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나라’ 부탄에서 쫓겨나는 난민들 [.txt]

한겨레 2025. 6. 2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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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style="color: rgb(0, 184, 177);">구정은의 현실지구</span>
부탄→인도→미국→네팔…무국적 설움
국민총행복 개발국서 ‘비국민’은 배제
글로벌 이주·난민 문제 복잡성 드러내
부탄에서 추방돼 네팔 벨당기 난민촌에 수용된 네팔계 부탄 난민이 부탄 정부에서 발급받았던 자신의 여권을 보여주고 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국 아이다호주에서 살았던 비노드 샤라는 남성은 얼마 전 부탄으로 추방됐다. 정작 그의 국적은 부탄이 아니다. 부탄에서 태어났지만 부탄은 비노드와 같은 네팔계 주민들을 자국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는 ‘무국적자’다.

비노드 샤는 스무살 때 미국의 난민 정착 프로그램에 따라 인도의 난민촌에서 미국 아이다호주 트윈폴스로 이주해 영주권자가 됐다. 20년 동안 일하고 결혼해 아이도 낳았다. 그런데 2019년 폭행죄로 기소됐고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그것이 그가 다시 난민이 된 이유였다. 부탄으로 갔지만 거기서도 언제든 쫓겨날 판이다. 역시 부탄 출신인 네팔 난민 아이스도 미국에서 쫓겨나 몇몇 다른 이들과 함께 부탄으로 보내졌지만 인도의 네팔 난민촌으로 다시 추방됐다. 케이티브이비(ktvb) 등 미국 지역언론들이 전한 국적 없는 네팔계의 사연들이다.

올 3월 미국이 부탄을 비롯한 12개국을 비자 발급 금지국 목록, ‘레드리스트’ 초안에 넣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뒤에 레드보다 낮은 단계인 ‘옐로리스트’로 조정되긴 했으나, 전쟁 중인 나라도 아니고 미국의 적대국도 아닌 부탄은 왜 요주의 국가가 됐을까. 미국 국토안보부 통계를 보면 2013~2022년 추방된 부탄인 미등록 체류자는 200명 정도다. 그런데 미국은 이 나라를 콕 집어 불법 이주민을 내보내는 나라라는 딱지를 붙였다. 무국적 네팔계 ‘난민들’ 때문이다.

이달 초 미국 아이다호주의 지역 방송 케이티브이비(ktvb)가 미국에서 부탄으로 추방됐으나 부탄에서도 다시 추방되고 있는 네팔계 부탄 무국적자들의 사연을 보도했다. 케이티브이비 누리집 방송 화면 갈무리

부탄은 히말라야 동부 산악지대에 있는 왕국이다. 면적은 4만㎢가 채 못 되고 인구는 70만명 정도다. 16세기에 통일 왕국이 됐고 뒤에 영국 보호령이 됐으나 식민 통치를 받은 적은 없다. 1907년 왕추크 왕조가 수립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은둔의 왕국’이라는 뻔한 수식어 외에 떠오르는 부탄의 이미지는 ‘행복한 나라’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행복을 추구하는 나라’다. 출발점은 1970년대 4대 국왕(드루크 걀포)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가 제안한 ‘국민총행복’(GNH)이라는 국가 발전 모델이다. 경제 성장보다 국민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이 접근법은 크게 네가지 기둥으로 구성돼 있다.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인 경제 발전, 전통문화 보존, 환경 보호, 그리고 좋은 통치를 기둥 삼아 아홉가지 척도를 뒀다.

부탄에서는 모든 정책이 국민총행복 사전영향평가를 거친다. 2011년에는 유엔도 부탄의 국민총행복 개념을 받아들였고 유엔 총회에서 ‘행복 결의안’이 채택됐다. 2012년 최초의 세계 행복 보고서가 발표됐고, 3월20일이 유엔이 정한 ‘국제 행복의 날’로 선포됐다.

이달 초 ‘부탄의 케이트 미들턴(영국 왕세자비)’이라 불리는 왕비 제춘 페마 가 35살 생일을 맞아 가족과 찍은 사진들이 공개됐다. 페마 왕비는 2011년 결혼할 때부터 검소한 생활과 두드러진 외모로 화제가 됐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에서도 젊은 국왕 부부의 미소가 눈길을 끌었다.

사실 부탄을 잘사는 나라라 볼 수는 없다. 구매력 기준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2022년 1만4000달러였다. 평균 기대수명은 73살, 문자 해독률은 70%로 세계 하위권이다. 모든 전기를 수력으로 생산해 지속가능성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만, 제조업은 별로 없고 경제 대부분을 인도에 의존한다. 하지만 행복을 목표로 삼음으로써 다른 나라들이 겪었거나 겪고 있는 환경파괴, 극심한 빈부격차와 사회 갈등, 과도한 경쟁, 정체성 상실 등을 늦추고 있다. 전 국민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을 시행 중이며, 부패도 적고 분쟁이나 안보 불안도 없다.

부탄 청소년들이 ‘행복은 외부 환경이 아니라 내면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쓰인 표지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박진도 교수 제공

그런 부탄의 어두운 과거가 네팔계 추방 작전이었다. 1980년대 후반 부탄은 당시 인구의 6분의 1인 10만명의 시민권을 빼앗고 ‘인종청소’ 식으로 쫓아냈다. 부탄의 조치가 난민을 ‘생산’한 것이다. 그들 중 일부가 미국에 정착했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때 인구가 줄어든 내륙의 쇠락한 산업지역들이 이들을 받아들였다. 오하이오의 레이놀즈버그시는 인구의 5분의 1인 8000명이 부탄 출신이다.

그런데 요새는 부탄 젊은이들이 스스로 탈출을 꿈꾼다. 2020년 한국에서도 개봉된 부탄 영화 ‘교실 안의 야크’는 부탄 수도 팀푸에 살던 교사 유겐이 산악 오지 학교에 발령받아 일어나는 일들을 그렸다. 풍광은 아름답고 줄거리는 따뜻하지만 결말은 서글프다.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민을 꿈꾸던 유겐은 결국 떠났고, 시드니의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영화는 끝난다. 현실도 비슷하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0년 해외로 떠난 사람이 1만2400여명이었는데 작년에는 2만5000명으로 두배가 됐다. 53%가 대학 졸업자들이고 49%는 공무원이었다.

국민총행복 개념의 원조라지만 부탄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높지 않다. 유엔 ‘세계 행복보고서’에 부탄 통계가 마지막으로 실렸던 2019년의 순위는 95위였고, 경제·교육·보건의료 등을 종합한 유엔 인간개발지수로는 2023년 125위였다. 나라가 닫혀 있을 때에는 큰 불만이 없었을 것이다. 부탄은 세계에서 텔레비전이 가장 늦게 들어간 나라다. 1999년에야 티브이 금지령이 풀려 주민들이 방송을 볼 수 있게 됐다. 인터넷도 늦게 풀렸다. 한번 풀리니까 통신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3년 0%였던 휴대전화 보급률이 10년 새 60% 가까이 늘더니 2021년에는 100%가 됐다. 국민이 바깥세상에 눈을 뜨면서 현실과 기대의 괴리가 커졌다. 부탄 국영방송 비비에스(BBS)는 “호주 같은 나라는 더 높은 수입 잠재력, 더 나은 교육 기회, 유연한 비자 정책으로 청년들의 목적지가 되고 있다”며 민간 부문이 부족한 것, 기회가 적은 것이 두뇌 유출을 부른다고 지적했다.

부탄이 쫓아낸 이들이 미국에서 다시 쫓겨나고, 그들을 부탄이 또 밀어내는 사이에 부탄 젊은이들은 밖으로 향한다. 그것이 글로벌 이주의 복잡한 현실이다. 그들 모두가 ‘행복추구권’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구정은 국제전문 저널리스트

구정은 국제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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