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교파 손열음도 혀를 내두른 곡이 있답니다

손열음(39)은 기교와 암보(暗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법한 피아니스트. 지난 2000년 에틀링겐 국제 청소년 콩쿠르 1위를 시작으로 2009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2위와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까지 두루 입상하며 일찍부터 ‘피아노 영재’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천하의 손열음도 가끔은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난곡(難曲)이 있다. 올해 탄생 150주년을 맞은 모리스 라벨(1875~1937)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이 그렇다.
라벨은 ‘볼레로’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 작곡가다. 이 곡은 제목처럼 피아니스트가 오른손과 왼손의 양손이 아니라 왼손만으로 연주하는 곡. 1차 대전 당시 오른손을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의 위촉을 받고 작곡했다. 파울은 ‘논리 철학 논고’로 유명한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친형이다.
이 협주곡에 대해 손열음은 “설령 이 곡을 왼손이 아니라 양손으로 친다고 해도 여전히 어려운 곡”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이유가 있다. 보통 피아니스트들은 오른손으로는 선율을, 왼손으로는 반주를 연주한다. 그런데 이 협주곡에서는 왼손의 엄지손가락으로 멜로디를 치고 나머지 네 손가락으로는 저음과 반주를 소화해야 한다. 게다가 88개 피아노 건반의 최하단부터 최상단까지 왼손만으로 종횡무진해야 한다. 지난 18일 서울 신사동 클래식 음반점 풍월당 쇼케이스에서 시연(試演)을 보이던 손열음은 “연주가 마음대로 안 되는 건 물론이고 왼손을 정신없이 좌우로 돌리다 보면 허리마저 아프다”며 웃었다.
그런데도 최근 손열음은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2곡)을 묶어서 음반을 펴냈다. 네덜란드 헤이그 필하모닉과의 실황 녹음으로 프랑스 명문 음반사 나이브를 통해서 출시됐다. 힘들다면서도 굳이 고생을 자청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는 “20세기 관현악의 역사는 사실상 라벨 전후(前後)로 나뉜다”고 짧고 명쾌하게 답했다. 라벨은 스트라빈스키 등과 더불어 20세기 오케스트라 작곡·편곡의 최고봉으로 꼽힌다는 설명이다.
올해 손열음은 음악계 동료 연주자들과 결성한 ‘고잉홈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를 통해서도 라벨 관현악 전곡 연주를 진행 중이다. 피아니스트에게도 오케스트라의 관현악은 여전히 중요할까. 그는 우문(愚問)에 대해 “피아노야말로 머릿속으로 오케스트라를 연상하면서 연주해야 하는 악기”라며 “라벨의 피아노곡에서는 음악으로 그림을 그리는 듯한 색채감을 느낄 수 있다”는 현답(賢答)을 내놓았다.
음반에 실린 또 다른 한 곡은 라벨의 양손을 위한 협주곡이다. 손열음은 모차르트를 연상시키는 이 협주곡의 서정적인 2악장을 들을 적마다 “진주 목걸이를 겹겹이 한 백발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조금은 슬픈 옛이야기가 떠오른다”고 했다. 금 목걸이가 아닌 진주, 흑발이 아닌 백발이 연상되는 이유는 뭘까. 또다시 우문에 그는 “지나치게 밝고 선명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불투명하고 은은함이 섞여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언제나 공연이나 음반의 곡 해설을 직접 쓰는 피아니스트다운 문학적 비유였다. 글을 쓸 적에 가장 신경 쓰는 대목을 묻자 손열음은 “언제나 들어가는 첫 문장”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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