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설] 국보 '영천 청제비'

경북 영천 금호읍 구암리에 하찮아 보이는 작은 비석이 있다. 영천 청제비(菁堤碑)다. 처음 보는 이들은 고개를 갸웃하겠지만 이 비석을 낮잡아 봐서는 안 된다. 이 비는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인 치수(治水)의 증거물이다. 비석이 발견된 영천은 신라시대에 체야화군(切也火郡)이라 불렸다. 원래 독립된 국가였던 골벌국(骨伐國) 또는 골화국(骨火國)이 신라에 병합된 뒤 군이 설치된 곳이다.
신라가 갓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공인해 국가 체제를 정비하던 신라 법흥왕(法興王) 23년(536년)에 커다란 저수지 하나를 건설했다. 이 저수지가 '청못(菁池)'이고 이를 기념해 세운 비가 청제비다. 비석에는 누가 일했는지, 누가 감독했는지, 얼마나 많은 논이 이 물로 혜택을 보는지 등을 기록해 놨다.
비를 건립한 지 262년이 흐른 신라 원성왕(元聖王) 14년인 798년에 다시 청제의 수리 기록이 새겨진다. 보수 작업에 1만4000명이 동원됐고 도끼를 사용하는 기술자 136인과 법공부(法功夫·국가에 소속된 일꾼)가 참여했다는 내용이다. 국가 조직과 기술력이 총동원된 대역사였던 것이다. 이 두 시기의 기록이 한 비석의 양면에 새겨져 있다.
이후 조선 숙종(肅宗) 때인 1688년, 비석이 부러져 땅에 묻히자 지역 유생 세 사람이 비를 다시 세우고 그 내용을 다른 비석에 기록해 세운다. 이처럼 제방의 역사에 대해 세 시대에 걸쳐 비에 새겨 남긴 예는 없다. 청제비에는 각각의 당대 사회 조직, 기술, 행정체계, 물관리 방식, 백성들의 노동 방식까지 기록돼 있다. 한반도에 남은 수많은 비석 중에서도 국가 토목공사의 실상을 이처럼 생생하게 전하는 유물은 드물다. 또한 청못은 지금까지도 관개시설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영천 청제비'가 지난 20일 1969년 보물 지정 이후 56년 만에 국가유산청 심의를 거쳐 국보로 승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