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수의 그림산책] 독립운동가 김예식의 ‘귀면암’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36년간의 일제 강점기 동안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서훈을 받은 미술가로 지금까지 알려진 이는 단 세 명뿐이다.
가장 먼저 서훈을 받은 이는 1993년 조각가 김복진이며, 그 다음은 2005년 서화가 김진우, 가장 최근에 받은 이는 2022년 화가 우하(又荷) 김예식(金禮植, 1897~?)이다.
10여 년 전쯤에서야 세련된 필치의 금강산 그림이 소개되면서 화가로서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여, 독립운동 이력까지 알려지며 주목할 만한 인물로 급부상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36년간의 일제 강점기 동안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서훈을 받은 미술가로 지금까지 알려진 이는 단 세 명뿐이다. 가장 먼저 서훈을 받은 이는 1993년 조각가 김복진이며, 그 다음은 2005년 서화가 김진우, 가장 최근에 받은 이는 2022년 화가 우하(又荷) 김예식(金禮植, 1897~?)이다. 그러나 최근 연구로 가장 먼저 서훈을 받았던 김복진의 말년 친일행적이 드러난 상태이니, 실제 독립운동을 한 미술가라 부를 만한 인물은 ‘김진우’와 ‘김예식’ 둘 뿐이다.

그동안 김진우에 대해서는 상해임시정부와 건국동맹 활동 등으로 애국 서화가로서의 인식이 뚜렷했지만, 김예식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10여 년 전쯤에서야 세련된 필치의 금강산 그림이 소개되면서 화가로서 이름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하여, 독립운동 이력까지 알려지며 주목할 만한 인물로 급부상했다.
김예식의 공적은 1919년 3월 31일부터 4월 1일까지 황해도 평산군 인산면 기린리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일이다. 당시 만세를 부르던 군중에게 일본 경찰이 발포하여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튿날에도 4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독립만세를 높이 외치며 기린 주재소로 행진하자 다시 일본 경찰이 시위 대열에 발포하여 사상자가 또 발생했다.
김예식 등 만세 주동자들은 이러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들은 파리강화회의의 민족자결주의에 영향을 받아 군중들과 함께 조선 독립만세 운동을 했다고 한다. 1919년 7월 1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고 항소했지만, 1919년 9월 2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김예식은 황해도 개성 출신으로 주로 고향에서 활동하다 독립만세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 후 경성으로 올라와 서화가로 활동하였다. 친동생 우계(于溪) 김의식(金義植) 또한 서화에 능했는데, 두 사람은 형제 서화가로도 유명하였다.
김예식은 주로 산수화를 그렸으며, 화조에도 일가를 이루었다. 초기에는 주로 단순한 필치의 전통적인 필법으로 산수화를 그렸으며, 채색이 강한 모란 등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일부 그림에서는 민화를 연상케 하는 화풍을 보이기도 한다. 1920년대 후반 들어 화풍이 크게 달라진다. 금강산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는데, 사진 화법을 사용하여 그린 세밀한 화풍을 보였다. 화조 그림에서도 중국 공필화와 유사한 치밀한 묘사의 북종화풍을 띠었다.
김예식의 현전하는 작품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대부분의 작품이 금강산을 그린 것이다. 조선조 금강산 회화의 전통을 이으면서도 근대기 사진 기법의 산수화와 혼성된 모습을 보인다.

이번에 소개하는 그림은 금강산의 명소 ‘귀면암(鬼面巖)’을 그린 것이다. 자신의 장기인 실제 현장을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금강산의 오묘한 풍경을 세밀한 필치로 실감나게 묘사했다. 조선시대의 구습에서 벗어나려는 근대 화가들의 고민이 엿보인다는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유독 금강산을 고집스럽게 그린 것은 조국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젊은 시절 독립만세운동을 한 것 못지않게 미술에서도 나라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의 이름이 금강산처럼 세상에 더욱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