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오고서야, 불러본 이름 [임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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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멓고 추운 겨울밤이었다.
정들까 싶어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나날이 흘렀다.
'용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로.
용식이는 그 무렵 좋아하던 드라마 주인공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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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멓고 추운 겨울밤이었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오는 새해였다. 설날이라 모처럼 둥글게 모였다가 헤어질 무렵이었다.
집마다 별처럼 켜진 불빛 아래, 어두컴컴한 차 아래에, 그만큼 까만 고양이가 있었다. 새끼 고양이였다. 동그랗고 큰 눈이 부단히 주위를 살폈다. 몸을 한껏 웅크려 품은 온기가, 그에게 주어진 전부였다. 미래씨와 남편 신형씨는 바깥에 나와 있었다. 둘은 집에 온 손님을 배웅하고 돌아서던 참이었다. 동네 주민 한 명이, 쪼그리고 앉아 차 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건어물을 들고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미래씨 부부도 뭔가 싶어 곁에 나란히 앉았다. 물끄러미 살펴보았다. 차 밑에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동네 주민이 말했다. 건어물로 아무리 유혹해도 도무지 바깥에 나오질 않는다며. 신형씨가 건어물을 건네받았다. 그때였다. 꼼짝도 하지 않던 새끼 고양이가 가만히 다가왔다. 한 발짝, 또 한 발짝. 신형씨가 기뻐서 “이리 와” 하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돌연 폴짝, 하고 새끼 고양이가 뛰어올랐다. 무릎과 팔에 보드라운 감촉이 전해졌다. “자연스레 올라왔는데, 그대로 들고 집에 올라간 거예요. 내려놓을 수 없었어요.”

밝고 따뜻한 집 안에서 새끼 고양이를 찬찬히 살펴봤다. 다리 한쪽이 굽어 있었다. 녀석은 절뚝거리며 집 안을 둘러봤다. 둘은 짐작했다. 경계심이 별로 없어, 사람 손을 탄 게 아닐까, 혹시 버려진 게 아닐까. 혹시 몰라 일주일 넘게 보호자를 찾아주려 애썼다. 어쩌면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아무 연락이 없는 걸 보며 부부는 생각했다. 버려진 게 맞는 것 같다고. 그 생각은 이리 이어졌다. “우리가 이 아이를 가족으로 품어주면 좋겠어.” 신형씨가 그 말을 먼저 꺼냈다. 미래씨는 두려웠다. 그는 지독한 상실의 경험이 있었다. 15년을 함께한 뒤 반려견 ‘미돌이’를 떠나보낸 일이었다. 충만히 채워졌던 삶에 채워지기 힘든 구멍이 생겼다. 더는 평범히 부르고 만지고 품을 수 없다는 절대적인 상실감. 그 힘듦에 우울증까지 겪었다.
정들까 싶어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나날이 흘렀다. 다릴 치료해준 뒤 집안을 종종거리며 다니던 고양이를 보며, 미래씨는 맘먹었다. ‘용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기로. 용식이는 그 무렵 좋아하던 드라마 주인공 이름이었다. 용식이가 가족이 된 뒤 미래씨는 어쩐지 그 이름을 다시 부를 수 있게 됐다. 가슴 아파 차마 입에 담지 못했던 ‘미돌이’란 이름을. “미돌아, 미돌아.” 말하려 하면 말문이 막히고 눈물부터 나서 도저히 못 부른 이름을 맘껏 불렀다.

용식이와 함께한 행복한 시간도 벌써 6년이 흘렀다. 가끔, 용식이가 떠날 날을 상상하면 또 두렵다고 했다. 미래씨는 잘 알았다. 그때가 되면 속절없이 또 아프고 힘들 거라는 사실을. 괜찮겠느냐고 묻자 미래씨는 이리 답했다. “미돌이 때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겠어요. 별 대책이 없지요. 그저 있는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 노력할 거예요. 그뿐이더라고요.”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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