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자연재해 극복 보여주는 영천 청제비, 국보 지정

최미화 기자 2025. 6. 2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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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청제비는 신라 때 조성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옮긴 적이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록유산 중 금석각류 비(碑)다.

'영천 청제비'는 청제의 축조 과정과 수리 과정, 왕실(국왕) 소유의 제방 관리 및 보고 체계 등을 기록함으로써 신라의 정치 및 사회・경제적 내용을 연구・확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는 점, 또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고비석으로서 한 비석에 시기를 달리하는 비문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라는 점, 조성 이래 현재까지 원 위치에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보로 승격하여 보존・관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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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청제비가 이번에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됐다. 신라 법흥왕 23년 536년에 조성됐다. 국가유산청 제공

영천 청제비는 신라 때 조성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옮긴 적이 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기록유산 중 금석각류 비(碑)다. 이번에 국가유산청은 신라시대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것을 보여주는 영천 청제비를 보물에서 국보로 지정했다.

'영천 청제비'는 신라 때 조성 이래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청못' 옆에 세워진 비석으로 받침돌과 덮개돌 없이 자연석에 비문을 새긴 2기의 비석이다. 청제축조・수리비와 청제중립비로 구성된 이 비석은 세 시기에 걸쳐 청제의 조영 및 수리와 관련된 내용을 새긴 비석으로, 자연재해를 극복하는 토목 기술과 국가 관리 체계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536년에 조성된 청제비가 수리된 내용을 담은 청제수리비. 798년 제작. 국가유산청.
청제축조비와 청제수리비는 모양이 일정치 않은 하나의 돌 앞뒷면에 내용을 새겼는데, 위쪽이 얇고 아래쪽이 두꺼운 형태이다. 청제축조비는 536년(법흥왕 23) 청제를 처음 조성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비문은 10행으로 각 행의 글자 수는 9~12자이다. 서체는 고졸하고 비정형적이며 자유분방한 6세기 신라 서풍의 전형에 해당한다. 청제수리비는 798년(원성왕 14) 청제의 수리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비문은 12행으로 각 행의 글자 수는 4~16자이다. 서체는 통일신라의 세련된 서체와 달리 청제축조비의 신라 고유 서풍을 계승하였다. 두 면의 비문 대부분은 판독이 가능할 정도로 양호한 상태이다.
청제 중립비는 1688년 숙종 14년에 청제축조・수리비가 땅에 묻혀 있었던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실을 담고 있다. 국가유산청.
바로 옆의 청제중립비는 1688년(숙종 14) 청제축조・수리비가 땅에 묻혀 있었던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운 사실을 담고 있다. 서체는 조선의 일반적인 해서와 다른 신라의 고졸한 서풍을 반영하고 있다.
영천 청못이 조성된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청제비는 비각으로 보호하고 있다. 국가유산청.
'영천 청제비'는 청제의 축조 과정과 수리 과정, 왕실(국왕) 소유의 제방 관리 및 보고 체계 등을 기록함으로써 신라의 정치 및 사회・경제적 내용을 연구・확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는 점, 또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운 고비석으로서 한 비석에 시기를 달리하는 비문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희귀한 사례라는 점, 조성 이래 현재까지 원 위치에서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점에서 국보로 승격하여 보존・관리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이번에 국보로 승격된 청제비 2기. 국가유산청

1969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56년 만에 국보가 된 영천 청제비는 신라 때 축조 이래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경북 영천의 '청못' 옆에 세워진 2개의 비석이다. 청제비도 원래의 자리에 그대로 서있다.

국가유산청은 "청제축조·수리비는 신라사에서 홍수와 가뭄이 가장 빈번하였던 6세기와 8세기 후반~9세기에 자연재해 극복을 위해 국가에서 추진했던 토목공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시사점이 크다"며 "청제의 축조 및 수리 과정, 왕실(국왕) 소유의 제방 관리 및 보고 체계 등이 기록돼 있어, 신라의 정치 및 사회·경제적 내용을 연구하고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최미화 기자 cklala@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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