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의 저주' 독성 곰팡이가 백혈병 치료제로 변신

이병구 기자 2025. 6. 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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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무덤을 조사한 고고학자들의 급사를 유발하는 이른바 '파라오의 저주'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곰팡이종에서 백혈병 치료제 후보 물질이 발견됐다.

이후 과학자들은 파라오의 무덤에서 수천년 동안 잠복했던 독성 곰팡이 포자의 발아를 유력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후속 조사에 따르면 무덤에서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Aspergillus flavus)'라는 누룩곰팡이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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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리 가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화학·생물분자공학과 교수팀이 배양한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Aspergillus flavus)' 곰팡이 샘플.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는 면역력이 약한 사람의 폐에 감염돼 아플라톡신이라는 독소를 생성하고 증상이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Bella Ciervo 제공

오래된 무덤을 조사한 고고학자들의 급사를 유발하는 이른바 '파라오의 저주'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곰팡이종에서 백혈병 치료제 후보 물질이 발견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돼 수십 년간 백혈병 치료에 사용된 물질과 비슷한 수준의 항암 효과를 보였다.

셰리 가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화학·생물분자공학과 교수팀은 독성 곰팡이에서 혈액암인 백혈병 암세포를 죽일 수 있는 화합물을 발견하고 연구결과를 23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케미컬 바이올로지'에 공개했다.

1920년대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견·조사한 고고학자 중 일부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당시 명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자 사람들은 무덤 침입자를 막기 위해 고대 이집트인들이 저주를 걸었다고 생각했다. 이후 과학자들은 파라오의 무덤에서 수천년 동안 잠복했던 독성 곰팡이 포자의 발아를 유력한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다.

1970년대에는 과학자 12명이 15세기 폴란드 왕인 카지미에시 4세의 무덤을 조사하고 몇 주 뒤 10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후속 조사에 따르면 무덤에서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Aspergillus flavus)'라는 누룩곰팡이가 발견됐다. 아스페르길루스 균주는 면역력이 약한 사람의 폐에 감염돼 아플라톡신이라는 독소를 생성하고 증상이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무덤의 곰팡이와 고고학자들의 죽음 사이의 연관성이 제시된 것이다.

연구팀은 아스페르길루스 균주에서 생성되는 물질인 '립(RiPPS)'에 주목했다. RiPPS은 세포 내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세포소기관인 리보솜에서 합성된 후 변형된 펩타이드다. 펩타이드는 단백질의 기본 단위인 아미노산이 결합한 짧은 사슬 물질을 말한다. 일부 RiPPS는 암세포에 특이적으로 독성을 보여 암 치료제로 연구된다. 

연구팀은 아스페르길루스 균주 12종을 분석하고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 종의 특정 단백질이 RiPPs 생산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아스페르길루스 플라부스에서 그동안 보고된 적 없는 RiPPs 4종을 발견했다. 4종의 RiPPs에는 특정 고리 구조가 공통적으로 존재했고 곰팡이 이름을 따 '아스페리기마이신(asperigimycins)'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스페리지마이신 4종을 인간 암세포와 혼합하자 그중 2종이 백혈병 암세포에 강력한 살상 효과를 보였다. 수십 년간 백혈병 치료에 쓰인 FDA 승인 약물인 시타라빈, 다우노루비신과 동일한 수준의 효과라는 평가다.

연구팀은 추가 실험을 통해 아스페리기마이신이 암세포의 세포 분열 과정을 방해한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암세포는 정상세포와 달리 비정상적으로 분열한다는 특징이 있다. 연구팀은 "아스페리기마이신은 세포 분열에 필수적인 세포소기관인 미세관 형성을 차단한다"고 설명했다.

아스페리기마이신은 유방암, 간암, 폐암 등 다른 암세포나 세균, 곰팡이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아스페리기마이신이 특정 세포 유형에만 치료 효과를 낸다는 뜻이다. 연구팀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곰팡이 RiPPS가 다수 존재할 수 있다"며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미개척 영역"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향후 아스페리기마이신을 동물 모델에서 테스트할 예정이다. 궁극적으로 인간 임상시험이 목표다. 가오 교수는 "자연이 우리에게 놀라운 '약국'을 선사했다"며 "그 비밀을 밝혀내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 doi.org/10.1038/s41589-025-01946-9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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