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세대 국가관·안보관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까워”

김대욱기자 2025. 6. 2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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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75주년 포항 전투 참전용사 인터뷰
권정열 학도의용군 포항지회장
1950년 7월 당시 17세 나이로 참전
치열했던 구 포항역전투 아직도 생생
일제 강점기 때 나라 없는 설움 경험
조국 소중함 깨달아 목숨 걸고 싸워
강제징집 당했지만 원망·후회 없어
젊은이들 나라 사랑 마음 가졌으면
권정열 학도의용군 포항지회장이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에서 학도의용군 활약상을 설명하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관이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해마다 6·25가 돌아오면 권정열(92·사진) 학도의용군 포항지회장은 그 때를 기억하면서 남다른 감회에 젖는다. 6·25 75주년을 맞은 올해는 더 더욱 그렇다.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는 권 회장은 포항 우현동 아치골이 고향으로 6·25가 발발했던 지난 1950년 7월 학도의용군으로 포항전투에 참전했다.

그 당시 17세 였으며 동지중·고 전신인 상공중학교(6년제) 재학 때였다.

종손이었던 그는 피란을 가라는 집안의 권유가 있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러지 못했고 죽도시장 인근을 지나던 중 강제징집을 당했다.

그 때는 지금과 달리 고등학생들도 기초 군사훈련을 받아 권 회장은 총을 쏘아 본 적은 있었지만 그래도 기본 훈련조차 받지 못하고 전쟁에 바로 투입됐다.

권 회장은 포항에 주둔 중이던 3사단 공병대대에 편입돼 성인 및 학생 30여 명과 트럭을 타고 경주 강동 다리 복구 작업에 참여했다.

당초 그 다리는 6.25가 발발하자 인민군 남하를 막기 위해 파손했지만 포항 사수를 위해 국군이 건너기 위해 다시 임시 복구했다.

그는 이후 포항여중 전투, 구 포항역 전투 등에 참전했다.

특히 현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 인근 구 포항역 전투 상황의 치열함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권정열 학도의용군 포항지회장이 6.25 포항 전투 참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권 회장은 국군들과 구 포항역 부근 현 포항의료원 앞에 매복하고 있었는 데 용흥동 연화재를 넘어 산을 타고 탑산으로 내려온 인민군들과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였다.

처음 인민군들이 탑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아군인 줄 알았지만 중대장의 '적이다'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전투에 나섰다.

또 포항여중 전투 당시에는 동료들과 수류탄을 들고 인민군 탱크를 폭파하려고 계획했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는 학도의용군으로 입대한 지 3개월 후인 1950년 10월 제대했으며 고교 졸업 후 다시 현역으로 군에 입대했다.

권 회장은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 명예관장으로써 학생들이 관람을 오면 전쟁을 겪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이나마 심어주기 위해 그 당시 참전했던 이야기를 강의하고 있다.

권 회장은 "나는 6.25에 참전도 했고 일제시대를 겪으면서 나름 조국에 대한 국가관을 가졌지만 현재 젊은 세대들은 국가관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며 "특히 일제시대 나라 없는 설움을 경험했기 때문에 학도의용군으로 참전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을 때가 많고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대내외적인 상황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을 때도 있다"며 "젊은 세대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맡은 바 책임을 다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 데 힘을 모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권 회장은 "숱한 포화 속에서도 다행이 큰 부상을 입지 않았다. 그 때 안 죽고 살아 돌아온 것은 순전히 하나님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며 "전투 경험은 더욱 투철한 국가관을 가질 수 있게 했고 사회생활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 비록 강제징집을 당했지만 학도의용군 신분으로 6·25에 참전한 것을 단 한번도 원망하거나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포항시 북구 용흥동 탑산길 14번지)은 지난 2002년 개관했으며 관람료는 무료다.

기념관에는 학도의용군 연혁, 유품 및 사진, 주요 전투지 활약상(영상 및 사진), 기타 학도의용군과 관련된 자료가 비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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