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 앗, 여름이 왔다

2025. 6. 2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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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다.

여름이 아무리 순하다 하더라도 봄같이 따뜻하고 나긋나긋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은 분명 아름다운 계절이다.

그것은 여름이나 겨울이 봄가을만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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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옥 시인

여름이다. 봄은 가고 여름이 되었다. 봄이 한창일 때 사람들은, 곧 봄이 떠날 것을 염려하였다. 봄이 갈 것을 염려한 것이 아니라 여름이 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여름이 아무리 순하다 하더라도 봄같이 따뜻하고 나긋나긋하지 않기 때문이다.

봄은 우선 얼었던 삼라만상이 모두 깨어난다. 꽃을 피울 것은 꽃을 피우고, 잎을 피울 것은 잎을 피운다. 큰 나무는 말할 것도 없고, 있는 듯 없는 듯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던 작은 풀잎도 "나 여기 있소."하고 솟아난다. 산지사방(散之四方)에 꽃이 피고, 나무에 돋은 새잎은 눈이 부시게 맑다. 꽃이 아름다운 것은 열매를 맺기 때문이고, 새잎이 아름다운 것은 힘을 길러 가지를 굵게 하고 줄기를 단단하게 하는 까닭이다. 봄은 흥청망청 나부대는 철이 아니라 알찬 미래로 가는 아름다운 골목이다.

많은 사람들이 간절하게 봄을 잡고 싶었는데도 봄은 멀리 가버렸다. 그리고 여름이 왔다. 무더운 여름이 점령군처럼 뚜벅뚜벅 다가왔다. 모내기를 끝낸 들판은 하루가 다르게 녹색이 짙어진다. 들판만이 아니라 길거리와 산에 선 나무들도 신이 났다. 어디를 바라보아도 생기가 가득하고 활력이 넘친다. 며칠 사이에 딴 세상이 되었다.

여름은 분명 아름다운 계절이다. 생명들은 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나간다. 이런 때는 잎새에 상처가 생겨도 금방 아무렇지도 않게 아물고, 가지가 꺾이면 그 자리에 새 가지가 돋아난다. 새봄의 맑은 신록도 아름답고 가을의 단풍도 눈이 부시다. 그러나 어찌 모든 생명에 힘이 넘치는 한여름에 비할 수 있으랴.

봄 동안 다정했던 햇빛이 난폭해졌다. 한낮에는 땀이 흘러 우리 몸을 끈적이게 한다. 땅이 머금었던 습기를 다 빼앗아 그에 뿌리내렸던 작물은 시들시들하다. 사람들은 "더워. 더워."를 연발한다. 겨울 동안 일기예보를 자주 보았는데, 그것은 그날그날의 최고 기온이 아니라 최저 기온을 보기 위해서였다, 추위가 지루하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오늘은 얼마나 춥고 내일은 또 얼마나 추울까. 겨우내 일기예보를 보면서 최저 기온에 신경을 집중했는데 요즘은 최고 기온이 관심이다.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겨울과 여름은 길어졌다고 아쉬워한다. 그것은 여름이나 겨울이 봄가을만 못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장마가 왔다. 지독한 가뭄과 더위, 장마도 사람을 괴롭힌다. 그런데 장마는 사람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계속해서 비가 내리면 기분까지 눅눅해진다. 뽀송뽀송한 느낌이라야 생활이 즐겁다. 뽀송뽀송이란 말에서는 가볍고 깨끗하고 탄력이 느껴진다.

장마가 이어지면 수해가 발생하여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정답게 살던 집을 무너트리고, 정성을 들여 지은 농사를 망쳐놓고, 때로는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간다. 해마다 우리 속을 뒤집어 놓는 일은 물폭탄이 아니라 그에 대응하는 당국자들의 미숙함, 불성실이다. 그래서 장마가 시작되면 미리부터 마음이 어두워진다.

여름은 생명력이 넘치는 계절이라 내가 좋아하면서도 싫어하는 까닭이 또 있다, 파리와 모기 같은 해충 때문이다. 파리는 썩고 냄새나는 것들을 찾아다니고, 모기는 맛난 피를 빨아먹기 위해 괴성을 질러댄다. 모기는 아무리 미물이지만 도대체 염치가 없어서 남의 피를 빤 자리에 독을 흘린다. 피를 빨리고서도 가려움에 시달려야 하니 모기란 놈이 밉살맞기 그지없다.

장마 중에도 때때로 고온에 시달려야 할 것 같다. 장마에, 폭염에, 온갖 해충들까지 여름내 우리를 괴롭힐 참이다. 잎새마다 벌레가 붙어 갉아먹을 테지만, 그래도 잎새는 탄소동화작용을 멈추지 않아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래서 여름을 견딘 초목들이 위대하다. 그래, 그렇게 여름이 물러갈 때까지 꾹꾹 참고 견뎌야 한다. 권선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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