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ESG, 규칙이 아니고 방향성에 대한 동의를 얻는 일

작물을 심고 수확을 기다리는 과정은 결과를 위한 정성과 노력들이 모여 농사라는 하나의 큰 흐름으로 자리 잡는다. 근교 작은 밭에 고추와 감자, 가지, 오이 등을 조금씩 심어 봤다. 내 손으로 직접 키운 작은 것들을 식단 위에 올리고 싶었다. 시작점을 단순과 대충으로 삼았지만 조금씩 꽃을 피우고 실체를 보이기 시작하자 기대와 순응, 기다림이 다가왔다. 처음 접하는 농사일은 그냥 부지런함만으로 되는 것도 아니고 이웃들의 지원에 따르더라도 따로 또 같이, 우선과 차례, 필수와 선택이 상황별로 엄청난 주의와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첫 경험, 과정 속에서 얼추 이해가 된다.
2025년은 양자역학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된 해이며, 이 학문은 원자와 입자 단위에서 설명되고 이해돼야 할 물리학 분야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을 거치며 양자역학을 기반한 과학기술은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해 질주해 온 것이다. 통신, 반도체, 레이저, 자기공명영상(MRI) 등 첨단 과학기술뿐 아니라 철학, 예술, 문화에까지 뿌리를 내리도록 역할을 했다. 필자의 경우 깊이는 없지만 속도와 위치, 입자와 파동을 통한 공존과 불확실성의 원리를 보고 들으며 소소하게 흥미를 느끼고 있다.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의 그 어떤 규칙, 시간과 에너지 양을 따지는 변동성도 인문적 소양 증진 차원에서 얕게나마 개념 정도 파악해 가는 중이다. 개별 단위와 그 개별 단위들이 섞여 합쳐진 것을 입자와 파동(흐름)으로 이해하니까 '규칙'과 '근거', 또 그것들이 주는 상호작용의 가치가 눈에 들어온다. 결국 주변 모든 것들과의 질서정연한 흐름이 힘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ESG에서 '그린워싱'은 시작점과 마지막에서의 근거와 절차에 대한 정당성을 요구하고 있다. 녹색으로 위장해서 본질을 흐리는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제재하고 가겠다는 보이지 않는 범세계적 규약, 협약에 따른 것이다. 특히 광고나 홍보전략상 친환경이 아닌데도 친환경인 것처럼 표현, 표시되면 어떤 형태로든 규제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다국적 석유기업 '로얄더치셀'이 나무심기 사업으로 탄소 흡수 의미의 광고를 냈다가 과장광고에 확인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지적받았다. 국내에서도 멸종 위기에 처한 펭귄을 생수병에 그려 넣기가 과학적 근거 없는 친환경 정책이라고 이야기되고 있다.
일면 타당하다고 여겨지지만 규제 일방으로 가면 모든 게 개별적으로 맞지 않고 근거가 취약할 수 있다. 맥락에서 작은 부분을 건드리면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탄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지나 심리학으로 들어가면 하나의 사실은 또 다른 하나의 사실과 부합할 수 없음도 허용해야 한다. 지속가능경영이나 중대재해 같은 이슈도 같은 범주에서 논의될 여지가 있다. 미국 월마트가 합성섬유 제품을 대나무로 만들었다고 광고해서 300만 달러 벌금을 낸 것이나 항공사의 탄소중립비행이란 광고에 철퇴를 내린 것은 어느 면에서 보면 당연하다. 그렇지만 과학적 근거가 제시되면서 그 가운데 좀 더 알리고 영향력을 높일 수 있는 과정이나 수단으로 추진했다면 이러한 것까지 묶어서 광범위적 위장이라며 제재를 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수십 년간 규제 철폐를 외치면서도 아직도 무수히 많은 규제가 널려 있고 발목을 잡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때그때의 힘과 상황논리의 한 입자로 그 반대의 것을 누르고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아직도 자리한다. 하나의 작은 입자에서 시간과 에너지가 보태지면 파동이 되고, 그 파동은 큰 흐름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많은데도 그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기업 경영에서 나타나는 작은 변화, 실천이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그것을 놓치지 않고 확장성을 도모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지속가능경영의 뿌리내림이 결정된다. 규제항목이나 가이드라인을 지정하고 무리하게 지키라고 하면, 더구나 그것이 입자적 일방성을 기준으로 흐름을 방해한다면 AI 시대에 인간과 기계가 함께 일하는 옳은 선택은 아니다. ESG 경영은 규제를 앞세운 규칙이 아니고 방향성에 대한 동의를 먼저 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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