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구제하면 기업에 죄 안 묻는 ‘동의의결’…지난해 13건 역대 최다

안태호 기자 2025. 6. 2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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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위원회 세종청사의 모습. 연합뉴스

미국의 빅테크 기업 구글은 유튜브에 유튜브뮤직을 부당하게 끼워팔기 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을 처지에 놓이자 상생기금 300억원을 내놓겠다며 지난 2월 동의의결을 신청했다. 동의의결은 민사 재판의 ‘합의’와 유사한 제도로, 법 위반 혐의를 받는 기업이 원상복구·피해보상 방안을 내놓고 당국이 타당성을 인정하면 법 위반을 판단하지 않고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접수된 동의의결 신청 건수가 역대 가장 많은 13건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하도급·가맹사업법 등 공정거래법에서 갈라져 나온 이른바 ‘갑을관계법’에 2022년부터 동의의결 제도가 도입되면서 활용 빈도가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이다.

23일 공정위에 따르면, 지난해 동의의결 신청 건수(위원회 상정 기준)는 13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두 자릿수를 넘은 것도 처음이다. 기존 최다 기록인 4건(2013년, 2022년)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다.

2011년 공정거래법에 처음 도입된 동의의결은 공정위가 운영하는 제도 가운데 가장 논쟁적인 장치로 꼽힌다. 피조사 기업이 법 위반 혐의가 제기된 행위를 자체적으로 시정하고, 예상 과징금 수준에 준하는 상생기금이나 피해 구제책을 제시하면 법 위반 여부를 따지지 않고 사건을 종결한다.

최근 동의의결 신청이 급증한 배경으로는 ‘갑을관계법’에 동의의결이 도입된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갑을관계법은 하도급, 가맹사업 등 특정 거래 유형의 구조적 특성을 반영해 제정한 공정거래법에서 파생된 하도급·가맹거래·대규모유통업·방문판매업법 등 개별법들을 뜻한다. 이들 법에 2022년에 처음 동의의결 조항이 도입된 뒤, 2022년 전체 4건 중 2건, 2024년 13건 중 12건의 ‘갑을관계법’ 위반 사건 동의의결 신청이 집중됐다.

직접적인 피해구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동의의결 실효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정위가 법령 위반으로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과징금이 국고로 귀속되고, 피해자는 가해 기업을 상대로 별도 손해배상 소송을 걸어 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동의의결 절차로 들어가면 과징금에 해당하는 피해 보상이 피해자에게 직접 이뤄질 수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갑을관계법 위반 혐의로 조사받는 기업들이 동의의결 제도를 인지하고 활용하려는 사례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흐름에 따라 동의의결 활용 사례는 향후 늘어날 공산이 있다. 올해 들어서도 구글(유튜브뮤직 끼워팔기)과 효성(하도급 기술자료 부당 요구) 등 2건이 공식 접수됐고, 쿠팡과 배달의민족 등도 가맹점 등에 대한 동의의결 신청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공정거래법 담당 변호사는 “최근 기업들도 불복 소송을 이어가기보다는, 기업 이미지와 실익을 따져 동의의결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분위기”고 말했다.

다만 ‘면죄부’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공정위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갑을관계를 악용해 덩치를 키운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나누는 방식으로 처벌 조항을 피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봉의 서울대 경쟁법센터장은 “동의의결은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행위의 재발을 막는 데 한계가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법 위반으로 판단될 경우 부과될 과징금 수준에 상응하는 상생기금 등 구제책이 실효성을 갖는다면 재발 방지 효과가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예상되는 과징금 등 조치 수준과 부합하는 구제책이 담겨야 하는 등의 조건이 법령에 명시돼 있어 조건을 깐깐하게 따진다”며 “만약 기업이 약속한 구제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1일당 200만원 이하)을 부과하거나 동의의결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 애플은 과거 국내 통신사에 대한 갑질 혐의로 1천억원 규모의 상생기금안 조성하는 내용의 동의의결을 승인받았으나 이행 시점을 하루 어겨 200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부과받았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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