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자연, 예술이 하나 되어 ‘살아갈 힘’ 찾게 하는 그곳
세계적인 日 건축가 ‘안도 다다오’ 설계
담장 너머 펼쳐지는 감각적 공간 연출
노출콘크리트와 빛이 만든 치유 공간
파란하늘과 흰구름 비치는 워터가든
기하학적 중정서 만나는 ‘나만의 우주’
“오묘한 건축의 세계로 점점 빠져들어”

“‘살아갈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곳.”
강원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SAN)’은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대체 어떤 곳이기에 살아갈 힘, 그것도 “100살까지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양분”까지 찾아준다는 것일까. 누리집에 소개된 건축가의 한마디에 이끌려 길을 나섰다.
한솔문화재단이 2013년 개관한 뮤지엄 산은 275m 높이의 산 위에 있다. 원주시 지정면 월송리 66만여㎡(2만평)에 건물들이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으며, 직선거리가 700m에 이른다. ‘SAN’이라는 이름은 ‘Space(공간)’ ‘Art(예술)’ ‘Nature(자연)’의 머리글자를 딴 것으로 ‘예술과 자연이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건축 여행은 뮤지엄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호젓한 산길을 오르다 이정표를 따라가면 높은 돌담이 둥글게 이어지는데, 담장을 빙 돌아가야 매표소가 있는 웰컴센터와 주차장이 나온다.
“담장 너머에 어떤 풍경이 있을지 궁금하죠? 곳곳에 벽이 있는데, 모든 풍경을 한번에 보여주지 않고 한장면씩 보여주면서 호기심을 유발하려는 건축가의 의도입니다.”
건축 해설을 진행하는 심순희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며 웰컴센터를 지나자, 가로로 긴 벽이 다시 앞을 가로막는다. 벽 사이 통로로 들어가니 진분홍색 패랭이꽃이 한창인 플라워가든과 조각정원이 넓게 펼쳐진다.
세계 유명작가들의 조각작품이 설치된 조각정원에는 ‘빛의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는 ‘노출콘크리트’와 ‘빛’이라는 안도 다다오 건축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텅 빈 네모 공간에 서면 노출콘크리트(거푸집을 떼어낸 면을 노출해 사용하는 콘크리트)로 된 회색 벽이 들뜬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준다. 단정하기만 한 이 작은 공간을 신비롭게 만드는 것은 천장의 십자 모양 틈새로 들어오는 하얀 빛이다. 이 틈을 통해 햇빛은 물론 비와 눈도 십자 모양으로 내린다.
플라워가든의 자작나무 길을 걷다보니 또 벽이 나타난다. 그런데 구조가 독특하다. 회색 콘크리트벽과 연갈색 자연석벽이 물 위에서 수직으로 교차한다. 건축에 쓰인 두 재료를 보여주면서 본관으로 인도하는 십자게이트다. 안도 다다오는 노출콘크리트와 함께 지역에서 나는 자재를 건축에 활용했는데, 연갈색 자연석은 경기 파주에서 나는 파주석이다. 따뜻한 색감과 자연스러운 질감이 노출콘크리트의 차가운 느낌을 보완해준다.
이번엔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십자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본관과 워터가든의 등장에 탄성이 터져 나온다. 나지막한 건물을 감싼 잔잔한 수면에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비친다. 여기에 강렬한 인상을 더하는 것은 물 위에 설치된 거대한 붉은색 조형물이다. 미국 작가 알렉산더 리버만의 ‘아치웨이(Archway)’라는 작품으로, 12개의 원형 파이프 조각이 아치 모양으로 연결돼 있으며 사진 명소로 꼽힌다.
본관 안으로 들어섰다. 본관은 외벽을 이루는 파주석 상자에 노출콘크리트 상자가 들어 있는 형태로, 가운데 전시공간을 통로가 빙 둘러싼 구조다. 보통 통로는 단순한 이동공간이지만 이곳은 다르다. 빛과 어둠의 변주, 노출콘크리트와 파주석의 대비,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만날 수 있다. 벽 상부와 중간에 띠처럼 이어진 창으로 들어온 빛이 어두컴컴한 통로에 음영을 만들어내는데,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외부의 자연과 조우하도록 한 것이다.
본관에서 또 눈여겨볼 곳은 기하학적인 모양의 ‘중정(中庭)’이다. 사각형 중정에는 종이 재료였던 파피루스를 키우는 온실이 있고, 원형 중정에는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작품이 있다. 삼각형 중정(삼각코트)은 ‘무(無)의 공간’이다. 노출콘크리트가 만든 세모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무언가가 차오르는 곳. 안도 다다오는 중정을 통해 ‘나만의 우주’를 선물하고 싶었다고 한다.
전시공간에는 국내 최초의 종이박물관인 페이퍼갤러리와 청조갤러리, 판화공방이 있다. 미술관인 청조갤러리에서는 영국 작가 앤터니 곰리의 ‘드로잉 온 스페이스(DRAWING ON SPACE)’ 전시가 11월까지 열린다.

본관을 나오면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한 스톤가든과 명상관이 이어진다. 돔 형태의 명상관에서는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명상 체험을 할 수 있다. 동굴처럼 고요하고 서늘한 공간에서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천창으로 들어온 한줄기 빛이 몸속으로 스며들어 따스한 기운을 일으킨다. 둥근 공간과 둥근 빛이 마음속의 날 선 것들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듯하다.

마지막 여정은 제임스터렐관이다. ‘빛의 마술사’로 불리는 미국 작가 제임스 터렐의 몽환적인 작품을 체험한 뒤 다시 입구로 돌아가는 길, 본관 옆 카페테라스에 잠시 앉았다.
주변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오는 카페테라스에서는 또 다른 자연의 모습이 보인다. 다랑논처럼 계단식으로 채워진 물 위로 층층이 떠오르는 푸른 산. 자연이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 자연을 다시 보게 하는 건축, 자연을 예술로 만드는 건축, 자연과 예술 속에서 살아갈 힘을 찾게 하는 건축. 일상에서 만나기 힘든 오묘한 건축의 세계로 점점 더 빠져든다.
원주=김봉아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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