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떠난 남편… 그의 유품 속 ‘구찌’ 벨트
[나의 실버타운 일기] (17)

남편이 떠나고 그의 방을 정리하는 데 몇 달이 걸렸습니다. 생각을 거듭하며 고인 물건을 남길 것과 버릴 것으로 분류했습니다. 가족에게 기념이 될 만한 것만 유품으로 가려내고 나머지는 다 폐기하기로 했습니다.
추리고 남은 것은 남편이 마지막까지 지니고 있던 모자와 문구류였어요. 아까워서 못 쓰던 샤프 펜슬, 각종 공책, 그 사이에 끼어 있던 몇 십 년 전 금강 구두표…. 무슨 기념일을 위해 내가 딸과 함께 백화점에서 처음 산 명품 시계는 무겁다고 차지 않아 작동이 멈춘 채 남아 있고, 손자를 위해 사 모았던 CD는 요즘 사용하지 않아 그냥 쌓아둔 게 여러 박스입니다.
폐기 처분할 잡동사니 속에서 벨트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로고가 간결한 구찌 벨트였어요. 생뚱맞게 웬 구찌 벨트? 오래전에 이민 갔다는 옛날 애인이 바다 건너 보내온 선물? 아니면 생전에 주변을 어른거리던 여자 친구 몇 사람 중 누군가가? 혹시 남대문시장에서 본인이 산 가짜 구찌? 남편은 치매 증상이 생기면서부터 남대문 도깨비 시장을 자주 드나들며 믹스트 넛 같은 미제 깡통을 사들이곤 했는데, 그때 사 온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가짜인지 진짜인지 알고나 샀을까?
이 출처 불명 구찌 벨트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리하다 이웃에 살던 60대 지인이 떠올랐습니다. 평소에 신세도 지며 같이 밥도 먹던 사이라 전화로 고인이 착용하던 구찌 벨트를 선물하고 싶다며 의향을 물었더니 당장 달려왔습니다. 카페에서 구찌 벨트를 받은 그는 악어 가죽띠까지 있다며 흥분한 듯 그 자리에서 자기 허리띠를 풀고 구찌 벨트로 바꿔 차는 거예요. 나는 당황해서 주변을 살폈는데 다행히 그 장면을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결국 남편의 유품 중에서 유일하게 환영받고 실제로 쓰이는 물건은 그 구찌 벨트뿐. 나는 가방 하나에 샤프 펜슬과 공책들을 넣어놓고, 지금처럼 하나씩 꺼내 쓰는 중입니다.
※필자(가명)는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은 한 실버타운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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