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계엄 마주한 광주·전남 청년들 "5·18은 고립, 12·3은 연결"

강주비 2025. 6. 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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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2030, 5·18과 비상계엄을 말하다
두 계엄 모두 권력의 폭주
달라진 건 시민 대응 방식
가짜뉴스·알고리즘 딜레마
오월정신 헌법전문 수록必

광주·전남 청년들은 5·18민주화운동과 12·3 비상계엄 사태 모두, 국가 권력에 맞선 시민 저항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맥을 같이 한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두 계엄(1980년 5·17과 지난해 12·3) 사태의 공통점으로 '정당성을 결여한 권력의 폭주'를 꼽았다. 12·12 군사반란 이후 광주를 고립시킨 전두환 정권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윤석열 전 대통령 또한 정치적 국면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계엄을 활용하려 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국가가 시민을 통제하려 했다는 점에서도 둘은 닮아 있었다. '이들은 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무등일보는 5·18 45주년을 맞아 광주·전남 지역 청년 10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했다. 5·18에 대한 기억과 현재적 의미, 두 계엄 상황의 공통점과 차이점, 오월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 필요성 등에 대한 청년들의 얘기를 들어보기 위해서다. 청년들이 말하는 5·18은 '역사'라기보다는 '기억'에 가까웠다. 가족 중 5·18을 겪은 이들이 있다는 응답이 적지 않았고, 그 기억은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다.

사회 시스템과 제도적 대응은 차이를 보였다. 5·18은 무력으로 끝났지만, 12·3 비상계엄은 국회의 탄핵소추와 헌법재판소의 인용으로 종결됐다. 청년들은 "계엄의 목적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헌법과 여론, 시민이 함께 작동한 점에서 1980년과 결정적으로 달랐다"고 했다. 다음은 청년들과의 일문일답.

- 가족이나 주변 어른들은 5·18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정평호=가족 중 5·18 당시를 직접 겪은 분들은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힘들어하셨다. 말을 잇지 못하셨고, 지금도 그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계신다. 그런 모습을 보며 어떤 위로도 차마 건넬 수 없었다.

▲신동호=그 시기를 직접 경험한 분들은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기억이 다시 떠올라 일상생활조차 힘들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만큼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것이다.

▲박준원=충격·공포·분노·걱정·슬픔·참담함. 세상의 모든 추악하고 험한 말들을 모아야 당시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5·18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고 하셨다.

▲김상영= 당시 광주는 계엄령으로 봉쇄된 상태였고, 곳곳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시민들은 큰 고통을 겪었고, 그 기억이 반복될까 늘 두려워하셨던 것 같다. 그 비극은 지금까지도 깊은 마음속에 남아 있다고 하셨다.

▲이가빈=조부모님은 억압된 사회 분위기와 정보 차단, 군의 폭력적 대응을 선명히 기억하신다. 5·18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며, 지금도 그분들에겐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SNS나 유튜브에선 이를 왜곡하고 지역 갈등을 부추기는 콘텐츠도 많다. 이제는 진실을 바로 세우고, 지역 간 갈등이 아닌 이해와 공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1980년 5월과 2024년 12월, 두 비상계엄 상황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황혜연=공통점은 광장에 모여 서로를 확인했고, 공동의 적에 맞서 싸웠으며,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눴다는 점이다. 1980년엔 '주먹밥'이 있었다면 2024년엔 '선결제'가 있었다. 차이점은 당시엔 정보 차단으로 고립된 반면, 이번엔 SNS 덕분에 시민들이 곧바로 광장으로 모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총칼 없이도 평화롭게 싸울 수 있었고, 가요 박자에 맞춰 깃발을 흔들며 시민들이 하나가 됐다.

▲신동호=가장 큰 차이는 진실이 드러나는 속도다. 1980년엔 언론 통제와 지역 고립으로 진실이 숨겨졌지만, 2024년엔 실시간 정보 공유로 계엄의 부당함이 즉시 드러났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진실을 외면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은 닮아 있다.

▲박준원=두 경우 모두 비이성적 계엄이었다. 전두환은 군사반란 이후 반대 세력을 제압하려 했고, 윤석열은 의회를 마비시키려 했다고 본다. 이번 계엄은 조기 해제로 목적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계엄은 전시 상황에서나 정당화될 수 있다. 5·18은 시민군이 진압당했지만, 2024년엔 의회가 작동했고 헌법재판소가 탄핵 소추를 받아들였다. 여론이 갈렸다면 만장일치 탄핵은 어려웠을 것이다.

▲박근우=지금은 원하는 정보를 언제든 꺼내볼 수 있는 정보의 시대다. 과거 계엄과 5·18은 정보 통제와 군대 동원이 가능했기에 발생했다. 전례가 없었기에 참혹했던 것이다. 이번엔 시민들이 즉각 거리로 나섰고, 군도 충돌을 피하려 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다.

▲김상영=공통점은 시민들의 대규모 참여, 차이점은 유혈 사태가 없었다는 점이다. 계엄 선포 당일 유혈 사태만은 없길 바랐고, 다행히 국회의 대응과 빠른 해제로 큰 충돌 없이 지나갔다. 국민의힘 대표와 국회, 대통령의 결정이 조화를 이뤘다고 본다.

▲김청우=공통점은 개인이나 집단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계엄이라는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차이점은 5·18 당시는 군의 힘이 막강했고 정보화 수준이 낮아 시민들이 사실을 잘 몰랐다는 것이다. 이번엔 민주주의적 과정에서 탄핵이 이뤄졌지만, 만약 정보화가 덜 돼 있었다면 또 다른 비극이 발생했을 수도 있다.

-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지금, 5·18 당시와는 다른 방식의 왜곡이나 혼란이 있다고 느끼나.

▲황혜연= SNS나 유튜브는 양날의 검이다. 정보를 빠르게 주고받을 수 있지만, 알고리즘으로 인해 한쪽 정보만 접하게 되는 폐쇄성도 있다. 이것이 탄핵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 배경 중 하나라 생각한다. 선동과 조작으로 수익을 내는 구조가 사라진다면, 사람들도 좀 더 솔직하게 행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박준원=매체 발전은 민주주의에 큰 영향을 준다. 이번에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와 의견이 활발히 공유됐고, 서로 다른 관점을 접할 수 있는 창구가 됐다. 물론 왜곡이나 편향도 존재하지만, 수용자는 결국 유용성과 용이성을 기준으로 매체를 선택한다. 좋은 매체가 많아질수록 민주주의도 성숙할 것이다.

▲김청우= 1980년엔 정보 전달 매체가 적었고, 언론은 정권의 도구였다. 지금은 정보 접근이 자유롭고 대응도 빠르지만, 누가 어떤 정보를 접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내용이 달라진다. 가짜뉴스와 저급 콘텐츠가 넘쳐나는 상황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김상영=계엄 직후, SNS와 메신저엔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퍼졌다. 친구들과도 진위를 두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보 접근이 쉬워진 만큼, 사실을 가려낼 수 있는 경각심도 함께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정치권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정평호=정보는 빠를수록 위험할 수 있다.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간소화된 정보만 접하면 왜곡된 판단을 하게 된다. 자극적인 내용에만 관심이 쏠리는 건 정보 속도가 빠를수록 나타나는 부작용이다.

▲이가빈=5·18 당시에는 정보가 철저히 차단됐고, 언론 보도마저 왜곡이 심했다. 진실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SNS와 유튜브 등의 매체를 통해 정보가 실시간으로 공유되고, 연대도 즉각적으로 가능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잘못된 정보나 조작된 콘텐츠도 함께 퍼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다. 정확한 정보 전달과 함께 가짜뉴스 확산을 막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박진우=예전에는 정보를 접하지 못했고, 지금은 너무 많은 정보 속에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의 시대다. 그래서 더 책임 있는 시민 의식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 오월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어떤 의미이며,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박진우=오월정신은 지역 운동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이자 정신적 출발점이다. 헌법 전문에 담는다는 건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국가가 지향해야 할 기준으로 삼겠다는 선언이다. 5·18을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2024년 같은 일이 또 반복될 수 있다는 걸 절감했다.

▲이가빈=헌법 전문 수록은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 국민의 희생을 국가가 공식 인정하고, 권력 남용을 막겠다는 다짐을 담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수호의 약속이며, 다음 세대에게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전하는 교육적 메시지이기도 하다.

▲신동호=지금도 일부 정치인들이 5·18을 왜곡하고 전두환을 찬양한다. 그런 인물이 광역자치단체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오월정신을 헌법에 담는 것은 그들의 발언이 반헌법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5·18의 상처를 치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박근우=현재 헌법 전문엔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문장이 있다. 오월정신이 포함된다면 국민 저항권이 헌법적으로 인정되는 셈이다. 더 나아가 '상생과 화합'의 정신까지 담는다면, 분열이 아닌 공동체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김민석=5·18은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 시민의 희생을 상징하는 역사다. 그 정신을 헌법에 담아 다음 세대가 정확히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역사 교육이 아니라, 민주주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김상영 = 오월정신은 민주주의를 지켜낸 위대한 시민의 정신이다. 헌법 전문에 수록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게 된다면 광주 시민의 노력이 후손들에게도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억될 것이다. 다만 이 정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경계가 필요하다.

▲정평호=민주주의의 상징적 가치를 확립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5·18은 국가 권력에 의해 민주주의가 짓밟힌 상황에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저항하며 지켜낸 역사다. 이러한 정신을 헌법에 명시함으로써, 대한민국이 어떤 민주주의 국가인지 보여주는 상징적 선언이 돼야 한다. 역사적 정당성의 헌법화, 사회 통합과 갈등 치유, 역사 왜곡 방지, 국민적 공감대 확대 등 다양한 의미에서 필요하다고 본다.

▲황혜연=오월정신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 '누구든 가리지 않고 가진 것을 나누는 생명 존중', '한 나라가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을 지적하는 역사의식'이라고 답하겠다. 이러한 오월정신이 헌법 전문 수록을 통해 이 나라의 근간이 되길 바란다.

▲박준원=오래전부터 5·18은 대한민국의 '정의'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민주공화국으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독립운동, 6·25전쟁과 마찬가지로 5·18도 마땅히 헌법에 담겨야 한다. 현재 독립운동가, 참전용사, 그 후손들에 대한 대우와 인식은 지금껏 좋지 않았다. 미국과 비교하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이제 와서 각종 보훈사업을 추진하려 하지만, 대부분 돌아가셨다. 5·18 유공자들과 민주 열사들은 아직 우리 곁에 있다. 오월정신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고, 올바르게 교육해 국가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김청우=5·18뿐만 아니라 6월 항쟁이나 부마항쟁처럼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이뤄낸 역사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헌법에 민주주의 정신을 담는 것에 찬성한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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