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공이 아내를 내쫓은 사연, 복수불반(覆水不返)

우리에게 흔히 낚시의 달인으로 잘 알려진 강태공은 주(周)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강태공이 낚시하던 위수(渭水)는 오늘날 서안 서쪽 보계시(寶鷄市)의 시내에서 약 40㎞ 떨어진 외딴 계곡으로 조어대(釣魚臺)라고 불린다. 서백(西伯) 희창(姬昌)이 함께 나라를 도모할 인재를 찾아다니다가 마침 이곳에서 낚시하던 강태공을 우연히 만났다고 한다. 서백은 강태공과 이야기를 나눠 보고는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보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일에 함께하자고 부탁했다. 지금 이 계곡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강태공과 문왕이 만나는 장면을 석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강태공의 원래 성은 강(姜)씨이고 이름은 상(尙), 자는 자아(子牙)이다. 전하기로는 기원전 1156년쯤에 태어나 1017년에 죽었다고 하니 대략 140세까지 살았다는 셈인데 사실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강태공의 먼 할아버지가 여(呂) 땅에 봉해졌기 때문에 여상(呂尙)으로 부르기도 하고, 또 태공망(太公望)이라고도 한다. 태공이란 흔히 다른 사람의 아버지를 높여 부르는 호칭인데 나중에 문왕(文王)으로 추존된 서백이 평소 유능한 인재를 얻어 세상을 도모해 보고 싶었기 때문에 태공이 바라던 인물이라는 뜻에서 '바랄 망(望)'자를 붙여 '태공망'이라고도 부르게 된 것이다.
강태공은 서백의 초빙을 받아 상나라를 물리치고 기원전 1046년에 주나라를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그 공을 인정받아 제(齊)나라의 제후에 봉해졌다. 이때가 대략 강태공의 나이 90세쯤 됐을 때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사실로 믿을 수는 없겠다. 그렇더라도 강태공이 늘그막에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만나 능력을 발휘하고 새로이 나라 세우는 데 큰 공을 세운 성공적인 인생을 보낸 것으로 보인다.
역사는 강태공을 정치인으로서는 성공한 것처럼 평가하지만 가정적으로는 그다지 평탄하지 못했다. 자기 능력을 알아줄 사람을 기다리기 위해 매일 낚시를 하느라 정작 낚싯줄에 바늘을 끼지 않은 채였고, 게다가 낚싯줄을 강물에 담그고 있지도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강태공이 매일 같이 아무런 소득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지켜봐야 했을 그의 아내 심정은 어땠을까? 아내가 보기에 자신의 남편이 그래도 뭔가 큰일을 할 인물인 것 같기는 한데 허구한 날 낚싯대만 들고 덜렁덜렁 왔다 갔다 하는 게 또 얼마나 한심했을까 싶다. 집안 살림을 해야 하는 아내로서는 당연히 속이 터졌을 것이고 결국 집을 나가 버렸다.
그런데 남편이 주나라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제후의 벼슬까지 받아 크게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내는 다시 돌아와 용서를 빌고 자신을 받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마도 대개의 남편이라면 다시 찾아온 아내가 참으로 밉기는 하겠지만 이처럼 크게 성공한 마당에 함께 살았던 미운 정도 남아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 눈도 있으니 체면치레로 땅 몇 마지기와 작은 집이라도 마련해 주고 남은 생애 동안 먹고살 수 있도록 해줬어도 될 듯싶었을 터인데 강태공은 부하에게 대야에 물을 담아 오게 하고는 마당에 그 대야를 엎으라고 했다. 용서를 비는 아내에게 당신과 나의 관계는 이미 '엎질러진 물'과 같다며 아내를 내쫓았다. 이 이야기가 엎어진(覆) 물(水)은 돌이키지 못한다(不返)라는 의미에서 복수불반(覆水不返)이다.
세상일이라는 것이 기회가 곁에 늘 있는 것도 아니며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은 돌이킬 수 없다는 뜻에서 엎질러진 물이라는 표현이 매우 그럴듯하지만, 당시 강태공이 자신을 버리고 나간 아내가 아무리 미웠더라도 그처럼 냉정하게 대했다는 것은 참으로 의아하다. 하긴 남편이 결국 큰일을 할 인물임을 진작 알아봤더라면 좀 더 참고 기다려야 했는데 아내는 집안일 돌보느라 늘그막까지 죽어라 고생만 하다가 그 덕을 보지 못하고 말았으니 이것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 무엇이든 믿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 주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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