는 순간에도 고삐를 끝까지 잡고 놓지 않은 건 정말 잘한 거예요. 칭찬해요. 여러분 모두 칭찬해 주세요. 옆에서 민기를 잡아준 선생님도 방심하지 않고 안전하게 떠받쳤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그날 프로그램 과정에 대해 반추(피드백)하고, 기승자와 봉사자가 모두 떠난 후 신 코치는 재활승마를 지도할 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구체적으로 칭찬하기’라고 말했다. 재활승마 때 한 팀은 코치와 기승자, 말, 말을 이끄는 리더, 양옆에서 기승자를 돕는 사이드 워커 등으로 구성된다. 기승자의 기승술 수준에 따라 보조자가 2명 또는 1명이거나 아예 없을 수 있다. 최종적으로 리더마저 없이 혼자 타는 것을 ‘독립 기승’이라고 한다. 독립 기승은 재활승마를 통한 신체적·심리적 기능 향상의 종착점이자 임무 완수인 셈이다.
“재활승마의 꽃은 자원봉사자라는 말이 있어요. 저랑 말·기승자가 있다 해도 봉사자 없이는 재활승마를 할 수 없죠. 말을 끄는 분은 말에 대한 경험이 있는 분들이어야 하지만 사이드 워커의 경우 건강한 성인이면 누구나 안전 교육을 받고 참여할 수 있어요. 팀워크로 움직이는 일이기에 손발 맞는 봉사자가 꼭 필요합니다.”
가장 힘든 일 하나가 봉사자의 부재다. 결석한다고 1주일 전쯤 미리 통보하면 대체자를 준비할 텐데 임박해서 일이 생겨 오지 못하는 경우에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다른 봉사자를 물색해 배치한다 해도 팀워크에 탈이 날 수 있고, 말이나 다른 팀원과 호흡이 맞지 않으면 안전사고 위험도 크다.
자폐 스펙트럼이나 주의력 결핍 장애 아동은 물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신체와 뇌 기능 저하가 우려되는 시니어(은퇴 어르신), 가족 단위 등 재활승마 수요가 확대하는 추세를 고려해도 봉사자층이 두껍게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 신 코치의 지론이다. 신 코치는 말 타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 기본이고, 프로그램 참여자의 심리적 안정과 신체 기능 향상은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는 효과라고 했다. 재활승마지도사가 치료사는 아니라는 뜻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신 코치는 재활승마지도사이자 작업치료사 자격도 갖췄다.
귀국해 2006년부터 한국마사회에서 일한 신 코치는 작업치료사라는 전문성으로 미국 재활승마치료사협회(AHA) 단기 교육을 마치고 공인 승마치료사 자격을 얻었다. 연세대 대학원에서 가족 상담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2012년 우리나라 말산업 자격 시험제도가 시작되면서 국내 재활승마지도사 자격을 땄다.
신 코치에 의하면 장애에 대한 이해와 말을 잘 아는 것이 재활승마지도사가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이다. 같은 장애라도 보이는 양상은 다를 수 있기에 세심하고 꼼꼼하게 살펴보고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 안다고 자만하지 않고 늘 배우려는 자세로 깊이 이해하려 노력하면 참가자에 따라 어떤 말을 매칭해야 할지, 어떻게 소통하고 변화를 끌어낼지 방도를 찾게 된다는 설명이다.
신 코치는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한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하니 그나마 일요일 하루는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다. 출근하면 그날 강습일지와 봉사일지, 강습 자료들을 준비하고 지난 시간에 했던 활동이나 참가자 특성에 대해 살펴본다. 강습에 함께할 말들을 운동시킨다.
“충분한 기승 운동을 통해 말들을 훈련하고 움직임을 파악해 둬요. 기계도 작업 전에 점검하잖아요. 말은 기계보다 변수가 많은 동물이기에 기분과 컨디션을 파악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말과 사람, 모두의 안전이죠.”
참가자와 봉사자들이 오면 강습을 시작한다. 보통 강습은 하루 한두 차례 이뤄진다. 시간은 1시간이지만 강습 전 스트레칭과 말 준비, 강습 후 발굽을 씻기고 마방에 넣기까지 1시간 반에서 2시간이 걸린다. 강습이 끝나면 평가 등 일지를 작성하고 다음 강습 계획을 짠다. 요즘은 짬이 나는 대로 실버 힐링승마 매뉴얼 작업과 재활승마 가족 프로그램 연구 작업도 한다.
신 코치는 20년 전 뇌 병변 장애로 잘 걷지 못하는 유치원생 손녀를 업고 온 할머니의 일화를 소개했다. 해마다 전화해 손녀의 안부를 전하며 ‘그 말 타던 꼬맹이가 건강하게 자라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 중’이라고 하는데 되레 감사하고 흐뭇하다고 했다.
<재활승마지도사>
재활승마지도사는 신체적 장애나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승마 활동이나 말과의 교감 등 지상 활동을 통해 신체 기능 회복과 심리적 안정을 찾도록 돕는 전문가다. 말에 대한 이해와 장애, 심리 등 폭넓은 지식이 필요하다.
재활승마지도사 자격제도는 2012년 ‘말산업 육성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재활승마지도사, 말 조련사, 장제사는 국가고시자격이고 승마지도사는 민간자격이다. 통칭 말산업 국가자격시험(3급)은 매년 1회 있는데,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실시계획을 공고하고 한국마사회 자격검정센터가 시험을 주관, 실시한다.
재활승마지도사 자격시험은 1차 필기, 2·3차 실기로 구성된다. 마술학, 마학, 재활승마 이론, 말 관련 상식 및 법규 등 4과목을 보는 필기시험은 합격한 날로부터 2년간 면제된다. 실기시험은 마술 시연 형태로 ‘기본 마술’을 평가하고, 재활승마 실무 과목으로 ‘강습 실기’ 시연(20분)을 평가한다. 재활승마 강습 실기의 경우 강습계획서와 평가서 작성 시간은 별도로 부여된다. 필기시험과 실기시험 모두 각 과목 40점 이상, 전 과목 평균 60점 이상이 합격선이다.
말산업정보포털에 따르면 2024년까지 모두 456명이 재활승마지도사 자격을 취득했다. 주로 민간 승마장, 마사회 등에 취업하는데 실제 재활승마지도사로 일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앞으로는 재활승마 수요가 늘고 활동 영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글 장영내 | 사진 이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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