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거장’ 임윤찬, 클래식의 새 역사를 쓰다 [김성록의 클래식 이야기]

김성록 클래식 해설가 2025. 6. 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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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C 뮤직 어워즈 최초 3관왕에  메켈레와 협연까지  
명상처럼 울려 퍼지는 연주,  클래식의 경계를 넘어서 

(시사저널=김성록 클래식 해설가)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지난해 발매한 '쇼팽 에튀드(연습곡)' 앨범으로 제20회 BBC 뮤직 매거진 어워즈에서 주요 3개 부문을 석권했다. '클래식 음반 불황'이라는 흐름 속에서 1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은 주목할 만한 성과이며, '올해의 음반' '올해의 신인' '기악 부문상'이라는 영예로운 타이틀을 동시에 거머쥐며 2006년 창설 이후, 시상식 역사상 '최초의 3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특히 '올해의 신인상' 수상자가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인 '올해의 음반상'까지 함께 받은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6월1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클라우스 메켈레가 지휘하는 파리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마친 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중과의 영적 대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세계적 인재를 배출해온 권위 있는 대회지만, 지금까지의 17명의 우승자 중 세계적인 명성을 이어간 피아니스트는 고(故) 라두 루푸와 임윤찬으로, 생존자 중에서는 임윤찬이 유일하다. 이번 수상은 그만큼 임윤찬 개인의 음악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자, 클래식계 전체에서도 새로운 이정표라 할 만하다.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그는 현재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학생 신분이다. 첫 음이 심장을 울리지 않으면 다음 음으로 나아가지 않고, 2마디에 7시간을 쏟기도 하는 그의 연습은 단순한 반복이 아닌 깊은 사유의 시간이다. 트랜스 상태에 빠져 14시간 이상 연습에 몰두하는 그는 "왜 이 음이 여기에 있는가?" "이 프레이즈는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작곡가는 어떤 시대에 어떤 생각을 했는가?"와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지며 음악을 해석하고, 삶을 이해해 간다.

무대 위에서 임윤찬은 작품과 자신, 그리고 청중 사이의 본질적인 교감을 추구한다. 관객은 단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생성되는 내면의 공간까지 함께 경험하는 감각을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연주는 하나의 '해석'이자 '명상'이며, 현대 클래식 음악계가 잊고 있던 예술의 본령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임윤찬은 자신을 '천재'가 아닌 '매일 연습하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음악에 대한 철저함, 집요함, 자기 성찰의 태도는 많은 이에게 깊은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임윤찬이 가장 존경하는 작곡가는 바흐다. 그에게 바흐는 단순한 바로크 음악가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와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게 하는 철학적 통로다. 그는 바흐를 철학이자 신학이며 삶 그 자체라 말한다. 지난달 뉴욕 카네기홀에서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며 바흐의 숨결을 청중에게 전했다. 연주 후 이어진 5분간의 기립박수는 그 울림에 대한 화답이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아리아와 30개 변주로 구성된 구조적으로 거대한 음악 서사다. 3개 단위의 10묶음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캐논이 질서와 생명력을 부여한다. 모든 변주는 동일한 베이스 라인을 공유하며, 이는 마치 동일한 인물이 다양한 옷을 갈아입고 무대에 등장하는 것과 같다. 바흐는 악보에 템포나 프레이징 등 지시어를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해석의 여지는 무한하다. 임윤찬은 기교가 아닌 기도를 통해 바흐를 마주하려 했다. 그는 음악적 구조뿐 아니라 루터 신학과 18세기 독일 종교관까지 조사하며 곡에 접근했고, 절제된 페달과 레가토, 대위법적 명료성으로 현대 피아노와 바흐가 이 곡을 작곡하며 사용했을 바로크 하프시코드의 경계를 넘나드는 해석을 선보였다. 곡의 흐름 속에 묻어있는 쉼과 호흡에서 깊은 통찰을 드러냈고,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으면서도 절제된 강렬함, 즉흥성과 계획성이 절묘히 균형을 이룬 그의 연주는 바흐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연주를 마친 그는 앙코르곡으로, 오직 왼손만으로 32개 음을 정제된 템포로 조용히 연주했다. 이것은 주제 선율인 아리아의 베이스음들이다. 화려한 변주 여정을 마친 청중에게 그 모든 변화의 출발점이자 변하지 않는 중심을 다시 들려주는, 차분하지만 강렬한 메시지였다.

임윤찬과 클라우스 메켈레가 협연을 마친 뒤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젊음과 경륜을 동시에 품은 두 청춘 거장, 임윤찬과 메켈레

6월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4번을 연주했다. '젊은 야수' '슈퍼 루키'라 불리는 메켈레의 지휘 아래 펼쳐진 이 무대는, 열정적이면서도 섬세한 두 청춘 거장의 예술적 대화로 관객을 압도했다.

이 협주곡은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 혁명 이후 미국으로 망명해 내적·외적 혼란을 겪던 시기에 작곡한 작품이다. 실험적인 구조, 재즈적 색채, 불안정한 선율 전개로 초연 당시 혹평을 받았고 이후 여러 차례 개작되었으나, 복잡한 구조와 낯선 어법으로 인해 연주자들로부터 소외되어 있던 작품이다. 하지만 이날 임윤찬과 메켈레는 불협화음과 격식을 깨는 자유로움을 고스란히 살려내며, 파격과 창의성을 오늘날의 청중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해 냈다.

클라우스 메켈레는 1996년생으로, 현재 오슬로 필하모닉과 파리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이며 2027년부터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와 시카고 심포니의 수석 지휘자로 예정돼 있다. 그는 정확한 테크닉, 세밀한 조율 능력, 패기 있는 해석으로 '스틱 마스터'라는 별명을 얻었다. 임윤찬과 마찬가지로 20대인 그는, 내면을 중시하는 예술적 태도로 임윤찬과 이상적인 파트너십을 이루었다.

임윤찬의 연주는 단순한 훈련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음악을 단순한 기술이나 직업이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받아들이고 존재 전체로 껴안으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의 연주에는 사유와 감정,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진심이 녹아있다. 이러한 태도는 무대 밖에서도 이어진다. 그는 예술가로서의 책임을 묵묵히 실천하고 있다. 지난 3월 고양 아람누리에서 열린 리사이틀 수익금 1억원을 가톨릭중앙의료원에 기부했으며, 'J.S. Bach'라는 이름의 소아 환우 전용 기금을 조성했다. 이는 음악을 통해 얻은 것을 다시 세상에 환원하고자 하는 그의 깊은 마음을 보여준다. 

이 젊은 예술가는 이제 또 하나의 문을 열었다. 시대의 심연에서 길어올린 힘으로, 그는 앞으로도 전 세계 청중의 마음을 깊이 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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