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초피나무에서 떠올린 어머니의 마음

오충근 2025. 6. 2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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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피나무 / 사진=오충근

사국(四國, 일본 시코쿠)에 갔습니다. 교수님을 졸라 이뤄진 선진지 견학입니다. 한라봉의 자근(自根) 때문입니다.  

점심 때문에 예약한 식당을 찾았습니다. 물받이가 특이한 곳이었습니다. 빗물이 내려오다 잠시 멈출 것 같았습니다. 그 곁에 심겨 있는 초피나무를 봤습니다. 무늬 같은 이파리가 선연한 몇 개의 화분이 있었습니다. 여기도 우리 마당의 화분, 어머니 같은 분이 살고 있구나. 잠시 집을 떠올렸습니다. 

어머니가 아끼시는 초피나무에 벌레가 일었습니다. 한 개 두 개 다듬다가 사국 일이 기억났습니다. 겸사겸사 전화를 드렸습니다. 

"지난번에 예, 일본도 자리(자리돔) 먹엄수과. 제피(초피)가 싱거젼 이성게 마는 예." 
"자리는 아니 먹어라만, 국에도 한 잎 넣고 빵에도 한 잎 넣고 향신료로 쓰주. 일본 사람들은 막 좋아 헌다."

정원수는 쓰임이 우선입니다. 국화보다는 고추를 심습니다. 우리나 일본이나 길러서 쓰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초피 열매에는 이상한 맛이 있습니다. 사탕을 만들어 졸음 운전할 때 쓰면 잠이 달아날 것 같습니다. 우연히 생긴 몇 방울을 차에 두고 다녔습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총각 때 이야기를 떠올려 봅니다. 사람을 사서 찾아간 숲, 아침 숲에는 백서향이 환장했습니다. 엄청 맑은 향이, 안개 보다 짙은 게, 안개에 싸여, 안개 보다 아래에 있었습니다. 코를 벌름거리며 광질난 소처럼 뛰다가, 백서향 앞에서 손으로 훠이훠이, 난꽃 향기 맡는 듯 시늉도 했습니다.  

내가 하는 꼴을 보던 안내자가 말을 겁니다. 

"별일이여, 참."
"예?"

눈을 맞췄는데, 길섶에 마른 초피 열매가 있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따서 삼켰습니다. 아, 氣(기)막힌 맛, 혀의 세포들이 일제히 농성합니다. 다시 입에 넣으면 흡사 '같이 죽자'하는 맛이었습니다. 태연하게 웃으며 나머지는 들고 나왔습니다. 달라고 해도 거절했습니다.  

향료를 검색하다 중전이 초피 가루를 후궁의 침소에 뿌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무슨 성분이 있을까, 씨앗을 떼어 놓은 것도 중전의 일 같긴 합니다.  

자리회엔 제피가, 어릴 때는 저어하던 맛이 지금은 아니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자리를 다듬으시면 저는 제피를 따옵니다. 수저를 얹는 것입니다. 막둥이는 가시가 무서워 도망갑니다. 안끄레 바끄레 모든 식구들이 같은 밥상에 앉습니다. 

결혼하며 마당에 벚나무를 심었습니다. 벚나무는 능수벚나무, 꽃이 화려해 동네에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어머니는 눈으로 보는 것은 배부를 수가 없다며 소금물을 부었습니다. 그 자리에 초피나무를 옮겨왔습니다. 깍지벌레가 먹고 다시 심고 반복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다퉜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지금에야 눈을 뜹니다. 식구들이 둘러앉은 밥상은 큰 복이었습니다. / 오충근 두가시한라봉 농장(식물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