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운석의 우리술 이야기)어렵다는 삼해주/삼오주를 빚는 이유

우리나라의 전통주 중에는 특이하게도 술 빚는 날짜를 정해 놓은 술이 몇몇 있다. 구기자 술이 그렇다. 『지봉유설』, 『산림경제』, 『고사신서』, 『해동농서』, 『온주법』, 『규합총서』, 『양주방』, 『주식시의』, 『부인필지』, 잡지 등에 수록되어 있는 구기자술을 보면 구기자 뿌리로 담는 술뿐만 아니라 구기자 잎, 구기자 꽃, 구기자 열매를 채취하는 날짜와 이들 재료로 술을 담는 날짜를 정해두고 있다.
한 예로 구기자 뿌리를 채취하고 술을 담는 법을 보자.
'정월 첫 호랑이날(寅日)에 구기자 뿌리를 캐 가늘게 잘라서 말린다. 이월 첫 토끼날(卯日)에 맑은 술 한 말에 담갔다가 이레가 되거든 찌꺼기를 없애고 새벽에만 먹고 식후에는 먹지 마라'
쑥술인 애주(艾酒)도 빚는 날짜가 음력으로 단오 전날인 5월 4일이다. 『수운잡방』엔 4월 그믐에 밑술을 하고 단오 전날인 5월 4일 덧술을 한다고 했다. 『요록』의 애주는 단오 전날 쑥잎 한 말을 펴서 널어놓아 이슬을 맞게 하고 다음날 정화수를 길어와 쑥을 넣고 끓여 쑥물을 만들고 고두밥과 누룩가루 2되를 섞어 발효시키는 방법이다.
삼해주(三亥酒)와 삼오주(三午酒)는 더 엄격하게 술 빚는 날을 정해두었다. 당연히 일 년에 딱 한 번, 정해진 그 날짜에만 빚을 수 있다.
해(亥)는 흔히 띠를 나타내는 12지(十二支)의 마지막 순서인 돼지다. 12지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로 띠를 나타내는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를 말한다. 따라서 삼해주는 음력으로 설이 지난 후 정월 첫 돼지날인 해일(亥日)에 밑술을 하고 12일 후 돌아오는 돼지날에 덧술, 다시 12일 후 돼지날에 덧술을 하는 삼양주다. 삼오주는 정월 첫 말날인 오일(午日)에 밑술하고 12일 간격으로 덧술을 한다.
올해 예를 들어보자. 음력으로 설날 후 첫 해일은 1월 30일이었고 2월 11일 첫 번째 덧술을 하고 2월 23일 마지막 덧술을 했다. 올해 첫 오일은 2월 6일이었다.
지난 주말 열린 삼해주/삼오주 대회에 맞춰 서울을 다녀왔다. 6월 21일 품평회를 한 것이니 삼해주 기준으로 보면 1월 30일 술을 빚기 시작해서 2개월 정도 저온에서 발효를 하고, 술을 거른 후 다시 2개월 쯤 숙성을 거친 셈이다. 올해 삼해주/삼오주 대회에서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3년 전에는 참석자들이 출품주를 직접 시음해보고 투표로 뽑은 '최고 인기 삼해주상'을 받기도 했다.
어쩌다 보니 실패하기 가장 쉽다는 삼해주와 삼오주를 매년 빚는다. 이유를 따지자면 굳이 대회 출품을 위해서만은 아닌 듯하다.
삼해주와 삼오주는 술을 빚는 시기가 일 년 중 가장 추운 설 직후이다. 때문에 삼해주와 삼오주는 장기저온발효로 술의 맛과 향이 독특하면서 뛰어나다. 대신 12일마다 덧술을 해야 하니 밑술관리가 그만큼 어렵다. 10℃ 정도로 발효온도를 유지해줘야 해서 아주 세심한 정성을 들여야 빚을 수 있는 술이다.
그럼에도 매년 이 술들을 빚는 이유는 술이 품고 있는 스토리와 이 술의 상징성 때문이다. 돼지는 복과 재물, 행운을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돼지날인 해일마다 덧술을 한 삼해주를 마시면 건강과 재물이 따라온다. 반면 말은 출세와 권력, 힘을 뜻한다. 말날마다 덧술을 한 삼오주는 승진을 앞둔 사람이나 큰 시험을 앞둔 사람들에게 선물용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술이다.
이처럼 삼해주와 삼오주는 술을 선물하는 사람도 기분이 좋고, 선물을 받는 사람은 술이 품고 있는 의미 때문에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매년 삼해주와 삼오주를 빚는 이유는 더 있다. 삼해주는 대구경북 지역 고조리서인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온주법』에 공통으로 기록되어 있는 술이다. 영남지역에서도 겨울이면 으레 빚던 술이었다. 삼해주를 빚는다는 것은 한국의 전통을 잇고, 문화를 빚는 일이다. 조선시대 금주령을 내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많이 빚던 술일뿐더러 수많은 이야기까지 품고 있는 술이다. 수 백 년 이어서 빚어온 술이고 또 수 백 년을 이어가야 할 술이기도 하다.
박운석(한국발효술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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