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울산여지도] 울산, 한반도 고대사 기적의 땅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2025. 6. 22.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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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6일 세계유산위 운명의 날
반구천의암각화 세계유산 등재
선사도시 울산의 위상 세워야
김진영 편집국장·이사

 장마가 시작됐다. 몬순의 거대한 구름 떼가 유라시아의 동쪽으로 몰리는 시간이다. 지금은 지구온난화 이야기로 온 세상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만 2만년 전 인류에게 기후는 그냥 어쩔 수 없는 대자연의 흐름이었다. 바로 그 2만년 전 인류는 지구 최후의 빙하와 간빙기 사이에서 혹독한 변화를 겪었다. 45억년이라는 까마득한 지구 나이 속에서 2만년의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인류에게는 참담하고 혹독한 시간이었다.

 지구는 대략 18번의 빙하기와 간빙기를 거쳐왔다. 지구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지질 분석 결과다. 가장 최근의 기후변화가 바로 2만년 전이다. 현생 인류는 그 시기에 가장 많은 이동과 문화적 변동을 경험했다. 

 거대한 빙하가 북반구를 덮쳤고 시베리아 일대에서 안락한 삶을 살던 인류는 빙하를 피해 적도 방향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시기를 '최종빙기극성기(Last Glacial Maximum)'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인류는 가장 활발한 이동을 하게 된다. 한 때 온화한 지역이었던 시베리아는 극빙하의 냉혹한 땅으로 변했고 적도를 중심으로 다양한 생물종이 지속가능한 생존투쟁을 펼쳤다. 그 험난한 생존 경쟁을 피하려는 일부의 인류가 얼음으로 수백미터 두께의 다리를 만든 베링해를 건너 신대륙으로 이동했던 것도 이 무렵이다. 

 바로 그 2만년 전 한반도는 어땠을까. 극빙하기의 시기에 한반도 역시 얼음의 땅이었다. 해류가 바뀌고 해수면이 낮아진 시기에 한반도는 서해와 동해가 육지로 드러나 있는 광활한 땅이었다.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집단 취락을 이루고 살았던 한 무리의 인류는 혹독한 추위에 남으로 이주를 시작했고 내몽골과 요서를 거처 산둥 너머 한반도 쪽으로 내려왔다. 바다가 가로막지 않은 시기여서 집단 이주의 방해물은 추위 뿐이었다. 그 고단한 이주와 정착이 마무리 될 쯤 빙하의 시간은 간빙의 시간으로 변했고 한반도의 기후는 인류에게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 

 그런 일련의 인류 이동과정에서 한반도에 살았던 인류는 구석기 문명의 흔적을 남겼다. 바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대표적이다. 인류의 원시시기라 할 수 있는 전기 구석기시대를 대표하는 주먹도끼문화는 모비우스 학설로 인류의 서열을 정리해 놓았다.

 미국의 고고학자인 모비우스(1907~1987년 H. L. Movius)는 하버드대 고고학 교수로 1948년 인류의 문명 발전이론을 담은 이른바 '모비우스 학설'을 내놓았다. 그의 이론은 인도를 기준으로 서쪽지역(유럽, 아프리카, 서아시아)은 아슐리안 문화권, 동쪽지역(동아시아, 아메리카)은 찍개 문화권으로 분류하는 것이 골자였다.

 아슐리안은 구석기 문화 가운데서도 목적의식을 가진 정교한 도구라는 부분을 강조한 이 이론 때문에 인도의 동쪽은 출발부터 미개한 원시문화로 인류 문명의 발달 정도가 뒤쳐졌다는 주장이었다. 한마디로 동아시아는 인류문명에서 한참 뒤쳐진 미개의 땅이었다는 주장이었다. 

 그 이론을 무너뜨린 사건이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한반도의 중심, 임진강변 연천 땅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됐다. 1977년 겨울, 미군 신분으로 우리나라에 근무했던 그렉보웬이라는 미군 병사가 한국인 여자친구와 한탄강변에 데이트를 갔다가 엄청난 발견을 했다. 거저 흔한 돌덩이를 관심있게 살핀 병사는 사실 대학에서 인류사를 전공한 고고학도였다. 고고학 책에서 봤던 주먹도끼가 장작 화로를 위한 돌더미에서 발견된 사건이었다. 현장을 찾은 서울대박물관이 조사한 결과 무려 4,500여점의 주먹도끼가 한탄강과 연천 일대에서 쏟아져 나왔다. 바로 임진강의 기적이다. 

 이 사건은 세계 고고학계에 엄청난 충격이었다. 모비우스 학설이 무너진 것은 물론 고대 한반도가 인류에게 어떤 땅이었는지를 말해주는 명백한 증거가 됐다. 지구의 땅덩어리를 놓고 볼 때 유난히 좁은 지역인 한반도에 고인돌 문화가 집중돼 있는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 사건 이후 한반도 구석구석에서는 고대 선사시대의 인류가 남긴 흔적이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그 핵심지역이 오늘 울산여지도가 이야기 하려는 울산의 선사시대다.

 2,000년대 이전까지 울산에서 벌어진 수많은 문화재 발굴과 출토된 유물은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특히 고대사의 비밀이 보물상자처럼 쏟아진 웅촌 검단리 유적이나 중산리 연암 등 동천강변 유적 등은 제대로 된 연구작업 없이 그냥 파묻혀 있다. 

 울산은 임진강의 기적처럼 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고대사의 기적이 몇번이나 있었던 놀라운 땅이다. 그 가운데 울산은 역사학계나 고고학계의 기적이라 불리는 중요한 발견이 다섯 번씩이나 있었던 지역이다. 그 중 하나가 다음달 파리에서 세계유산으로 이름을 올린다. 울산이 세계인들에게 인류 이동의 증좌를 보유한 도시임을 공인받는 사건이다. 이 기념비적 사건을 계기로 울산에서 일어난 인류사의 다섯번의 기적과 그 기적의 장소들을 몇차례로 나눠 살펴 보려고 한다. 

 그 첫번째 기적의 땅은 당연히 반구천이다. 울산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울산의 현대만 기억하지만 울산은 한반도에서 인류가 가장 먼저 정착 생활을 시작한 땅 가운데 하나다. 그렇다면 과연 울산은 어떻게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어떤 문화를 만들어 왔을까. 한반도의 동남쪽에 위치한 울산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터전이 돼 우리의 선인들이 아득한 석기시대부터 육로 또는 해로로 이곳에 들어와 정착사회를 이뤄 살았다.

 서생면 신암리, 병영동 병영성지, 장현동 황방산의 신석기 유적이 있고 석검이 출토된 화봉동과 지석묘가 있는 언양면 서부리의 청동기 유적이 있다. 어디 그뿐인가. 북구 중산동, 온산면 산암리, 언양읍 동부리, 삼동면 둔기리, 온양면 삼광리, 상북면 덕현리, 동구 일산동, 중구 다운동, 삼남면 방기리 등지에서 각종 유적과 유물이 관계 연구기관과 대학박물관에 의해 발굴됐다.

 이 모든 것의 꼭지점이 바로 반구대암각화가 위치한 대곡천이다. 그 중심에 7,000년의 비밀을 지문처럼 새긴 암벽의 백과사전, 반구대암각화의 발견이 바로 첫 번째 기적이다.  김진영 편집국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