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 최대 주산지 전북, 농협·농가 모두 ‘시름’
정부 손놓아 재배면적 줄고 이상기후에 생산 차질

“올해도 창고에 보리가 없습니다.”
16일 찾은 전북 김제 금만농협의 쌀보리 저장시설. 산물수매를 하는 농협인만큼 예년 같았으면 보리로 가득 찼어야 할 창고가 휑한 모습이다.
최승운 금만농협 조합장은 “지금같은 수매 막바지 시점 기준으로 평년 쌀보리 매입량은 600t인데 현재 120t밖에 없고 더 들어올 예상물량도 60t정도에 불과하다”면서 “역대 최악의 작황이었던 지난해도 이 시기에 320t은 들어왔는데 올해는 더 심각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겉보리와 맥주보리를 모두 합쳐도 수매량이 1000t가량이라 2500t이던 지난해보다도 크게 못미친다.
◆농협, 산지가격 급등해 계약량 미달 ‘위기’=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보리 수매농협들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농협경제지주의 계약재배 대행물량을 채우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
채병덕 익산 오산농협 조합장은 “수매철이지만 들어오는 물량이 없다”면서 “재배가 잘 안 된 농가일수록 줄어든 수확량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민간에 물량을 넘기고 있어 농협도 뭐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작황이 나빴던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산지거래가격이 급등한 탓에 농협으로 출하되는 물량이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해말 결정된 농협경제지주의 보리 계약단가는 주정용 쌀보리 40㎏ 한포대당 3만8000원, 수확기 시세를 반영해 최대 3000원까지 추가 지원된다. 하지만 현재 민간 유통업자들은 두 배가량 높은 가격으로 매입하는 실정이다.
김기수 서군산농협 조합장은 “쌀보리는 7만5000원선, 겉보리는 6만원대를 넘게 치솟았다”면서 "자고 일어나면 보리가격이 몇천원씩 오른다고 할 정도라 농가들에게 계약 이행하라고 독촉하지도 못한다”고 한탄했다.
◆정부 손놓고 밀만 육성…보리 생산량 줄어 가격급등=산지거래가격이 이처럼 급등한 것은 생산량 부족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박현수 농협경제지주 전작사업팀 과장은 “전남 지역은 작황이 좋지 않은 편이나 전북은 평년 수준의 작황을 보이고 수확량도 나쁘지 않다”면서 “재배면적 감소로 인한 절대적인 생산량 부족이 몇년간 지속된 결과 산지유통인들이 물량을 넉넉히 확보하려는 차원에서 가격을 높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농협경제지주가 파악하는 보리 적정 생산량은 12만여t으로, 적정 단수(10α당 400㎏)로 계산시 재배면적이 2만9000여㏊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보리 재배면적은 몇년간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2만8800여㏊였던 재배면적은 이후 2만3000~2만5000여㏊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생산량도 2021년 12만8837t 이후 9만여t으로 줄다가 지난해에는 7만t까지 급감했다.
최 조합장은 “정부가 2012년 보리 수매제를 포기한 뒤로 정책적 지원은 사실상 손을 놔버렸고, 다른 동계작물인 밀만 전략작물직불금을 받게 된 이후 농가들의 재배의향이 크게 꺾였다”면서 “보리의 적정 생산량에 맞게 수급조절할 수 있도록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기후로 수확지연…농가도 ‘막막’=농협뿐 아니라 보리 재배농가도 위기를 겪고 있다. 이상기후로 인해 보리 수확이 지연되면서 후작 파종에도 차질이 생겨서다.
김제에서 4.7㏊ 규모로 보리농사를 짓는 이정훈씨(53·만경읍)는 16일 뒤늦게 모를 구하기 시작했다. 당초 하계작물로 논콩을 계획하고 종자까지 모두 구매해놨지만 지난주 비가 계속 내린 탓에 보리 수확이 늦어지면서 논콩 농사를 포기한 것이다.
이씨는 “비온 뒤 열흘 정도는 땅을 말리고 콩을 심어야 잘 자라는데 이번 주말에도 비가 오고 그 뒤론 장마기간이라 벼농사로 급선회했다“면서 ”추가로 모값이 드는데다 이미 사놓은 콩 종자값과 전략작물직불금 모두 날리는 꼴이라 금전적 손해가 크다"고 속상해했다.
이씨처럼 선택의 기로에 놓인 농가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논콩을 포기하고 벼를 심으려면 지금 결정을 내려야 이달 말에 모내기를 할 수 있다. 종자값을 이중 지출하더라도 서리태로 품종을 바꾸면 7월초까지 파종 시간을 벌 수 있지만 이때 장마가 겹치면 낭패다. 기계작업이 안돼 인력비가 많이 들 수도 있고 콩이 제대로 자라지 않아 농사 자체를 망칠 수도 있다.
백두산 김제농협 계장은 “날씨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어 농가가 어떤 선택을 하든 위험부담이 있다”면서 “급히 모를 구하거나 서리태 종자를 찾는 등 농가들이 각자 여건에 맞춰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군산·김제·익산=윤슬기 기자 sgyoo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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