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에서 명상하면 이럴까…안토니 곰리·안도 다다오가 빚어낸 '우주'

문소영 2025. 6. 21.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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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산에 문 연 공간 ‘그라운드’
안토니 곰리가 안도 다다오와 협업한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 새 공간 ‘그라운드’. [사진 뮤지엄 산]
동굴에서 명상을 하다가 빛이 쏟아지는 바깥으로 나가는 게 이런 기분일까.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에 20일 개관한 거대한 반구형 공간 ‘그라운드(GROUND)’ 이야기다. 영국의 조각 거장 안토니 곰리(75)가 이 미술관을 설계한 일본의 건축 대가 안도 다다오(83)와 의기투합해 만든 공간이다. 인간의 몸과 자신의 인체 조각을 “장소”라고 부르고, 건축물을 “우리의 두 번째 몸”이라고 부르는 곰리가 처음으로 건축가와 협업해 ‘장소 속의 장소’ ‘몸 속의 몸’을 구현한 사례다.

‘조각 거장’ 곰리, 처음으로 건축가와 협업
미술관의 플라워 가든에 위치한 작은 콘크리트 건물 지하로 내려가 어두운 복도를 지나면 이 공간을 만나게 된다. 세상의 근원 같은 느낌을 주는 거대한 반구형 공간. 돔 천장의 둥근 하늘 구멍으로 해가 들어 은은한 빛이 감돌고 풍경은 시시각각 변한다. 바닥에는 인체를 블록 형태로 추상화한 철제 조각이 몸을 굽히거나 앉거나 누운 자세로 흩어져 있다. 고요히 명상하는 듯한 그들 너머로 반구형 입구가 열려 있다. 햇빛으로 하얗게 빛나는 입구 너머로 아득히 산의 푸른 능선들이 보인다. 입구를 나가면 산맥을 관조하는 듯한 또 하나의 인체 조각이 우뚝 서 있다.

이곳에서 관람자들은 7점의 조각들을 바라보기보다 조각과 같은 자세로 옆에 앉거나 서서 인공의 건축과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을 시간을 두고 고요히 온몸으로 느끼고 싶게 된다. “조각을 통해 신체를 형상화하자는 게 아니라 신체를 통한 감각을 관람객에게 떠올리게 한다”는 게 곰리의 의도다. 곰리는 19일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몸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느끼게 하는 매개체이고 조각은 그런 신체 감각의 촉매이며 ‘그라운드’는 감각을 회복하는 장소”라고 강조했다.

지난 19일 영국 조각가 안토니 곰리가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협업한 강원도 원주 뮤지엄 산의 새로운 공간 그라운드(GROUND)에 앉아 있다. [사진 뮤지엄 산]
“평생 처음으로 작품과 공간이 함께 자라는 경험을 했다”며 곰리는 이 공간에 만족한 듯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19일 전시장 개관을 기념해 열린 퍼포먼스 역시 곰리의 철학을 구현하는 실험이었다. 원로 무용가 홍신자와 생황 연주자 김효영이 조각들 사이를 누비며 관람자에게 “작품의 일부가 되라”고 권했다. 곰리는 “오늘 ‘그라운드’를 완성한 사람은 여러분”이라며 “예술가, 관람객, 작품이 하나 되는 마법 같은 경험”이라고 감격했다.

“로마의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돔 형태의 공간은 지름 25m, 높이 7.2m에 이르며 판테온의 4분의 3 규모다. 곰리는 “판테온이 닫힌 무덤이라면, ‘그라운드’는 열린 무덤이며 동시에 살아 있는 생명의 장”이라고 말했다.

곰리는 이곳에 흩어진 7점의 인체 조각들이 “공간에 무게를 더하는 닻이자 에너지를 불어넣는 배터리”가 되기를 원한다고 했다. “일본 교토 료안지(龍安寺)의 바위 정원에 있는 15개 돌처럼 고요하게 멈추는 일종의 정거장”이 되도록 의도했다는 것이다. 조각들의 색은 녹슨 붉은빛을 띠는데, 곰리는 이것이 “피와 흙, 태양의 색”을 닮았다고 했다. 녹이 스는 것은 “쇠락이 아닌 변화의 상징”이라며 “철은 시간이 지나면 흙으로 돌아가는 몸과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인간은 물질의 일시적인 집합체로서 (...) 언젠가 땅으로 돌아가죠. 우린 우리가 일시적인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걸 받아들일 때 그 또한 축하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유일하게 영구적인 것은 변화입니다. 불교 사상이죠”라고 말한 바 있다.

‘그라운드’ 개관 기념 곰리 개인전도 열려
뮤지엄 산 청조갤러리에서 11월 30일까지 열리는 곰리 개인전 '드로잉 온 스페이스'에 설치된 거대 작품 '오빗 필드 II'. [사진 뮤지엄 산]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디지털 시대에 조각은 낡은 예술이 아니냐는 질문에 곰리는 “사람들이 평면의 화면에 빠져 디바이스(전자장비)의 하인이 된 상태”라며 “조각은 신체 감각을 복원하고, 질문을 던지며, 직접적인 경험으로 초대한다”고 단언했다. 확실히 많은 전문가들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AI)의 시대에 인간이 갖는 차별성과 강점은 오로지 신체’라고 말하고 있다. 곰리는 ‘그라운드’는 우리가 망각해온 신체 감각을 회복하고 사유하는 장소라고 강조했다.

건축가 안도는 영상 메시지를 보내 “곰리 작가의 작품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고 죽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며 “이 작품이 앞으로 100년, 200년 후에도 남아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고 밝혔다.

한편 상설전시관인 ‘그라운드’ 개관을 기념해 뮤지엄 산의 본 전시장인 청조갤러리에서는 곰리의 개인전 ‘드로잉 온 스페이스(공간에 드로잉하기)’가 11월 30일까지 열린다. 조각 7점, 드로잉·판화 40점, 대형 설치작품 1점 등 총 48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1관에 전시된 ‘리미널 필드(경계의 장)’ 연작 조각들은 가느다란 금속 선으로 인체를 공기방울처럼 가볍고 유동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 인체와 그를 둘러싼 공간의 경계가 열려있고 서로 넘나드는 것이 인상적이다. 2관에 있는 드로잉과 판화들은 몸과 공간에 대한 곰리의 끝없는 질문과 탐구를 보여준다. 3관에 설치된 ‘오빗 필드(궤도의 장) II’는 얼핏 거대한 철사 꾸러미 같지만 잘 보면 두 가지 크기의 거대한 원들로 구성된 작품이다. 관람객은 그 사이를 걷고 통과하며 우주의 궤도와 같은 리듬을 체험하게 된다.

원주=문소영 기자 sym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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