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달궜던 ‘민주’ 열정…더 나은 세상 위한 ‘후원’ 인연되길

한겨레 2025. 6. 23.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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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333333;"><strong><span style="color: rgb(0, 184, 177);">[길을 찾아서-박래군의 인권의 꿈] 58화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의 꿈 </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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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감시 평화단체 사무실 월세 ‘쩔쩔’
10여년 활동해도 후원금 사정 빠듯
상근 1~3명 작은 단체들 상시적 위기
최저임금 미만 인권활동가 30~40%
단체 재정 탓 활동과 ‘알바’ 겸하기도
인권운동 거리 둔 기업들 후원 꺼려
‘인권운동은 단판 승부 아냐’ 되되며
광장의 시민들 한 단체씩 후원 기대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가 창립 10주년을 맞은 지난해 4월26일 서울 대학로 한예극장에서 연 후원의 밤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열군’이 8월에 이사를 해야 하는데요, 사무실 공간 괜찮은 곳 좀 알아봐주실 수 있을지요?”

닷새 전, 열린군대를위한시민연대(열군) 대표인 박석진 후배가 텔레그램으로 보내온 메시지다. “보증금 2천만원에 월세 80만원”에 15평 정도의 사무실을 구하려고 하는데, 지금 쓰는 사무실보다 공간은 작은데 100만원 이하는 없다는 내용이었다. 나라고 뾰족한 수가 없으니,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마땅한 곳은 없었다.

열군은 “한국군을 인권과 민주주의, 평화를 위한 군대로 변화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2014년 4월에 창립했다. 군을 감시하고, 한국의 국방정책을 비판하는 평화단체다. 전쟁을 겪었고, 남북이 분단된 나라이지만 평화단체가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매우 어렵다. 나는 창립 때부터 열군의 공동대표를 맡았다가 지난해 10주년에 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400명을 겨우 넘긴 후원회원들의 회비로 운영하는 단체다. 그러니 2명 활동가의 상근비도 모자란다. 열군의 박석진은 처음 단체를 만들어 후원회원을 늘리는 일에도 자신 없어 했다. 일부러 자락을 깔아주고 후원회원 가입서를 내밀라고 해도 쭈뼛거리기 일쑤였다. 단체 활동이나 사업에는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활동가지만, 돈 달라고 하는 데는 영 자신이 없다.

활동가에게 모금이란?

인권단체 활동가이든, 평화단체 활동가이든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는 모금 활동가이기도 하다. 아니 모금 활동가여야 한다. 모금을 못 하면 단체를 유지·존속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후원회원을 늘리고, 회비를 증액하게 하고, 후원의 밤 행사도 기획해서 치러내고, 그래도 안 되니까 후원주점을 벌인다. 우리 단체 후원주점에서 티켓을 팔아준 단체가 후원주점을 할 때는 또 그만큼 티켓을 사주어야 한다. 언론에도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고, 이슈를 주도하는 소수의 단체를 제외하고 상근 활동가 두세명으로 버텨내는 작은 단체들에 재정 상황은 언제나 위기 상황이다. 어떤 때는 활동가들 스스로 활동비를 내리는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 만큼 생활이 더 빠듯해진다.

내가 몸담았던 인권운동사랑방에서는 오랜 논의를 거쳐서 1999년에 운동 원칙 선언(일명 ‘독립군 원칙’)을 만들어 실행한 적이 있다. 이 원칙의 핵심은 “자생력을 갖는 활동가가 되자는 것, 과도기적 조치로 나이·직급에 관계없이 활동비를 지급하되 상근활동가가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의 참여 속에 이루어지는 운동 … 재정에 맞춰서 활동가를 뽑는 방식을 없애고 인권운동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활동가가 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등”이었다. 활동도 하고,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서 경제 활동도 병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원칙을 세우자 활동가들은 경제생활을 위해서 별도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가장 쉬운 건 입시학원에서 단기 강사로 뛰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활동가가 9월께면 대학 정시를 앞두고 서울 강남의 논술학원으로 달려갔다. 석달 정도 학원 강사로 뛰면 어느 정도 수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기에 현장에서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가 사라졌다.

나는 학원 강사나 과외를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원고를 쓰고, 강연을 나갔다. 아무리 술에 취해도 집이나 사무실에서 밤중에 원고를 써냈다. 그럴 수 있는 활동가는 소수였다. 그 시기에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받는 활동비(월급이란 말은 맞지 않으므로)는 월 36만원이었다. 결혼해서 아이가 둘 있으므로 자녀 수당을 합친 활동비였다. 아내의 경제활동에만 의존할 수 없으니 한푼이라도 더 벌어서 보태야 한다는 생각에서 닥치는 대로 원고를 쓰고, 강연을 다녔다. 하지만, 이런 원칙은 곧 한계에 봉착했다.

2006년, 인권운동사랑방은 이 원칙을 현실에 맞게 수정해야 했다. 활동은 노동이고, 노동을 하면 그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때부터 최저임금 이상으로 활동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후원회원들을 꾸준히 늘려가야 했다. 가장 풍부한 인맥을 가진 나부터 핸드폰에 저장된 연락처를 뒤지고, 명함 철을 뒤져서 후원 요청을 했다. 매년 일정 시기를 정해 놓고 회원들을 늘려갔다. 한통의 전화를 하기 전에 머릿속에 수십가지의 시나리오를 생각했다. ‘나는 이 운동이 필요해서 하는데 다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까?’ ‘네가 뭔데 돈 달라고 하냐고 물으면 뭐하고 하지?’ 등등을 생각했다. 돈 달라고 하는 말이 쉽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만만한 대학 동기부터 찾아서 연락했고, 점차 안면 있는 사람들에게 하다가, 교수, 변호사, 기자 등등으로 넓혀갔다.

인권재단 사람에서 20주년 후원행사를 준비했다가 12·3 비상계엄으로 인해 행사를 취소하고, 인권활동 지원을 시행했다. 페이스북 갈무리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인권활동가

인권재단 사람에서는 2019년에 ‘지속가능한 인권운동을 위한 활동가 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절반 이상의 단체에서 2인 이하의 상근활동가가 근무하고 있었고, 월평균 정기후원금은 약 344만원이었다. 평균 정기후원자 수는 약 263명으로 조사되었다.” 또, “인권단체들은 최저임금에 근접한 활동비를 지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30~40% 정도의 인권활동가들은 여전히 최저임금 미만의 활동비를 받고 있었다.” 대부분의 인권단체 활동가들은 인권활동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최저임금 수준의 활동비를 받더라도 계속 인권활동을 하고 싶은데 단체 재정 상황이 그렇게 안 되니 반상근 활동을 하면서 이른바 ‘알바’를 하는 경우들도 많이 보였다. 1인 활동가 단체들도 많이 생겨나는데, 이들도 인권운동에 전념하기에는 재정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

특히 인권운동에는 기업들의 기부금은 거의 기대할 수 없다. 인권운동은 기업들의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그런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들어가니까 “기업과 국가로부터 재정 독립”이 원칙으로 서 있기까지 하다. 이에스지(ESG) 경영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많은 기업이 인권경영을 내걸고 있지만, 인권운동과는 거리를 멀리하고 싶어 한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서 인권재단 사람이 나름 노력하지만, 인권을 회피하는 기업들의 인식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나는 매년 모금활동을 해왔다. 잘 될 때도 있다. 이슈가 바람을 탈 때는 손쉽게 모금이 된다.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는 기금으로 활동할 수 있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 그렇지만 꼭 필요한 일인데 기금이 안 모이는 경우는 초조해진다. 가치를 위한 후원보다는 가난을 앞세운 구호성 모금에 더 눈이 가는 것이 사실이지 않은가. 추상적인 가치보다는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는 사건에 더 많이 관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모금을 시작할 때 모금의 이름을 좀 더 명확하게 지으려 애쓰고, 그 사업을 통해서 달라질 현실을 그려서 보여주려고 한다. 인권운동은 1년 농사이거나, 한차례 대박 나는 장사가 아니지 않은가.

지난 4월7일에 열린 4·16재단 후원회 발족식에서 박태웅 공동대표(녹서포럼 대표)가 인사하고 있다. 4·16재단 제공

시민사회 후원은 좋은 세상을 위한 투자

올해도 나는 모금을 해야 하는데, 바람을 타기가 쉽지 않다. 인권재단 사람이 인권센터 ‘스테이션 사람’을 건축하는데 은행 빚을 엄청 졌다. 매월 은행 이자를 감당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은행 이자로 나갈 돈을 인권단체들 지원으로 돌리고 싶은데 막막하기만 하다. 올해부터 ‘공익활동가사회적협동조합 동행’ 이사장으로 공익활동가 지원을 위한 기금을 확충해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다. 2명의 상근활동가 활동비도 간당간당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후원 행사가 6월25일에 열리는데, 전국 4백여개 시민사회단체의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후원금을 더 모아야 한다. 올해 새로 시작한 생명안전을 위한 기금을 만들기 위한 4·16재단의 중·고액 후원자 모임인 ‘416인 클럽’은 또 어떤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사회를 염원하지만, 안전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시민역량을 키워야 한다. 이런 모든 활동이 돈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늘도 나는 이런 많은 일에 후원금을 모을 방안을 고민하고, 전화기와 명함 철을 뒤져서 연락할 곳을 찾을 것이다. 세상에는 생각보다 선한 양심을 가진 ‘귀인’들이 많다. 그들에게 이런 좋은 사업이 같이 해보시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야 한다. 인권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에 후원하는 일은 좀 더 좋은 세상을 위한 투자다. 그런 투자가, 이런 어려운 시절에 더 활발해지기를 바라는 건 헛된 꿈일까? 광장에 나왔던 시민들이 한 단체라도 후원을 시작하기를 바란다. 그런 작은 후원들이 우리가 바라는 모두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박래군 | 36년째 인권운동가로 살고 있다. 유가협, 인권운동사랑방, 인권재단 사람을 거쳐서 현재는 4·16재단 운영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 ‘상처는 언젠가 말을 한다’ ‘우리에겐 기억할 것이 있다’ ‘사람 곁에 사람 곁에 사람’, 공저서 ‘이따위 불평등’ ‘새로고침’ ‘살아남은 아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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