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가쁘게 점멸하는 스크린, 당신은 출구를 잃었나요? [요즘 전시]

이정아 2025. 6. 23. 16:5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LED 화면이 전시장을 사방으로 에워싼다.

숨 가쁘게 점멸하는 스크린은 맹렬하게 붉은빛을 내뿜었다.

"과열된 현재를 암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납작한 스크린은 막대한 자본과 순간마다 변화하는 기술이 뒤엉킨 오늘날 문명의 표상이 됐다.

앞서 작가는 미디어 설치 작품 '월스'(Walls)로 오늘날 스크린의 본질을 다시 정의해 왔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송은미술대상 권아람 3년 만의 개인전
피버 아이·백룸스 등 미디어아트 작품 눈길
송은미술관 지하 2층 전시장에 설치된 권아람의 ‘백룸스’(The Backrooms). [송은문화재단]
송은미술관 지하 2층 전시장에 설치된 권아람의 ‘백룸스’(The Backrooms). [송은문화재단]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LED 화면이 전시장을 사방으로 에워싼다. 숨 가쁘게 점멸하는 스크린은 맹렬하게 붉은빛을 내뿜었다. “과열된 현재를 암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납작한 스크린은 막대한 자본과 순간마다 변화하는 기술이 뒤엉킨 오늘날 문명의 표상이 됐다.

송은미술관 3층을 뒤덮은 이 작품은 ‘피버 아이’(Fever Eye). 열병을 앓는 핏빛 눈빛을 떠올리게 하듯 LED 화면은 출구조차 잃어버린 디지털 세상으로 관람객의 시선을 붙들어두려 안간힘을 쓴다.

제21회 송은미술대상을 수상한 권아람 작가가 3년 만에 개인전 ‘피버 아이’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송은미술관에 다시 섰다. 오는 24일 개막하는 이번 전시는 점점 밝아지는 기계의 시선 안에서 희미해져 가는 인간의 감각과 사고를 성찰하게 만드는 작가의 신작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송은문화재단은 2001년부터 해마다 송은미술대상 수상자를 선정해 왔다.

송은미술관 지하 3층 전시장에 설치된 권아람의 ‘피버 아이’(Fever Eye). [송은문화재단]

앞서 작가는 미디어 설치 작품 ‘월스’(Walls)로 오늘날 스크린의 본질을 다시 정의해 왔다. 조각난 스크린과 거울로 이뤄진 이 작업은 스크린이 단순히 이미지를 실어 나르는 매개가 아니라, 욕망이 소용돌이치며 스며들고 다시 뿜어져 나오는 하나의 통로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제작된 신작 ‘백룸스’(The Backrooms)가 어둡게 조성된 전시장 지하 2층에 자리했다. 환각에 빠진 것처럼 오류로 점철된 시퍼런 빛이 LED 화면에서 쏟아졌다. 그렇게 어긋나고 구멍 난 이미지들이 시야를 빈틈없이 채워나갔다. 이곳에 선 관람객이라면, 마치 영혼 없는 디지털 신경망이 인간의 사고를 점령해 버린 듯 무방비 상태로 평평한 화면 속으로 밀려들어 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작품 이름인 백룸은 현실과 가상이 뒤엉킨 무한하고 비좁은 공간을 뜻한다. 실제로 작가는 익숙했던 공간의 반복과 왜곡, 출처를 알 수 없는 이미지의 누적이 빚어낸 ‘문턱 같은 공간’을 전시장에 구현하려고 했다.

권아람 작가. [송은문화재단]

이렇다 보니 관람객은 스크린으로 작가가 펼쳐 보인 틈새에서 끊임없이 자문하게 된다. 반복되고 무화(無化)되는 풍경에서 우리는 어디쯤 서 있는 걸까. 기계의 눈이 점점 선명해질수록 인간다운 사고는 어디로 스며들어 희미해지고 있는 걸까. 과열된 디지털 생태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자유로운 존재일 수 있는 걸까. 권아람의 작업은 이런 물음을 직설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도록 한다.

반복적으로 깜빡이는 스크린은 연극 연출 기법인 ‘생소화 효과’에서 착안한 ‘플리커 현상’을 고려했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이는 관람객이 무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 자체를 객관적으로 보게 만든다. 작가는 “시각 자극만으로 관람객이 스크린 속 상황과 거리를 두고 고찰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9일까지. 무료 관람.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