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위대한 개츠비와 대한민국의 꿈

2025. 6. 2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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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주콩고 대사
대선과정 내내 대한민국은 욕하기에 바빴다. 국가 지도자를 뽑는 신성한 정치축제에서 각 당은 어떻게든 이겨야 한다는 논리로 상대를 흠집 내서 자기 당 후보가 올라가는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했다. 국민은 비방과 욕설의 틈 속에서 피곤했다. 넘치는 음해 속에서 드는 생각. 우리는 과연 누군가를 그렇게 쉽게 비판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 역사는 실패 속에서도 전진하는 것
독일, 과거 잊지않고 민주국가 변모
한국, 계엄 있었지만 민주주의 회복
우리에게 필요한 건 분열 아닌 통합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1925)』의 첫 장에 이런 구절이 있다. “누구든 남을 비판하고 싶을 때면 언제나 이점을 명심하여라.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금주법이 시행되던 미국의 1920년대, 사람들은 주류 밀매로 엄청난 돈을 번 개츠비를 비난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젊은 장교 시절 뜨겁게 사랑했지만, 가진 게 없어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되어버린 옛 연인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목숨을 걸고 돈을 벌었던 것이다. 개츠비는 그녀의 집이 있는 강 건너편에 화려한 저택을 구입한 후, 성대한 파티를 열어 그녀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개츠비는 강 건너 그녀의 집 부두에서 나오는 ‘초록색 불빛(green light)’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안개만 끼지 않았더라면 만 건너에 있는 당신 집이 보였을 겁니다. 당신 집의 부두 끝에는 항상 밤새도록 초록색 불이 켜져 있더군요.” 그 초록색 불빛은 그의 삶의 목표이자 존재 이유였다. 그가 꿈꾸던 아메리칸 드림이었다. 그 꿈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에 있었으나, 끝내 잡지 못했다. 옛 연인의 사랑은 되찾았지만, 우연에 불운이 겹치면서 파국을 맞게 된다. 그러나 개츠비는 위대하다. 물질주의의 세상에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건 순수한 열정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

미국의 1920년대는 풍요와 쾌락의 시대였다. 이 시기는 ‘위대한 개츠비 시대(Great Gatsby Era)’로 불리며 개츠비와 함께 미국의 대중문화와 패션·영화·광고 등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어 왔다. 이 소설은 당시의 시대 풍자를 넘어 현대인의 욕망과 실존적 고독을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도 울림이 크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다. 그러나 인류는 이를 딛고 전진해왔다. 이 문장은 단순히 소설의 에필로그를 넘어 인류 역사의 중요한 단면을 포착하는 혜안을 보여준다. 인간의 삶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꿈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해왔다. 시대라는 거센 물결에 맞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었던 수많은 사람과집단 덕분에 인류가 진보해온 것이다.

역사는 이런 ‘조류를 거스르는 배’들의 이야기로 넘친다. 독일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홀로코스트’라는 유대인 대학살을 범해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겼다. 거기에 전후 분단이라는 정치적 수난까지 더하여 독일은 물결에 떠밀려가는 배였다. 그러나 독일은 자신의 과거를 망각하지 않았다. 1970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추념비 앞에서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무릎 꿇은 채 눈물을 흘리며 참회했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 국가의 책임인정, 나치 상징의 금지 등을 통해 독일은 과거와 단절했고,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변모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비상계엄으로 시작된 극단적인 정치적 분열은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트렸고, 우리는 과거로 떠밀려가는 듯했다. 예상외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구조적으로 취약했고, 제도적으로 불안정했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주의는 돌아왔다. 국가의 힘이 강한 듯 보였으나, 사회의 힘은 국가의 힘을 견제했다. 우리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공감이며, 분열이 아니라 통합이다. 이제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 가면서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대한민국을 전 세계에 보여줄 때다. 올해는 『위대한 개츠비』의 출간 100주년이다. 100년 전의 『위대한 개츠비』가 여전히 ‘지금’의 이야기이며 ‘우리의 이야기’라는 게 놀랍지 않은가. 우리는 개츠비의 세상에 살고 있다.

권기창 전 주우크라이나 대사·한국수입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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