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C] 아부에 취하면 생기는 일

유대근 2025. 6. 2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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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쪼찡은 언론계 은어로, 일본어인 초우친(提燈·제등)에서 왔다.

꼭 기사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상사의 심기를 잘 살피며 적당히 기분을 맞추고 아부하는 이들에게도 "쪼찡을 잘한다"고 표현한다.

오래전 일이 떠오른 건 최근 교육계 원로와 저녁 식사를 하다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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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제76주년 국군의날 시가행진 행사에서 김용현(왼쪽) 당시 국방부 장관 이야기를 듣고 있다. 왕태석 선임기자

"나는 쪼찡하는 후배들이 좋더라. 나이 들수록 더 그래."

꼬박 10년은 된 일인데 그 말은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함께 일했던 간부급 선배가 가볍게 던진 얘기였다. 쪼찡은 언론계 은어로, 일본어인 초우친(提燈·제등)에서 왔다. 누군가를 칭찬해 띄워주거나 빛내주는 기사를 '쪼찡 기사'라고 한다. 늦은 밤 초롱을 들고 고관대작의 앞길을 비춰줬던 부하의 역할과 비슷해 따온 표현인 듯하다. 꼭 기사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상사의 심기를 잘 살피며 적당히 기분을 맞추고 아부하는 이들에게도 "쪼찡을 잘한다"고 표현한다.

그날 선배는 농담의 외피를 입혀 말했지만 실은 완전한 진심이었던 것 같다. 고참급이라고 해서 본인 판단에 늘 자신 있는 건 아닐 텐데 후배가 "그 말이 맞다"며 맞장구쳐 주면 기분이 편해지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일이 떠오른 건 최근 교육계 원로와 저녁 식사를 하다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지키려 노력해왔다는 '7대 3 원칙'을 말했다. 학자, 행정가로 일해오며 '내 판단이 틀릴 확률이 30%쯤은 된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기관장으로서 첨예한 쟁점을 저울에 올려두고 재빨리 가치판단해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열어두고 나니 반대자의 얘기를 들을 때도 세모눈을 뜨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반대로 최고위 의사결정권자가 자기 소신 없이 너무 우유부단하면 조직이 산으로 가니 7대 3이 황금비율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후 여러 제언이 쏟아진다. 대통령실에 '레드팀'(조직 내 의견 쏠림을 막기 위해 의무적으로 반대 견해를 내는 역할)을 두라는 것도 그중 하나다. 온갖 난관을 뚫고 대권을 거머쥔 대통령 입장에선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해지기 쉽다. 더군다나 정치적 양극화와 확증 편향(자신의 견해를 강화해줄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의 정보는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어느 때보다도 공고해진 환경에서 지지자들의 이야기만 듣다 보면 자기확신은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의도적으로 쓴소리하는 참모나 조직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이 대통령이 강훈식 비서실장 등 '친명'(친이재명계)이 아닌 인사에게 대통령실 주요 보직을 맡긴 이유도 이 때문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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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60720000004989)

이 대통령을 포함해 정권 고위직들이 7대 3 원칙을 마음의 기본값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조직 내 반대자의 의견을 '내부 총질'이라 무시하고, 아첨하는 참모들에게 둘러싸인 채 대통령을 '쪼찡'해주는 유튜브만 보며 위안 삼았던 권력자 탓에 온 국민이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현실을 겪어보지 않았나.

12·3 불법 비상계엄이 실패한 뒤에도 국민 앞에 참회하는 대신 대통령에 대한 충심만 드러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같은 자가 더는 나타나선 안 된다. 대통령 윤석열의 말로는 도수 높은 술뿐 아니라 아부에 취해 젖어들던 순간 정해졌을지 모른다.

유대근 기자 dynam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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