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 vs 신유청 이상한 연극 대결...'유령'도 '꼽추'도, 있다

유주현 2025. 6. 21. 00:5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연극 ‘유령’에서 배명순과 정순임, 그리고 배우 자신을 연기하는 이지하. [사진 세종문화회관]
‘유령’과 ‘꼽추’. 상반기 연극판을 활보한 ‘보이지 않는 존재’다. 최근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한 대표적인 중견 연출가 고선웅이 만든 서울시극단의 신작 ‘유령’과 2020년 같은 상을 받은 블루칩 연출가 신유청이 만든 국립극장의 무장애연극 ‘헌치백(척추 장애인을 비하해서 부르는 말)’. 둘 다 기존 연극의 문법을 파괴한 형식으로 보이지 않는 존재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웠다.

고선웅이 직접 쓴 14년만의 창작극으로 주목받은 ‘유령’은 이상한 연극이다. 무연고자의 죽음을 다룬 신문 기사에서 출발한 현실고발적 무대지만, 리얼리즘 연극은 아니다. 브레히트 서사극의 소격효과를 노린 듯, 배우들은 자꾸만 ‘나는 내가 맡은 배역일 뿐’이라며 배우인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 악역을 맡은 이는 “나도 이런 대사 하기 싫다”고 토로하고, 분장사와 무대감독도 내내 들락거리며 이게 연극임을 강조한다. 객석에 앉아있던 배우가 못 참겠다며 무대로 뛰어들기도 한다.

고선웅
극중극 바깥에서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을 비추는 메타연극인 듯, 들여다보면 무연고자들의 소외된 삶을 연극판에 비유하고 있다. 가정폭력에서 탈출해 ‘배명순’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정순임’으로 16년을 살다 병원에서 죽기 위해 다시 ‘배명순’이 된 여인을 비롯해, 시체안치실에는 173일 동안 머물고 있는 시신도 있다. 사는 동안 ‘있어도 없는 존재’였으나, 죽음을 애도할 사람도 없어 지구를 떠나지 못한 이들에게 목소리를 주는 씻김굿이랄까.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연극 속 이야기일 뿐이라며 거리를 둔 무대는 시종 코믹하게 흘러간다. 고선웅 특유의 장엄한 엔딩이 이들의 비극적 삶을 배웅할 뿐. 개막 초 직접 전화 목소리로 출연했을 정도로 고선웅의 존재감이 크다. 배우들의 대사 속에 줄곧 ‘이런 이상한 연극을 만든 원흉’으로 등장하기도 하는데, 그는 왜 이런 이상한 연극을 만들었을까. ‘세상은 무대, 인간은 배우’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정순임의 삶도 배명순의 삶도 본인의 선택이었듯, 삶이 힘겹다면 그저 거대한 무대 위 선택한 배역을 연기하듯 한바탕 놀아보면 어떠냐는 권유다.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다.

연극 ‘헌치백’에서 중증장애를 가진 작가 이자와 샤카를 연기하는 장애 배우 차윤슬. [사진 국립극장]
신유청 연출이 2023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중증장애인 작가 이치카와 사와의 자전적 소설을 세계 최초로 무대화한 ‘헌치백’도 못잖게 이상하다. 선천성 근세관성 근병증을 가진 여성 ‘이자와 샤카’의 성적 욕망에 관한 이야기인데, 배우들은 서로 대사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객석을 향해 소설 속 문장을 던지고, 라이브 카메라가 주인공의 눈높이를 따라다닌다. 원작의 당사자성을 보존하기 위해 서술형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고, 장애 배우가 주인공을 연기한다.

“아이를 못 낳는다면 임신과 중절이라도 해보고 싶다” “다시 태어나면 고급창부가 되고 싶다”는 샤카의 욕망은 원초적인 듯 사회적이다. 샤카도 무연고자이나, 부모가 남긴 돈은 많다. 평생 아무런 사회적 마찰 없이 고립된 삶을 살아온 그는 웹소설 집필에 욕망을 투영하며 은밀한 이중생활을 하는데, 간병인 다나카가 눈치를 채자 “임신과 중절을 도와주면 1억 엔을 주겠다”며 목숨을 건 욕망 실천에 나선다.

신유청
장애 배우와 비장애 배우, 수어통역사가 다함께 샤카의 내면을 시끌벅적하게 쏟아내고, 역할이 아니라 배우의 이름이 달린 자막과 라이브 영상까지 시선을 빼앗는 무대가 정신없다는 지적도 있다. 주인공 샤카역을 장애 배우 ‘윤슬’과 비장애 배우 ‘은후’가 나눠맡지만, 사실은 상대역 다나카를 제외한 모든 배우가 샤카의 시점에 선 나레이터다. 수어통역사 4명도 대사 뿐 아니라 샤카의 내면까지 연기로 전달한다. 다소 정신없지만 어느 순간 노림수란 걸 깨닫는다. 이들은 마치 어수선한 파티에라도 온 양 질펀한 수다를 떨고 곧 춤이라도 출 것처럼 몸을 흔들며 샤카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대화체가 아닌 서술형 문장으로 이어지는 대사, 샤카의 웹소설이 AI 보이스처럼 미묘하게 어색한 낭독으로 소개되는 것도 샤카가, 아니 작가가 겪는 소통의 어려움을 실감시킨다. 신유청은 고독한 샤카의 내면에 파티를 열어주고 싶었던 것 아닐까.

“다나카씨의 르상티망을 빨고 있는 것 같아서 느낌이 좋다.” 샤카와 다나카의 관계를 니체의 ‘르상티망(ressentiment: 강자에 대한 약자의 원망스런 감정)’ 개념에 빗댄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장애인은 늘 약자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도 떠오른다. ‘무장애 연극’이 하나의 장르가 되고 있지만, 장애라는 벽을 넘어 비장애인에게도 순수하게 매력적인 무대는 처음 봤다. 장애 관객과 장애 배우를 1차원적으로 돕는 보조출연자의 튀는 존재감에 ‘무장애’란 단어가 무색해지곤 했었다. ‘장애에 대한 배려’를 전시하는 뻔한 형식이 아니라, 신유청은 전혀 다른 문법으로 비장애 관객에게도 직관적인 재미와 신선한 충격, 장애에 대한 깊은 통찰까지 선사했다. 원작 선택도 탁월했다. 내용과 형식의 모순 없는 ‘무장애 연극’의 탄생이랄까. 무장애 연극도 어느덧 진화하고 있다. 12~15일 국립극장에서 공연됐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