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한국 의료의 위기와 미래를 위한 제언
한국 의료계가 의대 정원 문제로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는 단순한 의사 수의 문제가 아닌, 수십 년간 곪을 대로 곪아 온 구조적 모순이 결국 터져 나온 것이다. 우리 의료는 세계 최고 수준의 기대 수명과 최첨단 장비 보유율이라는 화려한 성적표를 가졌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환자들은 몇 시간씩 기다려 3분 진료를 받는 현실에 지쳐 있고, 그 결과 의료 만족도는 OECD 최하위권을 맴돈다. 이처럼 과도한 외래 방문은 결국 상급 병원의 과밀화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만들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수도권과 지방의 극심한 의료 격차다. 실력 있는 지방 국립대병원 교수들마저 더 나은 연봉과 연구 환경, 자녀 교육 여건을 찾아 서울의 대형 병원으로 떠나는 현실이다. 이는 지방 의료가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적나라한 단면이다. 세계적인 수준의 병원들 역시 약속이나 한 듯 수도권에만 몰려 있으니, 지역 간의 의료 불균형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질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의 거점 병원들은 만성적인 재정난에 허덕이다 못해 이제는 병원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단순히 병원 몇 개의 경영 위기가 아니다. 그 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즉 응급 심뇌혈관 수술이나 분만, 소아 같은 기본적인 의료 접근성마저 뿌리부터 흔들리는 재난 수준의 위기다. ‘지방 소멸’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는 이 시기에, 의료 인프라의 붕괴는 지역 공동체의 해체를 더욱 가속화할 뿐이다.
정부는 의사 수만 늘리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지만, 이는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단편적인 해법에 불과하다. 지금의 잘못된 의료인력 분배 구조는 그대로 둔 채 의사 수만 늘리는 것은, 가뜩이나 심각한 수도권 집중과 피부과, 성형외과 같은 인기과로의 쏠림 현상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의사의 절대적인 숫자가 아니라, 정작 소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처럼 생명과 직결된 분야, 그리고 지방에 의사가 없는 ‘배치의 완전한 실패’와 ‘제도의 결정적 부재’에 있다. 진정한 의료 개혁은 제대로 된 의료 전달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세우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감기 등 경증 질환은 동네 의원에서, 암이나 중증 질환은 상급 종합병원에서 진료받는 흐름을 법과 제도로 완벽하게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1·2·3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법적으로 명확히 나누고, 각 기능에 걸맞은 공정한 보상 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상급 병원의 과밀화를 해소하고 한정된 의료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개혁의 첫걸음이다.
또한, 정부는 붕괴 직전의 지방 의료를 살리기 위해 과감한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지역 필수의료 분야의 공공정책수가를 현실에 맞게 대폭 올리고, 지역 의료기관에 직접적인 재정 지원을 통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것이 말로만 외치는 공공의료 강화가 아닌, 진짜 공공의료를 살리는 길이다. 무엇보다 지역의 인재가 지역에 남아 필수의료를 책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의사제’ 도입을 포함한 다각적이고 파격적인 유인책을 검토해야 한다. 안정적인 주거와 자녀 교육 문제 해결, 그리고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을 제시해야만 젊고 유능한 의사가 지방으로 발길을 돌릴 것이다.

모든 개혁은 미래를 향해야 한다. 단기적인 처방을 넘어 인공지능(AI)과 같은 신기술을 의료 시스템에 적극적으로 접목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의료진이 자부심을 느끼며 환자 진료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지금의 위기는 한국 의료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중대한 기로다. 정부, 의료계, 그리고 국민 모두가 이기심을 내려놓고 백년지대계의 심정으로 합리적이고 실현 가능한 개혁안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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