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방위성금 걷고 방위세를 부활하란 말인가?

미국이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국방비 상향을 요구할 아시아 동맹국에 한국도 포함된다고 션 파넬 대변인 미 국방부 대변인이 지난 19일(현지시각) 확인했다.
미국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요구를 하는 걸까. 국가 재정 운용은 그 나라가 처한 국내외 현실과 국가 비전, 발전전략에 따라 사회적 합의를 거쳐 알아서 결정한다. 재정 주권은 주권 국가의 고유한 권한이다. 국방비 규모는 나라마다 역사적 경험과 환경, 국제정세, 경제력을 검토하고 국민 동의 과정 등을 거쳐 결정된다.
미국의 요구에 대해 지난 20일 외교부는 “국내외 안보 환경과 정부 재정 요건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우리가 결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외교부가 평소 내던 입장과 견주면 톤이 세다.
앞서 오스트레일리아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은 현재 GDP의 2% 수준인 오스트레일리아의 국방비를 GDP의 3.5%까지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지각) 앤서니 앨버니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는 기자들에게 “우리가 국방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 방위비는 대부분 GDP 대비 1%대 수준이다. ‘GDP 5%’는 전시 국방비 수준이다. 2025년을 기준으로 분쟁 등으로 국방비 비중이 높은 세계 주요 국가의 GDP 대비 국방비 지출 규모를 보면, 한국(2.37%), 미국(3.36%), 러시아(4.01%), 이스라엘(4.31%), 사우디(6.46%) 등이다. 미국은 스스로도 지키지 않는 GDP 5% 수준으로 방위비를 인상하란 요구를 하는 셈이다. 난폭하고 무례한 내정 간섭이다.
이런 요구는 한국이 미국의 무상 군사원조로 방위비의 대부분을 충당하던 1960년대에나 통할 수 있었다. 미국은 1950년대 연평균 2억8500만 달러, 1960년대에는 1~2억 달러 규모 군사원조를 한국에 했다. 한국은 1960년대 중반까지 국방비 총액의 60% 이상을 미국 군사원조에 의존했다. 1970년대 이후 한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미국의 무상 원조도 유상 차관으로 전환됐다.

2025년 한국 국방예산은 61조원으로, GDP 대비 2.37% 수준이다. GDP 대비 5%까지 올리면 129조원이 된다. 이를 달성하려면 다른 곳에 쓸 예산을 줄이거나(지출구조 조정)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한국이 세금을 더 걷었던 전례는 있다. 1970년대 자주국방을 앞세운 박정희 정부는 국민방위성금과 방위세를 신설했다. 1973년 12월부터 1988년 8월말까지 총 609억원의 방위성금을 모았다. 방위성금은 이름만 ‘성금’이고 준조세여서 1988년 폐지됐다.
방위세는 자주국방 재원 마련을 위한 한시적 목적세로 1976년부터 1990년 12월까지 존속했다. 1976년 징수된 방위세 2338억원(당시 국민총생산 2%)과 기존 국방예산(국민총생산 4%)을 합쳐 국방비는 국민총생산(GNP)의 약 6% 규모를 유지할 수 있었다.
방위세가 국방예산에서 차지한 비중은 1975년 14%, 1980년 37%, 1990년 59%에 이르렀다. 정부는 모든 국민이 조금이라도 방위세를 부담하도록 하기 위해 비과세대상을 최대한 제한하고, 기존 세목에 10~30%를 차등해 부과하는 부가세 형식으로 방위세를 걷었다. 결과적으로 국민 전체의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났다. 민생경제 회복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가 이런 방식으로 국방비 재원을 마련해 국민 세 부담을 늘리기는 어렵다.
세금 더 걷기가 안 되면 복지·교육·과학 기술 등 주요 예산을 대폭 깎아야 한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고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다. 더구나 미국 아시아 동맹국들의 국방예산 증액은 중국과 북한, 러시아 등을 부추겨 동아시아를 소모적 군비경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갈 위험이 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의 1953년 4월 ‘평화를 위한 기회’라는 연설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제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육군 원수 출신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냉전 당시 군비 경쟁의 무익함을 이렇게 강조했다.
“만들어진 모든 총과, 진수된 모든 전함과, 발사된 모든 로켓은 궁극적으로 굶주려도 먹지 못하고 헐벗어도 입지 못한 사람들로부터 빼앗은 것입니다. 무기로 가득한 세계가 소모하는 것은 돈만이 아닙니다. 이런 세계는 노동자의 땀과, 과학자의 재능과, 어린이의 희망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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