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카메라] 비 오면 '보따리 메고 피난길'…잠 못 드는 주민들 사연

이상엽 기자 2025. 6. 23.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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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석 달 전 최악의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 주민들이 이번엔 장마 때문에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비가 올 때마다 언제 산사태가 날지 몰라 피난길에 나서야 한다는데, 밀착카메라 이상엽 기자가 경남 산청과 하동 주민들 상황을 취재했습니다.

[기자]

석달 전 산불 피해를 입은 오창수 씨는 또 한번 무너졌습니다.

지난 5월 갑자기 산골짜기에서 빗물이 쏟아졌기 때문입니다.

[오창수/주민 : 여기가 막혔어, 여기가… 물이 이리로 내려가지 않고 여기로 흘러서 집이 침수된 거죠.]

나무, 돌, 흙이 배수로를 막으면서 빗물은 순식간에 집을 덮쳤습니다.

[오창수/주민 : 저기로 물과 흙이 저 안으로 들어가서… 안에 있던 소파, 장롱, 김치냉장고도 고장 났고.]

지난 주말 또 쏟아진 비, 마을에 다시 가봤습니다.

제가 비 온 뒤에 다시 찾은 곳인데 이렇게 살짝 손만 대도 돌이 떨어집니다.

비 오기 전 제가 한번 살펴봤던 숲입니다.

비 오면 산비탈 아래 마을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배수로 정비가 꼭 필요한 곳입니다.

지금 당장은 특이사항이 없습니다.

하지만 곧 본격적인 장마철이 시작되기 전에 잘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주민들은 산사태를 걱정합니다.

[김동춘/주민 : 살아있는 나무는 비가 오면 흡수를 잘하는데 죽은 나무들은 흡수를 못 하잖아요. 비가 오면 갑자기 급수가 내려와요. 그러니까 참 위험하죠.]

경남 하동군의 또 다른 마을.

지난 3월 산청에서 번진 불로 마을 뒷산이 다 타버렸던 그곳입니다.

[천영이/주민 : 뒤에 산 쳐다보면 전부 애가 타서 죽는다. 저 높은 산 어그러지면 전부 다 죽을 거라고…]

기자 검게 그을린 나무 옆으로 바윗돌들이 쏟아졌습니다.

여기가 무너지면 마을이 위험하기 때문에 지금은 이렇게 방수포를 덮어놨습니다.

[정영근/주민 : 불이 나서 저 위에서 혹시 산이 무너져내리면 그 충격으로 돌이 내려올 수도 있다고 예방하기 위해서…]

3개월 전 불이 날 때 대피했듯 비가 온 이날도 주민들은 서둘러 피난길에 나섰습니다.

[안도점/주민 : 저 산이 겁나니까. 이불 보따리 이런 거 사람 덮을 게 없으니까 챙겨와서…]

산불 땐 그토록 기다렸던 비.

이젠 이 비가 너무 무섭다고 합니다.

[안도점/주민 : 비 많이 오면 빗물이 여기까지 들어오니까 겁이 나서 못 살아요. 신발 다 버리겠는데… {괜찮아요.} 온 사방에서 물이 흩어져 내려온다고요.]

주민 130여 명이 사는 이 마을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안도점/주민 : {자제분들이 어머니 걱정돼서 오신 거예요?} 네. {비가 많이 와서요?} 네. 비도 오고. 노인네 어떻게 사나 싶어서… {마을회관으로 대피하는 거 많이 힘드실 것 같아요.} 그렇죠. 전동차 아니면 내가 꼼짝 못 해요.]

현장을 함께 둘러본 전문가는 예방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문현식/경상국립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 : 피해지 주변에 정상적인 숲에서 잘 자라고 있는 야생화, 풀이라고 하죠. 단기간에 흙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막을 설치하는 게…]

지금 이곳은 '당장 언제라도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문현식/경상국립대 산림환경자원학과 교수 : 불이 나서 나무가 피해를 입게 되면 식물 뿌리가 흙을 움켜쥐는… 우리가 흔히 '그물 효과'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효과가 없어지게 됩니다. 산사태는 부지불식간에 발생하는 거고… (주민들이) 피난할 수 있는 시간이 안 주어지는 거죠.]

그물망처럼 산사태를 막는 나무 뿌리는 석달 전 산불로 다 타버렸습니다.

산불 당시 간절했던 큰비 소식이 이젠 산사태 공포가 돼서 주민들을 잠 못 들게 하고 있습니다.

[작가 강은혜 / VJ 김진형 / 영상편집 홍여울 / 취재지원 권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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