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갚은 내가 바보냐?”.. ‘5,000만 원 빚 탕감’에 터진 민심 역풍

제주방송 김지훈 2025. 6. 20.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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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만 명 대상 16조 탕감에.. 성실 납부자 분노 확산
“버티면 탕감, 갚으면 무대책?”.. 형평성 논란에 도덕적 해이 우려까지


“7년을 버티면 빚이 사라지고, 갚으면 아무것도 없다.”
정부가 장기 연체자 113만 명의 채무 16조 원을 최대 100%까지 탕감하는 ‘빚 리셋’ 계획을 공개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표 공약 중 하나로, 전국 단위 배드뱅크가 가동되고 정부 재정 4,000억 원이 투입됩니다.

문제는 ‘형평성’입니다.
그동안 매달 이자와 원금을 꼬박꼬박 상환해온 자영업자와 취약 차주들은 이번 정책의 대상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겐 재기의 사다리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성실함이 배제된 채 설계된 ‘질서의 붕괴 신호’로 읽힙니다.

그렇다면, 이 구제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그 비용은 누구의 몫이 되어야 할까?

SBS 캡처


■ “연체는 탕감, 상환은 무대책”.. 정부의 ‘이중구조 실험’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앞서 정부가 19일 발표한 2차 추가경정예산안에는 ‘장기 연체채권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포함됐습니다.
핵심은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 원 이하의 무담보 채무를 국가가 사들이고, 최대 100%까지 탕감하는 구조입니다.

대상자는 전국적으로 113만 4,000명에 이르며, 총 채권 규모는 16조 4,000억 원에 달합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신설되는 ‘배드뱅크’가 이들 장기 연체 채권을 금융사로부터 일괄 매입한 뒤, 연체자의 소득과 재산을 심사해 전액 소각하거나, 최대 80%까지 감면한 뒤 10년 분할상환 방식으로 조정하게 됩니다.

사업에 투입되는 예산은 8,000억 원으로, 이 가운데 절반은 정부 재정에서, 나머지 4,000억 원은 금융권 출연금으로 충당할 계획입니다.
사실상 민간 금융기관이 정부의 구제 비용을 공동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추심은 배드뱅크가 채권을 매입한 이후부터 중단되며, 아직 매입은 시행 전 단계입니다.
일부 금융권에서는 향후 대규모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이 금융시장에 도의적 책임을 강제하는 셈”이라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SBS 캡처


■ 현금보다 강한 감면.. 이번엔 ‘원금’이 지워진다

이번 조치는 역대 정부의 ‘빚 탕감’ 정책 중 규모와 강도 모두에서 가장 큽니다.
이전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장기 연체자 채무조정(6조 2,000억 원), 윤석열 정부의 ‘새출발기금’(30조 원)과 비교해도, 실제 대상 규모나 구조조정 강도 면에서 압도적입니다.

무엇보다 차별점은 바로 ‘원금’입니다.
이전에는 이자 감면이나 상환 유예에 그쳤지만, 이번에는 원금 자체를 최대 100%까지 지우는 방식이 핵심입니다.
연체 채권 중 약 60%는 조건만 충족하면 전액 소각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형평성입니다.
도박장, 유흥업소 운영자 등 기존 구제 대상에서 배제되던 업종까지 포함될 여지가 있어 논란은 더욱 확산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정책 기준의 설계가 도덕적 메시지를 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정부는 “사회적 약자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려는 조치”라며 정책 추진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대규모 채권 소각이 가져올 재정 부담, 금융권 손실, 신용 질서의 파장은 단발성 구제를 넘어서는 구조적 충격으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19일에 이어 20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관련 게시글과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성실하게 빚 갚은 사람이 오히려 손해 보는 구조’에 대한 반발 여론이 확인된다. 일부 캡처.


■ 그렇다면 갚은 사람은?.. “성실 상환자, 정책에서 지워졌다”

논란의 중심에는 ‘성실 상환자’가 있습니다.
그간 꾸준히 이자와 원금을 갚아온 자영업자와 개인사업자, 취약 차주들은 이번 채무 탕감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됐습니다.

말 그대로 ‘갚은 사람은 정책에 없다’는 구조입니다.
때문에 일부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버티면 탕감, 갚으면 손해”라는 반응이 쏟아집니다.

실제 온라인 커뮤니티와 자영업자 포럼, 재테크 게시판 등에는 “그동안 납부한 내가 바보냐”는 식의 불만이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상환을 유도하는 인센티브 없이 일방적인 탕감만 제시한 구조가 문제라는 지적도 이어집니다.

정책 설계의 불균형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성실 납부자에 대한 고려 없이 연체자 중심의 일괄 구제만 추진할 경우, 납세와 채무 상환에 대한 사회적 동기 자체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정책이 신뢰 대신 막무가내 ‘버팀’에 보상하는 구조로 비춰질 경우에, 장기적으로 금융 질서와 조세 인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정부는 “재기 가능성”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이번 정책이 결국 '신용'보다 '시간'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만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라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입니다.

SBS 캡처


■ 민간 압박과 ‘국가의 빚’.. 재정 건전성 경고등

이번 정책은 국채 발행을 포함한 30조 5,000억 원 규모의 2차 추가경정예산안과 맞물려 있습니다. 이로 인해 국가 채무는 올해 1,300조 6,000억 원까지 늘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49%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불과 10년 전인 2015년(37.8%) 대비 두 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특히 배드뱅크 운영에 필요한 8,000억 원 가운데 절반을 민간 금융기관의 출연금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은 ‘정책 비용의 민간 전가’라는 비판도 부르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정부 구제를 민간이 공동 부담하는 구조인 셈입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은 “갚지 않은 자에겐 혜택, 갚은 자에겐 무대책이라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국가 신용질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이 추경은 마중물이 아니라 무용지물이다. 결과적으로 이 빚은 이재명 정부가 아니라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할 몫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 (본인 페이스북 캡처)


■ ‘구조조정’ 아닌 ‘구조 불신’.. 탕감 이후가 없다면

정부는 이번 채무정리 정책을 “사회 통합과 비용 절감” 차원의 접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회를 조용히 지탱해온 성실 상환자들에게는 어떠한 보완책도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구조는 그저 구제책이 아닙니다.

‘버티면 탕감, 갚으면 손해’라는 인식이 고착될 경우에는 납세 순응도, 채무 상환률, 금융시장 신뢰도까지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습니다.

국가의 신용질서는 신호 하나에도 휘청이기 마련입니다.
한 금융계 관계자는 “정책이 진정한 재기를 원한다면, 빚을 지운 이후 설계도 필수”라며 “신용 회복, 자립 기반 강화, 그리고 성실 상환자에 대한 실질적 인센티브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또 다른 부채 순환만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빚을 지운다고 구조까지 바뀌진 않습니다.
국가는 숫자를 지우지만, 사회는 기준을 기억합니다.

이 정책이 진정한 희망이 되기 위해선 누군가에겐 침묵이 아니라 응답이, 누군가에겐 보상이 아닌 설계가 필요합니다.

성실함이 손해가 되는 사회에 회복은 없습니다.
그건 탕감이 아니라, 질서의 해체일 뿐입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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