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엔 축구보다 인기있는 스포츠가 있다 [사이공모닝]
6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 게 취미입니다. <두 얼굴의 베트남-뜻밖의 기회와 낯선 위험의 비즈니스>라는 책도 썼지요.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베트남의 축구 열기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베트남 축구 대표팀을 맡은 한국의 박항서·김상식 감독이 우승컵을 들어 올릴 때마다 떠들썩한 베트남의 모습이 한국에도 전해졌기 때문이죠.
그런데 베트남에서 축구보다 인기 있는 유일한 스포츠가 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피클볼도, 한국에서 팬층이 두꺼운 야구도 아닙니다. 아직도 많은 어른들이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있다”며 혀를 쯧쯧 차는 ‘e스포츠’ 이야기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인들도 베트남의 축구 열기를 실감한 적이 있는데요, 베트남에서는 e스포츠 시청률이 축구를 넘어선 것으로 나옵니다. 축구보다 인기 많은 스포츠인 셈이죠.

지난주, 베트남 호찌민시는 리그오브레전드(LoL·이하 롤) 게임의 한국 리그(LCK)에서 활동하는 e스포츠 선수들을 반기는 팬들로 가득했습니다. 한화생명e스포츠 선수단 HLE팀이 직접 호찌민을 찾아 팬들을 만났고, 한국관광공사가 개최한 ‘코리아 트레블 페스타’에도 선수들과 게임 인플루언서가 직접 팬들을 만나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한화생명 e스포츠 선수단 HLE의 ‘2025 글로벌 팬페스트 인 베트남’ 행사 입장권은 가장 비싼 좌석이 40만동(2만1080원)이었는데도 4분 만에 매진됐습니다. 1500명 모집에 1만4000명이 몰렸던 작년 행사를 반면교사 삼아 좌석 수를 2500명으로 늘렸지만 소용없었던 거죠. 한국관광공사의 코리아 트레블 페스타에서도 행사장에 자리를 잡지 못해 온라인 라이브 방송을 시청한 사람만 4만명에 달한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선 축구보다 e스포츠 경기 시청률이 더 높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요.
◇베트남 팬 몰리는 e스포츠
지난 21일, 베트남 호찌민 젬센터에서 열린 한국관광공사의 ‘2025 코리아 트레블 페스타’의 하이라이트는 선수들과 팬들이 만나는 토크쇼였습니다. 농심 레드포스 소속의 리헨즈·킹겐 선수, DRX의 레이지필·유칼 선수와 프로 선수 출신으로 현재 18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게임 인플루언서 스맵도 함께였습니다. 이들이 무대에 오르자 행사장을 메운 1만여 관객은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쳤습니다.

한국 리그에서 활동하는 베트남 출신 레이지필 선수가 올라오자 함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레이지필 선수는 지난 4월 외국인 선수 최초로 LCK 공식 1군 경기에 출전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날 선수들은 팬들 앞에서 2대2로 게임을 직접 시연해 보이고, 다음 날에는 소속팀별로 나눠 팬사인회도 열었습니다.
앞서 18일 열린 한화생명 e스포츠 선수단 HLE의 ‘2025 글로벌 팬페스트 인 베트남’ 행사장 앞은 플래카드를 든 팬들로 북적였습니다. ‘너희의 노력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의 마음도 함께해요’라는 응원 문구와 피넛 선수의 유니폼을 든 팬들이 일찍부터 입장을 기다렸던 거죠.

한국 리그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이지만 베트남 팬들의 관심은 한국 팬 못지않았습니다. “베트남 팬에 대해 어떤 인상이 남았나요?” “가장 좋아하는 일상 루틴은 무엇인가요?” 같은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선수들의 대답이 이어질 때마다 반짝반짝 빛나는 팬들의 눈빛에서 애정도 느껴졌지요.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한국 관광 상품을 홍보하고, 베트남에서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것과 e스포츠는 대체 무슨 연관이 있을까요? 이런 행사들로 어떤 효과가 있길 원하는지 묻기에 앞서 베트남 e스포츠 시장을 들여다봐야겠습니다.
◇축구보다 인기 많다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e스포츠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국가로 꼽힙니다. 글로벌 회계법인 딜로이트는 “베트남은 e스포츠가 가장 활발한 시장으로 정기적으로 e스포츠를 시청하는 사람이 59%에 달한다”고 말했습니다.

남녀 성비도 고르게 분포돼 있습니다. 시청자 중 44%가 여성입니다. 남성을 주 타깃으로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여성 팬들도 상당하다는 뜻이지요. 베트남 e스포츠 팬이 가진 독특한 특성입니다. 주 시청층도 20~40대로 넓지요.
e스포츠 시청자 중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은 17% 수준.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지방 등 전국에서 e스포츠의 열기가 뜨겁다는 뜻이 됩니다. 시청자가 대도시에 집중돼 있는 싱가포르(68%), 인도네시아(50%), 말레이시아(42%) 등에 비해 지역적으로도 확장성이 높지요.

인기가 많아지니 돈이 몰립니다. 베트남 e스포츠 협회(VIRESA)가 OTA 네트워크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e스포츠 매출 성장률은 연간 10.95%씩 올라 2027년에는 873만 달러(119억9938만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2023년 베트남 e스포츠 수익(578만 달러) 중 가장 큰 부문은 스폰서십과 광고(170만달러)였습니다. 선수들에게 스폰서를 제공하거나 이들을 광고 모델로 활용하는 게 마케팅에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기업이 많단 이야기지요. 2022~2023년 전국적으로 e스포츠 경기가 크게 늘면서 2023년 전체 상금도 410억동(21억6000만원)을 넘어섰습니다. 전년보다 32% 이상 많아진 금액이지요.
딜로이트는 “동남아 e스포츠 시청자들은 유료 구독이나 라이브 방송 같은 여가 활동에 돈을 지불하겠다는 의향이 더 높고, 광고 수용도가 높은 시청자층”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지갑을 쉽게 열고, 광고 등에 영향을 받는 구매 건수가 많아질 수 있다는 것이죠. 특히 베트남의 경우 소비 활동이 활발한 20~40대가 e스포츠 주 시청층이라는 점에서 광고 효과는 더욱 커집니다.

관광 상품이나 보험 상품을 파는 공사와 회사가 e스포츠와 연관된 행사를 연 이유, 이들이 함께 홍보하는 상품의 호감도를 높이고, 미래 구매를 늘리는 효과적인 마케팅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당장 상품 구매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행사에 참여한 이들의 마음속엔 한국 상품이나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베트남 e스포츠 마케팅을 보면서 현지 소비자의 특성을 제대로 분석하면 한국과는 다른 방식의 접근이 가능하다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러시아의 공격 저지해야 인·태 침략자도 억제 가능”
- 중학생 92%가 1분에 지문 1개 못 읽는다
- “아미고”… 건배하는 한국·브라질 대통령 부부
- 정부, 엘리엇에 승소… 1600억 배상 면해
- 사법 3법 등 쟁점법안 與, 오늘 본회의 강행
- [바로잡습니다] 2월 12일 자 A25면 [홍태화의 USA 인사이트] ‘괜찮은 평화가 정말 괜찮으려면’에
- 젤렌스키 “러, 3차 세계대전 시작” 푸틴 “핵 전력이 절대적 우선순위”
- AI·유튜브 요약본만 봐놓고 “선생님, 그 책 내용 다 알아요”
- “한미훈련 축소가 오히려 김정은 자극한다”
- 北 노동당 지도부 절반 이상 세대교체… 서열 2위 최룡해도 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