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광필름 공정 ‘벤젠 노출’ 가능성… 암환자 나왔지만 실측조사 걸음마
“개인 입증 아닌 제도적 조사 필요”

최근 편광필름 제조 공정에서 20여 년간 일해온 노동자가 백혈병 판정(6월23일자 7면 보도)을 받았지만, 해당 공정이 병에 영향을 끼쳤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관련 조사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검증하려면 현장실사 조사 등이 이뤄져야 하는데 해당 산업 전반이 조사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실정이다.
산업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된 유기용제에 발암물질이 불순물 형태로 섞여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편광필름 산업 전반에선 고위험 공정에 대한 실태조사가 없어 산재 입증 책임 부담이 개별 노동자에게 가중되고 있다.
23일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석유계 제품 세척제 취급 근로자의 벤젠 노출 위험성 평가 보고서’(2020)에 따르면, 시중에 유통되는 톨루엔계 제품은 제조·유통 과정에서 미량의 벤젠이 불순물 형태로 포함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과거에는 MSDS(물질안전보건자료)상에 표기되어 있지 않으나 불순물로 벤젠 함량과 공기 중 노출 수준이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특히 톨루엔 등을 세척제로 사용한 공정에서의 벤젠 노출 수준은 상대적으로 더 높았을 것으로 사료된다”고 경고했다. 벤젠 노출은 백혈병 유발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 같은 고위험 공정이 특정 사업장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편광필름은 디스플레이와 광학 부품에 쓰이는 핵심 소재로, 한국니토옵티칼을 비롯해 국내 여러 업체에서 유사한 제조 방식이 활용되고 있음에도 해당 공정별 유해성 실측조사나 역학 조사는 전무하다.
류현철 직업환경의학 전문의(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는 “산재 판단은 단순한 의학적 인과관계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작업환경의 실질적 위험, 사회적 관리 책임, 보험제도의 공공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며 “과거에도 공정 전체의 위험성과 사회적 합의에 따라 산재를 인정한 사례들이 있었다. 지금 필요한 건 개인에게 인과관계 입증을 맡기는 게 아니라, 제도적 조사와 공적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유혜연 기자 pi@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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