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수 박사의 조선왕릉 이야기] 12. 하늘에 있는 지아비를 그리며 64년의 오매불망 사릉(思陵)



노산부인과 관련된 기록은 전해지는 것이 거의 없지만, 유득공의 아들 유본예가 쓴 '한경지략'에 기록에 따르면 지금의 청계천 영도교 인근에 여자들만 드나드는 채소시장이 있었는데, 이 시장의 유래도 정순왕후에 얽힌 것이라고 한다. 정순왕후를 가엾게 여긴 인근의 여인네들이 정순왕후의 집에 끼니거리를 가져다주었는데, 조정에서 이 사실을 알고 그 일을 금지해 버렸다. 그러자 여인들은 꾀를 내어 정순왕후의 집 근처에 남자들이 들어올 수 없는 여자들만의 작은 채소 시장을 열어 채소를 파는 척하면서 먹을 것들을 모아 정순왕후에게 몰래 가져다주었고, 이것이 후에 현재 영도교 인근에 생긴 금남(禁男)의 채소시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순왕후 송씨는 주변의 도움도 받으면서 염색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정순왕후가 천을 염색할 때 천을 물에 넣자마자 저절로 자주색으로 물들었다고 전해지는 야사가 전해지고 있다.
다른 야사에서는 현재 종로구 창신동에 소재하는 청룡사라는 절로 출가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정순왕후는 출가하지 않았고 지금의 동대문 밖에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고 한다. 후에 단종의 누나인 경혜공주의 아들이자 정순왕후에게는 시조카가 되는 정미수가 수양아들로 들어오면서 그의 집에 거주하였고, 그곳에서 세상을 떴다. 조선 역대 임금 중(추존 제외) 첫 번째로 단명한 남편 단종과는 대조적으로,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조선 역대 왕비 중(추존 제외) 가장 장수한 왕비다. 지아비 단종의 죽임, 세조의 큰아들 의경세자(덕종)의 요절, 세조, 예종, 성종의 시대를 거쳐 연산군의 폐위, 세조의 증손자인 중종의 반정 즉위까지 모두 보고 죽은 것이다.

사릉(思陵)은 한북정맥에 속하며 천마산에서 들어온 내룡맥이 남양주 광해군묘를 지나 기복(起伏)을 거듭하면서 국(局)을 형성한 곳이다.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의 능이며 단릉 형식이다. 평생 단종을 생각하며 일생을 보냈다 하여 능호를 사릉(思陵)이라고 붙였다고 한다. 중종 때 대군 부인의 예로 복위되어 묘를 조성하였고, 사후 170여 년이 지난 숙종 때(1698년, 숙종 24) 왕후의 능으로 추봉되었기 때문에 다른 능에 비하여 단출하면서 간소하다. 능침의 규모는 매우 작고, 병풍석과 난간석을 설치하지 않았으며, 문석인과 석마만이 자리 잡고 있다. 석양과 호석도 한 쌍씩으로 간소화되어 있다. 사릉의 정자각은 맞배지붕으로 되었으며 배위가 짧아 전체 건물이 정(丁)자형보다는 정사각형 모습의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