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층적 교류 물꼬 '한·일 성신조약' 체결할 만…한·일 불완전 '65년 체제' 탓 역사전쟁 우려도
한·일 수교 60주년 - 전문가 진단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캐나다 G7 정상회의에서 이시바 총리와 회담하고 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24/joongangsunday/20250624081617217gbfm.jpg)
━
신각수 전 주일대사, 니어재단 부이사장

한·일 관계는 지난 60년간 크게 4단계를 거쳐 발전해왔다. 수교로부터 1980년대 말까지 정부 주도, 1990년대 민관 주도 전환, 2000년대 민간 주도를 거쳐 복합 네트워크로의 발전을 목전에 두었다. 6~7차례의 위기를 겪으면서 시시포스 신화의 길을 걸었지만, 대체로 우상향의 발전 경로를 밟았다. 1998년 한·일 파트너십 선언과 활발한 문화 교류 덕분에 상호 이해와 신뢰가 쌓여 미래지향적 발전 궤도에 정착할 소지가 있었다.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 과거사가 한·일 관계 전면에 대두하면서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하였다. 장기간 다중 복합골절 상태의 지속은 상호 경원, 전방위 관계 악화, 상호 신뢰자산 파괴, 과거의 현재·미래 지배 등 한·일 관계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2022년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문제 관련 ‘제3자 변제’ 해법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한·일 관계를 회복 궤도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일본의 성의 있는 대응 부족에 대한 한국의 불만과 한국 정치 변동에 따른 지속성에 대한 일본의 불안이 상호 교차하면서, 2012년 이전 상태로 완전히 복귀하는 데는 아직 부족한 게 현실이다.
한·일 관계는 60년간 큰 변화가 있었다. 수교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이 한국의 9.2배였으나, 최근 한·일 역전이 이루어질 정도로 경제 격차가 크게 줄었다. 또한 양국 사회에서 전전 세대가 물러나고 전후 세대가 주류로 등장했다.
북한의 핵 위협은 동북아 전략 환경을 뒤흔들 정도로 심각해졌고 부상한 중국의 공세적 외교·안보 정책은 미국과의 전략 경쟁으로 지정학의 귀환을 가져왔다.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있는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로 동맹 체제와 자유주의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다. 중국·러시아·북한·이란 등 ‘교란의 축’도 전후 질서에 강력히 도전하고 있다. 팬데믹, 4차 산업 기술혁명, 기후변화, 인구 문제, 에너지 전환 등 복합대전환도 국제질서의 불확실성을 가중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으로 가치를 공유하며 미국의 양대 동맹국인 한·일 양국은 포스트 탈냉전 시대의 혼돈을 함께 헤쳐 나갈 전략적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21세기는 인도태평양의 시대다. 양국은 인태지역의 자유, 평화와 번영을 담보할 책임이 있고, 이를 위한 미래 비전을 만들어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런 목적으로 양 국민의 다층적 대규모 교류를 제도화할 ‘한·일 성신(誠信)조약’(1963년 독·불 엘리제조약의 한·일판)의 체결과 미래비전 구축 작업을 담당할 양국 민관 합동기관으로 ‘한·일 성신위원회’의 설립을 제안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한·일 관계가 현재 당면한 상황은 글로벌 복합 위기의 다중 발생으로 요약할 수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였고 이스라엘-하마스-이란 전쟁으로 중동 정세도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는 속에서 대만해협의 파고도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대남 적대국 표명과 더불어 핵·미사일 위협도 심화하고 있다. 한편 글로벌경제는 심각하게 분절화하고 관세 장벽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2.0을 계기로 미국을 필두로 주요국은 각자도생과 경제안보를 내세우며 자국 우선의 보호주의적 경제정책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갈등과 마찰로 점철된 ‘잃어버린 10년’의 한·일 관계를 협력과 공조의 관계로 전환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글로벌 복합 위기와 미·중 전략대결 구도 속에서 한·일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양국의 협력과 공조야말로 상호 이해와 이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게 되었다. 2023년 한·일 관계의 극적인 전환은 이러한 공동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징용문제에 대한 ‘제3자 변제’ 해법 제시를 계기로 한·일 관계는 극적으로 개선되어 정상 간의 셔틀외교가 복원되었고 대화 채널도 재가동되었다.
물론 관계 개선에도 불구하고 우려의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 국민은 일본에 양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역사 반성에 인색하고 화답이 없다고 불만이다. 일본 국민은 이재명 정부의 출범으로 한·일 관계가 후퇴하거나 급변할 수 있다고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향후 한·일 관계 개선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노력이 요구된다. 첫째, 개선된 한·일 관계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국민의 폭넓은 지지 확보가 절실하다. 둘째, 한·일 간 갈등의 기폭제로 등장하는 과거사 갈등 사안을 전략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위안부, 징용, 사도광산 등재, 역사교과서, 야스쿠니 참배 등 과거사 이슈가 포함된다. 셋째, 새로운 국제 정세와 변화한 한·일 관계를 반영한 미래비전을 구축하고 공유하는 일이 중요하다.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일본 총리는 1998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합의했다. 이 선언은 한·일 관계사에서 금자탑과 같은 존재이다. 한·일 정상은 양국의 전방위적 협력의 필요성과 분야별 세부 협력 지침을 담은 ‘한·일 파트너십 선언 2.0’의 재구축 과정에 돌입해야 한다.

━
이기태 세종연구소 선임연구위원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으로 대표되는 한·일 국교정상화(소위 ‘65년 체제’)는 당시 미해결 과거사 문제를 보류한 채 한·일 수교를 우선시한 ‘불완전한’ 65년 체제였다. 향후 한·일 과거사 문제는 ‘불완전한’ 65년 체제에 기인하는 한·일 갈등과 더불어 다른 두 차원의 ‘역사 전쟁’이라는 보다 복잡한 형태로 전개될 우려가 있다.
첫째, 일본 사회의 보수화 흐름 속에서 더욱 강해진 일본의 ‘역사전(歷史戰)’ 전개다. 2015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전후 70주년 담화(아베 담화) 발표를 통해 과거 일본이 1930년대에 군부에 의해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고 언급하면서 1910년의 강제병합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일제강점기의 책임을 회피하였고, 더 이상 일본 미래세대의 사과는 불필요하다고 선언함으로써 일본의 역사 인식에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집권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이었던 아베파를 중심으로 중국과 한국에 역사 문제로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전’ 주장으로 발전하였다.
둘째, 미국이 주도해왔던 동북아 국제질서를 재편하려는 중국의 ‘역사전’ 공세다.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을 계기로 일본을 압박하는 역사전을 강화하고 있으며, 특히 대만 유사시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오키나와의 역사적 정통성을 흔들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중국은 향후 한·중 간 역사 연대를 통해 한·미·일 협력 구도의 이완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일 양국이 ‘불완전한’ 65년 체제를 인정하고, 과거사 갈등을 완화하고 관리하기 위한 공동의 방안을 모색하는 일이다. 최근 방한한 나가시마 아키히사 일본 총리 국가안보담당특별보좌관이 제시한 세 가지 원칙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단기적 이해득실보다 장기적 전략 이익을 중시할 것 ▶과거 합의(정부 담화 등)를 존중하며 후퇴하지 않을 것 ▶양국 국민을 용기 있게 설득해 나갈 것이라는 세 가지 한·일 역사 문제에 관한 원칙을 강조하였다.
이창민 한국외대 일본학과 교수

그러나 2010년 이후 한·일 경제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쇠퇴 국면에 접어들었다. 2011년부터 대일 수출입이 모두 감소하기 시작했고, 무역수지 적자 규모 역시 줄어들었다.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중단되었으며, 통화스왑도 단계적으로 종료되었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이에 대응한 한국의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은 역사 갈등의 표출로 보였지만, 실상은 한국의 산업 경쟁력 상승으로 인해 일본과의 구조적 협력이 더 이상 필수적이지 않은 분야가 늘어났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이처럼 냉각됐던 한·일 관계는 2023년 3월부터 9월까지 불과 6개월 동안 7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극적으로 해빙 국면에 접어들었다. 특히 같은 해 8월, 미국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세 건의 공동문서는 안보와 경제 양 측면에서 삼국 협력의 제도화를 예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은 구조적 불안정성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은 정권 교체에 따라 대외 전략이 급변하는 경향이 강하고,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 간 대미·대중 외교 노선의 차이도 뚜렷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의 국제정세 변화는 한·일 양국이 새로운 협력의 틀을 고민해야 할 시점임을 시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보다 거래’를 중시하는 외교를 다시 꺼내 들었고, 한·일은 새로운 통상 질서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최태원 SK 회장이 제안한 ‘한·일 경제협력체의 유럽연합(EU)식 단일시장 모델화’는 단순한 이상론이 아닌 현실적인 상상력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실리 중심의 협력 전략에는 분명한 한계도 존재한다. 위안부, 강제징용, 역사 교과서, 독도 영유권,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다. 한국 내 정권 지지율이 하락할 경우 이들 사안이 여론 결집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교 정상화 60주년과 함께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어떤 대일 전략을 펼치느냐에 따라,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과 ‘캠프 데이비드 이후’ 삼국 협력이 일시적 현상에 그칠지, 아니면 지속 가능한 파트너십으로 진화할지가 결정될 것이다. 그 선택은 한국의 손에, 그리고 이재명 대통령의 손에 달려 있다.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