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돌아왔다, 귀향시대] (18) 김해에 살어리랏다

김영현 2025. 6. 2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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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잡고 쏟는 열정만큼 더 나은 김해 만들 겁니다

친구들 웃는 모습 행복 느껴
합창대회서 지휘로 인기상
주변 칭찬에 사회자 꿈꿔

큰 무대 기회 없던 고향 떠나
보조 일하다 무대 진행 맡아
외지인 배척 구조 한계 느껴
귀향 후 행사 등 기획·진행

고향 살리려 청년학교 입학
문제 진단·정책 제안 등 공부
더 살기 좋은 도시 조성 목표

“김해에도 MC가 있어?”

이 한마디에 움츠러들던 청년은 이제, 무대 위에서 누구보다 당당하게 자신을 빛내고 있다. 결혼식·돌잔치 사회자라는 편견에 부딪혀 고향을 떠났지만, 결국 돌아와 지역의 대표 축제를 이끄는 MC로 다시 섰다. 무너진 대학가 골목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청년들과 함께 김해의 내일을 그려나가는 그의 발걸음엔 지역 청년으로서의 정체성이 자연스레 배어 있다. 한때 “떠나야만 꿈꿀 수 있다”고 믿었지만, 이제는 “고향에서도 가능하다”고 말하는 그. 김해에서 제2의 인생을 써 내려가고 있는 귀향청년 전민수(37)씨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전민수씨가 지난 2023년 김해에서 열린 ‘김해 뮤직페스티벌 연어’ 본무대서 MC를 맡아 진행을 하고 있다./본인 제공/

민수씨의 첫 무대는 친구를 사귀기 위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직장을 따라 전학 간 그는 새로운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매일 대화 주제를 고민했다. 그러다 당시 유행하던 TV 프로그램 ‘서세원의 토크박스’ 에피소드를 외워 친구들을 웃긴 것이 계기가 됐다. 이야기를 들려주자 반에서는 웃음이 터졌고, 그는 단번에 ‘인싸’로 떠올랐다. 누군가를 웃게 한 그 경험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가슴 뛰는 설렘을 안겨주었다.

“처음엔 단순히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어서 유머집을 외워 웃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이 제 이야기에 웃는 모습을 보니까, 친해진 것도 좋았지만 그 순간 자체가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마음속 어딘가에서 ‘MC가 되고 싶다’는 꿈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전민수씨가 김해 문화기획사 ‘동행’ 내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고등학교 시절, 성당 합창대회에서 지휘자로 무대에 섰을 때는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춤을 추며 지휘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팀원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민수씨가 발휘한 기지가 큰 호응을 이끌어 낸 것이다. 덕분에 그의 팀은 인기상을 수상했다. 무대가 끝난 뒤 주변에서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하면 잘할 것 같다”는 칭찬이 쏟아졌고, 그날을 계기로 그는 무대에 서는 사람, 즉 ‘MC’가 되고자 다짐했다.

“대회 당일 관객이 많아 친구들이 긴장하길래 분위기를 풀어보려 춤추며 지휘했어요. 현장 반응이 좋았고, 무대가 끝난 뒤에도 칭찬이 쏟아졌죠. 그런 칭찬은 처음이라, 그때 결심했어요. 무대에 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그때부터 그의 일상은 곧 무대를 향한 연습이었다. 고등학교 자율학습 시간이나 성당 수련회에서 직접 준비한 레크리에이션을 친구들 앞에서 선보였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길에도 대본 연습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또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레크리에이션 관련 서적을 찾아 읽던 그는 저자 대부분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대학도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했다.

민수씨는 대학을 다니면서 지역 이벤트 업체를 통해 결혼식과 돌잔치 사회자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다. 졸업 후에도 사회자 일을 이어갔지만, 평일에는 조선소 철판가공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주말에만 무대에 오를 수 있는 현실에 그의 무대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져갔다. 그러던 중 김해문화네트워크의 예술인 정보 수집 카드뉴스를 보고 연락하면서 김해뮤직페스티벌 ‘연어’의 진행자로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다. 활동 범위가 지역 축제로까지 넓어지며 꿈에 가까워지는 듯했지만, ‘결혼식·돌잔치 사회자’라는 인식이 지역에 깊게 박힌 탓에 큰 무대에 설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더 넓은 무대를 위해 고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큰 무대를 꿈꾸며 결혼식과 돌잔치 사회부터 하나하나 경력을 쌓아왔는데, 오히려 그 경험들이 제 발목을 잡더라고요. 이제 와서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죠. 그래서 아무도 저를 모르는 곳에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역 MC로서 활발히 활동 중인 전민수씨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이후 민수씨는 전라도로 향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마음으로 행사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대 뒤에서 MC들의 진행을 지켜봤다. 그러던 중 그의 이력을 눈여겨본 축제 관계자의 제안으로 운이 좋게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특유의 춤과 유쾌한 진행은 관객들의 앙코르를 이끌었고, 이를 계기로 정식 제안을 받아 지역 축제와 대학 행사 무대로 활동을 넓혀갔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축제와 무대가 모두 중단되자 하루아침에 잃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민수씨는 큰 무기력감에 빠졌지만, 타지까지 함께 온 아내를 떠올리며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동시에 ‘다음’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결국 메타버스를 활용한 지자체 홍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첫 프로젝트는 영암군의 귀촌 사업 홍보. 당시 메타버스를 이용한 홍보 방식은 큰 방향을 일으켰고, 곧 입소문이 나 전국 지자체에서도 홍보 의뢰가 쏟아졌다.

“무대에 서던 제가 일용직을 전전하니 아내가 마음 아팠는지 노트북을 선물해줬어요. 그걸로 퇴근 후 틈틈이 공부했고, 고민 끝에 메타버스를 활용한 지자체 로컬사업 홍보 아이디어를 떠올렸죠. 첫 시도였던 영암군 프로젝트 반응이 좋아 전국에서 홍보 요청이 이어졌고, 언론 인터뷰도 줄을 이었어요. 수익도 놀랄 만큼 좋았고요.”

한순간에 메타버스 홍보 전문가로 인정받은 그였지만, 타지에서 느끼는 공허함은 좀처럼 채워지지 않았다. 축제를 함께 기획하고 콘텐츠를 만들어가던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는 늘 ‘외지인’이었고, 지자체 홍보 사업을 따내는 과정에서도 지역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종종 배제되곤 했다. 시간이 흘러도 그 벽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고, 결국 그는 다시 뿌리내릴 곳을 고민했다. 그 순간 떠오른 곳은 다름 아닌 고향 김해였다.

지난 2018년 열린 제13회 김해 뮤직 페스티벌 모습./본인 제공/

“타지에선 제가 지역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불이익도 많았어요. 결국 어디서든 지역 출신에게 유리한 구조라는 걸 실감했죠. 그래서 오히려 김해로 돌아가면 그런 점이 제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메타버스 사업을 통해 가능성을 확인한 덕분에, 이제 어떤 일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요. 그 무대가 고향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느꼈죠.”

그렇게 지난해 김해로 돌아온 그는 다시금 지역 MC로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지역축제부터 대학교 축제, 경로잔치, 운동회, 송년회까지 지역의 크고 작은 행사들을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단순히 생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만큼 지역의 청년들과 함께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이다.

“고향에 돌아와 보니 상권이 침체돼 있더라고요. 단골 식당도 거의 사라졌고요.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 최근 ‘김해청년학교’에 입학했어요. 청년들이 지역 문제를 진단하고, 직접 정책을 제안할 수 있도록 교육받는 곳이거든요. 고향에 다시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이상, 지역 청년들과 함께 김해를 더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게 목표예요.”

지난해 열린 김해 뮤직 페스티벌 ‘연어’에서 전민수씨가 시민의 사연을 읽어주고 있다./본인 제공/

지역 청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은 그는 이제 지역 MC이자 청년 활동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무대 위에서 쏟는 열정과 지역 문제를 고민하는 태도는 결국 같은 방향을 향한다. 더 나은 김해를 만드는 일. 그런 욕심은 스스로를 지치게도 만들지만, 그는 여전히 이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마이크를 잡은 그의 손끝에서 김해는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듯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예전엔 ‘김해에도 MC가 있어요?’라는 말이 듣기 싫어서, 창원이나 부산에서 활동한다고 말했어요. MC가 주로 수도권에 있는 건 사실이니까 그런 반응이 이상한 건 아닌데, 그땐 좀 자격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당당히 말해요. 김해에서 활동하는 MC라고. 이제는 그런 타이틀이 전혀 부끄럽지 않거든요.(웃음)”

◇김해시 청년정책= 김해시는 ‘글로컬 청년 도시 김해’ 실현을 목표로 △일자리·창업 △주거·복지 △문화·권리·참여 △글로컬대학30 등 4대 분야의 청년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시는 청년 일자리 확대를 위해 올해 고용노동부와 함께 ‘청년도전 지원사업’과 ‘청년 일경험 지원사업’을 도입했다. 이와 함께 ‘경남 청년 인재-주력산업 동반성장 사업’ 등 총 10개의 지역주도형 일자리 사업도 운영 중이다. 참여 청년에게는 월 최대 40만원, 기업에는 2년간 인건비를 지원한다. 주거 분야에서는 ‘청년 주택 임차보증금 이자 지원’을 비롯해 ‘청년 월세 지원’, ‘신혼부부 대출 이자 지원’ 등 정책도 추진 중이다.

김영현 기자 kimgija@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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