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 vs 신유청 이상한 연극 대결...'유령'도 '꼽추'도, 있다
![연극 ‘유령’에서 배명순과 정순임, 그리고 배우 자신을 연기하는 이지하. [사진 세종문화회관]](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21/joongangsunday/20250621005154257lqqt.jpg)
고선웅이 직접 쓴 14년만의 창작극으로 주목받은 ‘유령’은 이상한 연극이다. 무연고자의 죽음을 다룬 신문 기사에서 출발한 현실고발적 무대지만, 리얼리즘 연극은 아니다. 브레히트 서사극의 소격효과를 노린 듯, 배우들은 자꾸만 ‘나는 내가 맡은 배역일 뿐’이라며 배우인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 악역을 맡은 이는 “나도 이런 대사 하기 싫다”고 토로하고, 분장사와 무대감독도 내내 들락거리며 이게 연극임을 강조한다. 객석에 앉아있던 배우가 못 참겠다며 무대로 뛰어들기도 한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연극 속 이야기일 뿐이라며 거리를 둔 무대는 시종 코믹하게 흘러간다. 고선웅 특유의 장엄한 엔딩이 이들의 비극적 삶을 배웅할 뿐. 개막 초 직접 전화 목소리로 출연했을 정도로 고선웅의 존재감이 크다. 배우들의 대사 속에 줄곧 ‘이런 이상한 연극을 만든 원흉’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는 왜 이런 이상한 연극을 만들었을까. ‘세상은 무대, 인간은 배우’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정순임의 삶도 배명순의 삶도 본인의 선택이었듯, 삶이 힘겹다면 그저 거대한 무대 위 선택한 배역을 연기하듯 한바탕 놀아보면 어떠냐는 권유다.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다.
![연극 ‘헌치백’에서 중증장애를 가진 작가 이자와 샤카를 연기하는 장애 배우 차윤슬. [사진 국립극장]](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21/joongangsunday/20250621005157010yjbv.jpg)
“아이를 못 낳는다면 임신과 중절이라도 해보고 싶다” “다시 태어나면 고급창부가 되고 싶다”는 샤카의 욕망은 원초적인 듯 사회적이다. 샤카도 무연고자이나, 부모가 남긴 돈은 많다. 평생 아무런 사회적 마찰 없이 고립된 삶을 살아온 그는 웹소설 집필에 욕망을 투영하며 은밀한 이중생활을 하는데, 간병인 다나카가 눈치를 채자 “임신과 중절을 도와주면 1억 엔을 주겠다”며 목숨을 건 욕망 실천에 나선다.

“다나카씨의 르상티망을 빨고 있는 것 같아서 느낌이 좋다.” 샤카와 다나카의 관계를 니체의 ‘르상티망(ressentiment: 강자에 대한 약자의 원망스런 감정)’ 개념에 빗댄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장애인은 늘 약자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떠오른다. ‘무장애 연극’이 하나의 장르가 되고 있지만, 장애라는 벽을 넘어 비장애인에게도 순수하게 매력적인 무대는 처음 봤다. 장애 관객과 장애 배우를 1차원적으로 돕는 보조출연자의 튀는 존재감에 ‘무장애’란 단어가 무색해지곤 했었다. ‘장애에 대한 배려’를 전시하는 뻔한 형식이 아니라, 신유청은 전혀 다른 문법으로 비장애 관객에게도 직관적인 재미와 신선한 충격, 장애에 대한 깊은 통찰까지 선사했다. 원작 선택도 탁월했다. 내용과 형식의 모순 없는 ‘무장애 연극’의 탄생이랄까. 무장애 연극도 어느덧 진화하고 있다. 12~15일 국립극장에서 공연됐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