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골퍼를 위한 심폐소생술이 있다면…
[골프한국] 최근 골프 연습을 마치고 나오다 관악산 입구에 과천 소방서에서 등산객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心肺蘇生術·CPR) 체험 장소를 마련해 놓은 곳을 지나게 되었다. 한 등산객이 눕혀진 인체모형을 마주한 채 두 손을 깍지 끼고 소방관의 안내에 따라 흉부 압박을 하고 있었다. 호기심에 머뭇머뭇 다가서자 한 소방 직원이 "직접 한번 해보시죠." 하고 바로 체험 과정으로 인도했다.
나는 소방관의 안내에 따라 인체모형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자동제세동기(自動除細動器·AED)와 연결된 패드가 인체모형 올바른 위치에 놓였는지 확인하고 스위치를 누르는 법을 가르친 뒤 AED가 없을 때는 직접 두 손을 깍지 끼고 명치 바로 위에 얹은 뒤 심장 부위를 강하고 빠르게 압박하면 된다고 했다.
소방관의 구령에 따르려니 의외로 빠른 압박 동작이 필요했다. 분당 100회 이상, 가슴 부위가 5cm 눌리도록 압박해야 한다니 꽤 힘을 모아야 했다. 30여 회 압박 동작을 하자 금방 숨이 차기 시작했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자 소방관이 보충 설명을 했다. 응급조치법으로 인공 호흡과 심폐소생술이 있는데 인공 호흡은 입을 통해 산소를 폐로 공급해주어 숨을 되찾게 하는 방법이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정확히 수행하기 어렵고 감염 위험도 있어 흉부 압박이 더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흉부 압박은 심장의 펌프 기능을 대신해 뇌와 주요 장기로 혈액을 보내는 역할을 하는데 자동심장충격기(AED)가 없을 때 긴급구호팀에 도착할 때까지 심장을 뛰게 해 뇌에 혈액을 공급해준다고 했다. 소방관은 혈류 및 호흡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뇌에 영구적인 손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신속하고도 정확한 응급대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장이 정지되어 순환이 되지 않은 채 4분이 지나면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 뇌 손상이 시작되며 10분부터는 뇌 이외의 다른 장기들도 손상된다고 했다. 따라서 심정지가 발생하면 늦어도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을 시작해서 AED 이용과 병원 치료가 이루어질 때까지 중단 없이 계속해야 환자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요약하면 심폐소생술은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유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심장을 대신해 다른 사람이 직접 해당 부위를 압박해 심장이 할 일을 일부라도 대신해 주는 것이다.
라운드 중에도 드물지 않게 응급상황이 발생한다. 생명과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라운드의 리듬에 이상 징후가 일어나 골퍼를 정신적 빈사 상태로 몰아넣곤 한다. 라운드 중에 골프백을 챙겨 떠나는가 하면 골프채를 부러뜨리고 엉뚱하게 캐디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한다. 이때 정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골프의 심폐소생술이 필요하다.
불행히도 이런 골퍼를 위한 심폐소생술은 아직 없다. 스스로 진정하며 정상적인 바이오 리듬을 되찾는 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지난 홀의 기억과 단절할 줄 아는 지혜, 지나치게 전의를 불사르며 각오를 다지는 행동을 삼가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을 잃지 않는 자세, 때로는 망각이나 포기도 심폐소생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동반자 중에 일행의 응급상황을 지혜롭게 처리할 줄 아는 해결사가 있다면 행운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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