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편집국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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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일어나는 전쟁의 참상은 구태여 세세하게 상상하지 않으면 선뜻 와닿지 않는다.
아이언 돔이니 극초음속 미사일 같은 화려한 무기 이름, '일어나는 사자'니 '진정한 약속 3' 따위 자못 문학적(?)이기까지 한 작전명을 접하면 전쟁이란 살상의 비극이라기보단 어떤 추상적 현상이거나 은유적 게임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전쟁은, 끔찍하구나.
깊어지는 전쟁의 참상에, 분쟁의 핵심 당사자인 미국 보수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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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옷을 입은 소녀가 치과에서 춤을 춘다. 흔들리는 유치를 뽑으러 갔던 걸까. 여덟 살 타라 하지미리는 울지 않고 씩씩하게 치과 의자에 앉는다. 사뿐사뿐 손과 발을 나부끼는 춤을 추며. X(옛 트위터)에 게재된,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여덟 살 아이의 소소한 댄스 영상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된 계기는, 그 소녀가 지난 6월15일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미리는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 살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아이가 살고 있던 아파트가 무너져 내렸다. 사망자 60여 명의 명단에 하지미리의 이름도 포함되었다. 외신과 SNS에서 전하는 소식들에 따르면 하지미리 외에도 이란의 많은 어린이, 노인, 운동선수, 시인, 그래픽 디자이너 등이 폭격으로 사망했다.
멀리서 일어나는 전쟁의 참상은 구태여 세세하게 상상하지 않으면 선뜻 와닿지 않는다. 군부 최고위층이나 핵 프로그램 과학자의 은신처를 정밀 타격해 제거했다는 등의 발표를 듣고 ‘나의 일’로 느끼긴 쉽지 않다. 아이언 돔이니 극초음속 미사일 같은 화려한 무기 이름, ‘일어나는 사자’니 ‘진정한 약속 3’ 따위 자못 문학적(?)이기까지 한 작전명을 접하면 전쟁이란 살상의 비극이라기보단 어떤 추상적 현상이거나 은유적 게임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그러다 삶이 송두리째 사라지거나 무너진 인간 개별의 얼굴과 이야기를 확인하고서야 다시 깨닫게 된다. 전쟁은, 끔찍하구나. 사람이 죽는구나. 군인이건 민간인이건, 어른이든 아이든, 악하거나 선하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모두.
세계는 지금 말 그대로 ‘전쟁 중’이다. 악에 받친 지도자들이 워 룸(War Room)에 들어가 무기 발사 버튼을 만지작거리거나 실제 눌러버리고 있다. 깊어지는 전쟁의 참상에, 분쟁의 핵심 당사자인 미국 보수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온다. 한 인터뷰 자리에서 전 폭스뉴스 진행자 터커 칼슨과 공화당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가 벌인 설전이 화제가 됐다. “이란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습니까?” “모르겠는데요.” “당신이 무너트리려 하는 나라 인구를 몰라요?” “얼마나 사는데요?” “9200만이요. 어떻게 그걸 몰라요?”
9200만이라는 숫자가 지금 당장 우리에게 와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는 내 앞의 일로 닥칠지도 모른다. 이번 호에 게재된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교수의 전망처럼, “이번 사태가 중동과 국제사회에 미칠 장기적 파장은 두 국가를 넘어 전 세계 질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형태의 군사행동이 정당화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잠시 평화로운 듯했던 한국에도 저 멀리서부터 짙어지는 먹구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우산을 챙기며 긴 장마 혹은 태풍을 대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변진경 편집국장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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