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푼이 농부 이야기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5. 6. 22. 19:01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내기하기 전에 논둑에 물이 새지 말라고 논흙으로 ‘논둑 바르기’를 하는 모습. 통상 트랙터 뒤에 논둑 성형기를 달아서 하는데 농업 중심 대안대학인 풀무학교에서는 사람이 들어가서 삽으로 직접 한다. 필자 제공

윤찬솔 | 농부

대문 나서면 바로 논과 밭이 펼쳐진 시골에서 컸다. 1990년대생인 나는 서울로 대학에 가기 전까지 1930년대생 할머니와 1960년대생 부모님과 한집에서 살았다. 부모님이 모두 교사여서 집안에서 전업으로 농사를 짓진 않았지만, 집에 딸린 논과 밭이 있고 어떻게든 욕심껏 일하려는 할머니와 그걸 책임지려는 아버지로 인해 쌀이나 흔한 채소를 사서 먹는 건 상상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농사일 자체는 나에게 한걸음 떨어진 먼 풍경과 같은 것이었다. 어쩌다 손이 모자랄 때 참여하는 행사였지, 할머니나 부모님 세대처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러운 일상은 아니었다. 두 세대 만에 달라진 이 차이가 자라면서부터 마음에 걸렸다. 호미처럼 굽은 할머니 몸은 나에게 호기심과 연민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주었다.

서울은 힘들었다. 부모님의 지원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진 않았다. 도시, 높은 인구밀도, 더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한 질주, 취업 수단으로서의 대학. 이런 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인문대를 다니면서 리포트의 결론에 꼭 써넣기 마련인 ‘좋은’ 가치들이 말뿐인 허영으로 느껴질 때가 많았다. 무언갈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분위기에 이끌려갔다. 계속 흔들렸다. 그렇게 방황 아닌 방황을 하며 조금 사치스럽게도 내 행복의 조건에 대해 고민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서울 거주’는 중요하지 않았고 내내 마음에 걸렸던 농사일이 배우고 싶었다. 부끄러움을 조금 덜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차에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있는 ‘풀무학교 생태농업전공부’(이하 전공부)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2년제 대안대학이자 마을대학으로 자연에 무리를 주지 않는 생태적인 방식의 농사를 배울 수 있다는 점에 끌렸다. 제초 비닐, 농약, 화학 비료 등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 손으로 최대한 하려고 한다. 퇴비를 만들어서 쓰고 자가채종한 씨앗을 심는다. 유기농업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구분할 필요도 없던, 근대화 이전의 농사 방식을 다시 가르치고자 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추지 않는 곳이다.

나는 작년에 이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마을에서 고효율 에너지 주택인 패시브하우스를 짓는 팀에 들어가 일하며 겨울을 나고 있다. 전공부의 농사는 봄부터 다시 시작되는데 선생님들의 제안을 받아 올해부터는 교직원으로 같이 일을 하게 됐다. 얼마나 할지 확실하진 않지만 일단 이곳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긴 잡은 셈이다.

흔히 ‘홍동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시골 소멸의 분위기에서 조금 비켜난, 그래도 활기가 느껴지는 곳이다. 1958년에 개교한 풀무학교의 영향력이 컸다고 생각되는데, 1976년도에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다양한 협동조합들이 활동하고 있다. 어린이집부터 고등학교까지 (전공부까지 따지면 대학까지) 살아 있어 아이들 교육에 고민이 있는 부모들이 일부러 찾아오기도 한다.

본가가 있는 시골과 비교하면 시골답지 않은 독특한 분위기가 있는 곳이다. 물론 이상향은 아니다. 그건 어디에도 없다. 전공부에서도 트랙터로 논밭을 갈아엎고 이앙기로 모를 심고 식물성 기름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인 유박 비료와 씨앗을 사서 쓰고 약을 치기도 한다. 선주민과 이주민의 지향과 이해가 다르고, 단체들 사이의 갈등이 있고, 지역 생산물은 지역에서 소비한다는 ‘지산지소 원칙’이 백퍼센트 지켜지지도 않는다. 재정적으로 불안정한 것도 사실이다.

‘미래가 없다.’ ‘비전이 없다.’ ‘수입해서 먹으면 되고 그게 더 싸다.’ ‘물려받은 기반이나 자기 땅 없이는 짓지 마라.’ ‘규모가 있어야 그나마 경쟁이 된다.’ ‘시골에 내려와 농사지을 생각 말고 도시에서 편하게 살아라.’ 농사에 대해 흔히 들을 수 있는 말들이다.

‘농사가 문명 가운데 유일하게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순환적인 생활방식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식량위기는 필연적이고 자급과 식량주권, 생존을 위해서라도 농사는 중요하다.’ 이 말들로 논리적인 반박은 가능할지 모른다.

이런 말들 사이에서 나는 어떤 것에 이끌려 농사일을 배우고자 왔는지 생각하게 된다. 부끄러움을 덜고 싶었고, 음식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육체노동을 하고 싶었고, 최소한의 흔적으로 살고 싶었다. 몸은 고된 면이 있지만 모두에게 조금은 더 떳떳해진 기분이 든다.

여전히 ‘좋은’ 말들을 체화하지 못한 채 아직은 농부라고 스스로 이름하기도 모호하고 어정쩡한 상태이지만, 계속 농사를 짓고 싶은 것은 분명하다. 몸으로 확인해가는 시간이 내게는 더 필요하지 싶다.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삶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