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순의 충청女지도] 금강산 여행 꿈꾼 '숭문동 문학 가족'의 당찬 막내 누이
조카들과 남녀 차별 없이 함께 공부하며 성장
'규방' 한정된 공간 초월… 여성 해방의지 표출

나의 소원은 금강산을 보는 것(원아견금강) / 한 번도 가볼 수가 없었다지.(일견불가득) // 꿈속에 금강산을 유람하니(몽유금강산) / 바다와 하늘이 참으로 푸르구나.(창해정공록) // 아득히 배를 타고 노니나니(묘묘승주거) / 향기로운 바람 내 비단옷에 불어오네.(향풍취라의) // 어여쁜 꽃 어지러이 나부끼고(요화분선선) / 고운 빛깔의 새 위아래로 나네.(채조고하비) // 사선봉 위에 네 신선이 있어(봉상유사선) / 푸르른 머리카락 길게 드리웠구나.(녹발장창창) // 산 위에 올라 해돋이 보건데(등산견일출) / 햇살이 동해에서 날아오르는 도다.(일광비부상) // 오르고 또 올라 청학대에 이르니(등등청학대) / 적막하여라, 사람을 볼 수가 없구나.(적적불견인) // 홀연 석문이 크게 열리더니(석문홀대개) / 표표히 신선이 나타남이여.(표표견신선) // 몸을 뒤척이다 꿈 깨어 두리번거리니(번신몽각성) / 동쪽 창에 달이 이미 기울었도다.(동창월이경) // 찬 하늘엔 새벽 구름 걷혀있고(천한효운수) / 푸른 강 노 젓는 소리 들리는 것을.(창강도예성) //(신부용당, '몽유금강산(夢游金剛山)')
위의 시는 신부용당(申芙蓉堂, 1732-1791)이 지은 '몽유금강산'이다. 부용당은 평소에 "나의 소원은 금강산을 보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금강산 여행을 꿈꾼 여성시인이었다. 18세기 조선의 사대부 집안 여성이 금강산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금강산 여행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부용당은 꿈속에서 그 꿈을 실현한다. 5언 20구 100자의 한자로 표현된 '몽유금강산' 시는, 그 자체로 한 폭의 금강산전도를 보는 듯하다.
부용당의 이 시는 '규방'이라는 한정되고 답답한 공간을 초월해, 더 큰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하는 한 여성의 욕망과 해방의지가 표출된 것으로 이해된다.

◇조카들과 함께 공부하고, 글 짓고, 음식 먹고, 장난치며 자란 어린 시절=부용당의 아버지 신호(申澔)는 첫째 부인 성산이씨와 신광수(1712-1775)·신광연을 낳았고, 둘째 부인 전주이씨와 신광하·신부용당을 낳았다. 부용당은 큰오라버니 신광수와 나이 차가 20세나 났다. 그리하여 신광수의 다섯 아들 신우상·신이상·신위상·신석상·신보상과 나이가 비슷해 함께 벗처럼 놀며 자랐다.
신석상은 부용당 사후 '제고모윤부인문'이라는 제문을 통해 "아, 숙질간으로 나이가 서로 같고, 도(道)가 서로 같다면 숙질이면서 친구이니, 어찌 남녀의 거리가 있겠습니까? 소자의 형제 다섯 명은 고모와 나이가 위아래로 들쑥날쑥하여, 서로 더불어서 책을 배우고, 글을 짓고, 음식을 먹고, 장난을 치며 함께 즐겼습니다"라고 회고했다.
이 제문에서 부용당은 고모와 조카가 여성과 남성이라는 차별 없이 벗처럼 함께 공부하고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신광수는 새어머니 전주이씨를 효성으로 섬겨 그 소문이 자자했는데, 이복동생인 신광하와 부용당에 대한 우애도 남달라 동생들을 직접 가르치고 사랑했다.
부용당은 세 오빠들의 학문하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아 떨쳐 일어났다. 경서는 물론 여성들의 필독서인 '내칙', '곡례', '열녀전' 등을 읽었고, 시는 중국 한나라와 위나라의 고시를 배웠다. 부용당의 5언과 7언의 한시작품은 '안세방중가(安世房中歌)', 곧 한 고조 유방(劉邦)의 후궁 당산부인(唐山夫人)이 지은 악부시에 견주어졌다.

◇숭문동 4남매의 시집 '숭문연방집(崇文聯芳集)'과 '부용시선(芙蓉詩選)'=부용당의 친정은 한산 '숭문동(崇文洞)'이다. 지금의 서천군 화양면 활동리·대등리 일대는 조선시대에 숭문동이라고도 불렸는데, 한산 고을에 속했다. 숭문동은 '숭문'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글을 숭상한' 마을이었다.
숭문동은 어성산(漁城山)이 마을을 감싸고, 좌우에 청룡과 백호가 자리하고 있어 정기가 모여 있는 형국이다. 이 땅에서 깃들어 살고 있던 석북가 고령신씨 집안은 아들, 손자, 증손자에 이르도록 세칭 '숭문동 8문장'이라 불릴 정도의 문학가들이 면면히 이어져 조선후기 문단에 크게 이름을 떨쳤다.
숭문동 8문장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신광수이다. 신광수는 1746년(영조 22) 그의 나이 35세 때 한성시에서 2등으로 합격했는데, 그때 과거시험 답안으로 제출한 시가 '등악양루탄관산융마'이다. 이 시는 약칭 '관산융마'로도 불리며, 18세기 말엽 조선의 문인들 사이에서 과거 시험 답안지의 모범으로 평가됐다. 특히나 '관산융마'가 평양 기생들에 의해 곡에 얹혀 노래로 가창되면서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시창 '관산융마'는 오늘날 국악계에서도 서도소리의 고전으로 불린다.
'숭문연방집'은 세 명의 오라버니와 신부용당의 글을 묶은 문집이다. 신광수의 '석북문집', 신광연의 '기록초음', 신광하의 '진택문집', 신부용당의 '부용시선'으로 이뤄져 있다. 신부용당은 자신의 시문집 여러 권을 엮어 '부용당집(芙蓉堂集)'을 편찬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날 그 문집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부용시선'은 그 제목이 말해 주듯이, 작품의 전체가 아니고 일부를 가려 뽑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부용당이 창작한 작품의 수는 '숭문연방집'에 실린 것보다 훨씬 많았다는 사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부용시선'에는 시 23편, 서 2편, 제문 2편, 잡저 4편, 부록 1편으로 구성돼 있다. 조선시대 여성문인의 문집이 주로 한시 작품 위주로 이루어진 반면, '부용시선'은 소략하나마 서·제문·잡저 등의 문집 형태가 갖춰져 있다. 부용당의 한시 작품은 농촌의 사계와 일상을 무욕의 시어로 표현해 '견소포박(見素抱樸)'의 미의식을 추구했다. 거기에 가족과 만백성, 천하의 태평과 무사함을 기원하는 주제의식의 확장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의 '소소매(蘇小妹)'로 불린 글재주=부용당은 1750년 19세 때 윤운(1730-1773)과 혼인했다. 윤운은 공재 윤두서(1668-1715)의 손자, 고산 윤선도(1587-1671)의 5대손이다. 부용당 집안은 해남윤씨 집안과 혼인관계를 맺어 왔는데, 부용당의 큰올케인 신광수의 부인이 윤두서의 딸이다.
부용당은 혼인한 이후에도 시댁이 있는 전라남도 해남에 살지 않고, 친정 숭문동에서 살았다. 남편이 해남과 충청도를 오고가며 살았다. 그러다가 생활고로 인해 1759년 숭문동을 떠나 외가가 있는 보령 신성리(현 주포면 보령리)로 이주하여 전답을 빌려 경작하며 살았다.
부용당은 슬하에 2남 1녀를 뒀는데, 1773년 남편이 44세의 나이로 졸하였을 당시 딸을 임신하고 있었다. 윤운이 죽었다는 소식이 해남으로부터 숭문동에 도달했을 때, 남편의 부음을 신성리로 찾아가 전달해 준 사람은 신석상이었다. 부용당은 해산을 하기도 전에 목숨을 끊어 죽음을 감행하려 했다. 그러나 신석상은 "어린 자식 둘이 있고 뱃속에 자식까지 있는데, 따라 죽는 것은 의가 아니다"라고 울부짖으며 만류했다. 부용당도 통곡하며 죽을 뜻을 접었다.
부용당이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790년, 둘째 아들 윤지눌이 30세의 나이로 과거에 급제했다. 그리고 바로 그 해에 충북 진천군수로 부임 받게 되자, 신성리를 떠나 진천으로 이주했다. 그런데 그 이듬해 진천에서 6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남편이 묻혀있는 해남 화산면 신리에 합장됐다.
한편 다산 정약용은 윤두서의 외증손으로서, 신부용당의 시가 쪽 5촌 당질이 된다. 부용당의 둘째아들 윤지눌은 정약용과 6촌 형제간이지만 벗처럼 긴밀한 유대관계를 맺으며 지냈다. 정약용은 윤지눌의 묘지명에서, "윤지눌 군은 일찍 고아가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 신(申) 부인이 마치 이소(二蘇)의 누이처럼 글을 잘하였다. 이 때문에 가르침을 받은 바가 많았다."라고 회고하였다. 두 명의 소씨(二蘇)는 중국 송나라의 유명한 문인 소식(蘇軾)과 소철(蘇轍), 그 누이는 소소매(蘇小妹)이다.
중국에 이소(二蘇)와 소소매(蘇小妹)가 있다면, 조선에는 삼신(三申)과 신부용당(申芙蓉堂)이 있다. 문희순 문학박사·충청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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