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소파, 거대 정원도 뚝딱…무궁무진 한지 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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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에 매료된 젊은 공예가들
전주·문경·임실 등 전국에 18개 전통한지 공방이 있지만 그중 10곳만 새로 한지를 만들고, 8곳에선 재고 판매만 한다. 수작업으로 전통한지를 만드는 과정이 힘들어 전수자는 줄고, 기술을 보유한 장인은 나이 들어가는 상황이다. 아직도 대량 주문은 꿈 같은 일이지만, 최근 들어 젊은 작가들이 새로운 소재로 한지를 찾으면서 한지의 가치와 매력에 주목하는 눈길이 늘었다. 한지의 어떤 매력이 젊은 작가들을 반하게 했을까. 최근 국내외에서 한지를 소재로 활발히 작품 활동 중인 작가 네 명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2025 로에베재단 크래프트 프라이즈’ 파이널 30인에 선정된 이정인 작가의 한지로 만든 소파. [사진 로에베]](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21/joongangsunday/20250621000127607vwvw.jpg)
그중 이정인(40) 작가의 한지 소파 ‘소프트 랜드스케이프(A Soft Landscape)’는 나무나 금속 등 지지 구조가 보이지 않아 구름처럼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인다. 과연 앉을 수 있을까? “성인 남자 한 명이 앉고, 양쪽 팔걸이 부분에 두 명의 성인 남자가 동시에 걸터앉아도 문제없었어요. 한지는 물에는 취약하지만 여러 겹을 겹쳐서 말리면 놀라울 정도로 단단해지거든요.” 이 한지 소파는 작게 찢은 한지 조각 300장을 밀가루 풀로만 겹쳐 붙여 한 장의 커다란 레이어를 만들고, 이렇게 만든 레이어 130여 장을 또 겹쳐서 완성했다. 레이어 한 장을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4~5시간.

‘지금은 가구를 만들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작가는 현재 한지로 만들 수 있는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 중이다.
“한지에 밀가루풀을 바르면 굉장히 부드러워져서 어떤 표면, 어떤 형태에도 유연하게 붙죠. 그런데 마르면 엄청나게 견고해지죠. 무엇보다 어떤 쓰레기도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 좋아요. 플라스틱처럼 언제 그 가치가 바뀔지 모르고, 아예 만들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인공재료와 달리 한지는 자연에서 얻은 재료이고 1000년 동안 변하지 않은 가치를 지녔다는 점도 매력이죠.”
![디올의 아카이빙 전시 ‘디자이너 오브 드림’ 공간 중 김현주 작가가 한지로 꾸민 ‘에테르의 정원’. 수백 송이의 꽃, 20만여 개의 잎사귀로 가득하다. [사진 ⓒKYUNGSUB SHIN]](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21/joongangsunday/20250621000130244oiwa.jpg)
“크리스챤 디올의 프랑스 정원에 있는 장미·은망울꽃·등(나무)꽃, 한국의 달항아리에 주로 그려진 매화·소나무, 그리고 동서양에서 모두 사랑 받는 모란을 중심으로 동서양의 식물이 공존하는 상상의 정원을 구성했죠.”

가공되지 않은 천연 소재로 여러 작업을 해온 김 작가는 한지에 대해 “전통적인 동시에 미래적인 실험이 가능한 소재라 매력적”이라며 “작은 틀을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한지를 직접 만들 수도 있다”고 했다. 이번 정원의 꽃과 잎사귀 중 독특하고 두꺼운 질감의 한지는 김 작가가 직접 만든 것이다. “크리스챤 디올이 ‘꽃을 닮은 여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섬세함과 강인함을 옷에 동시에 표현한 것처럼, 저도 한지라는 매체를 통해 대비와 조화를 자유롭게 표현해보려고 해요.”
![고소미 작가가 한지를 꼬아 직접 만든 실 ‘소미사’와 철사로 만든 조명 작품. [사진 고소미]](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21/joongangsunday/20250621000132840ojui.jpg)
조병수 건축가를 비롯해 지랩, 포머티브 등의 건축 스튜디오와 함께 협업하며 독특한 힐링 인테리어 소품을 디자인하고 있는 고소미(47) 작가의 말이다.
고 작가의 대학 전공은 한국화다. 한지에 그림을 그리다 어느 날 ‘이 그림이 바람처럼 하늘에 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바람처럼 날릴 수 있는 한지의 물성 연구를 시작했고, 한지와 일본 화지를 비교하고 싶어 일본 타마미 미술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후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전 세계 섬유미술계 3대 선두주자 중 한 명인 다나카 히데오 교수를 사사하면서 한지와 함께 식물성 섬유를 함께 연구했다. 그 결과, 고 작가는 한지로 자기만의 독특한 실을 만든다. “양모 털로 실을 만드는 울 펠트 수업을 듣다가 물레에 종이를 넣고 돌리면 종이가 꼬이면서 실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명 ‘소미사’의 탄생이다.

고 작가는 한지의 매력이 자연스러움이라고 했다. “한지 끝은 매끈하게 잘려있지 않아요. 금방이라도 한올 한올 풀려서 날아갈 듯 포슬거리죠. 그 완벽하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여기와 저기를 언제라도 이을 수 있을 것 같아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 하죠.”
고 작가는 조명 덮개를 만들 때도 100% 한지로만 만든 소미사와 철사로 형태를 만들고, 닥나무를 삶아 이긴 죽에 빠뜨렸다가 꺼낸다. 그러면 접착제 없이 작품 표면에 한지 섬유가 붙고, 천천히 마르면서 자연스러운 면과 틈이 만들어진다. 빛은 그 사이로 자연스레 오간다.
![권중모 작가가 만든 한지 조명. 일정한 간격으로 접어 빛의 음과 영을 살렸다. [사진 권중모]](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6/21/joongangsunday/20250621000135508ztjm.jpg)

요즘 권 작가는 한지 조명에 ‘나만의 색’을 입히는 작업을 실험 중이다. “옻칠로 채색을 하는 방법이에요. 가장 하고 싶은 건 검정색을 완성하는 거죠. 검정 염료로 물들인 한지는 빛을 투과하지 않지만, 검정 옻칠을 얇게 한 한지는 아주 옅게 빛을 통과시키거든요. 옻칠의 두께에 따라 드라마틱하면서도 우아한 빛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기대가 커요.”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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