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영의 사진집 이야기 <88> 라르스 툰비에르크 ‘사무실/LA 사무실’ ] 피로한 일상 담긴, 익숙하지만 낯설고 폐쇄적이며 비밀스러운 곳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2025. 6. 2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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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LA 사무실(Office/LA Office)’은 사무실의 다양한 풍경과 그 안에 놓인 인간의 불편한 존재감을 포착하고, 산업화와 세계화가 만든 인간소외적 풍경을 보여준다. 사무실 문화의 관료주의, 무질서, 따분함, 멜랑콜리를 담은 이 작업은 노동과 공간 그리고 인간 존재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들여다본다 / 사진 김진영

사무실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도착해, 정해진 자리에 앉고, 회의와 문서 작업, 메신저 알림음 속에서 하루가 지나간다. 생산성과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설계된 곳에서 개인의 감정이나 리듬은 억제되고, 각자의 몸은 규격화된 책상과 형광등 아래에 기능적으로 배치된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공간이 시간이 지날수록 당연해지고, 당연함은 곧 무감각함으로 변한다.

스웨덴 사진가 라르스 툰비에르크(Lars Tunbjörk)는 이러한 익숙한 무감각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낯설게 드러낸다. 그는 지역신문의 보도 사진가로 시작해 점차 자신만의 다큐멘터리 스타일을 정립한 작가다. 일상의 풍경을 이질적이고 때로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현대인의 삶 속에 스며든 무기력함과 아이러니를 포착해 왔다. 플래시를 강하게 사용함으로써 일상 속 부조리한 면을 부각하는 그의 스타일은 스웨덴에서 ‘툰비에르크식’이라고 불린다. 마틴 파와 개리 배저는 ‘더 포토북: 히스토리(The Photo-book: A History)’에서 그에 대해 “현대 삶의 예리한 관찰자”라고 말한 바 있다.

사진작가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흔하지만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장소’인 사무실 공간에 흥미를 느꼈다. 사진가는 흥미로운 사진을 찍기 위해 곧잘 새롭고 난해한 장소를 찾아 떠난다. 하지만 툰비에르크는 일상 속 가장 평범한 공간에서 새로운 장면을 발견하기 위해 5년간 세계 곳곳의 업무 공간을 탐색했다.

그의 대표작인 ‘사무실/LA 사무실(Office/LA Office)’은 사무실의 다양한 풍경과 그 안에 있는 인간의 불편한 존재감을 포착하고 산업화와 세계화가 만든 인간소외적 풍경을 보여준다. 사무실 문화의 관료주의, 무질서, 따분함, 멜랑콜리를 담은 이 작업은 노동과 공간 그리고 인간 존재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들여다본다.

이 사진의 가장 큰 특징은 사무실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때로는 기이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우리는 사진 속에서 형광등 불빛 아래 파스텔 톤으로 칠해진 벽, 회색 카펫, 전형적인 사무 가구와 어울리지 않는 인물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표정이 없거나 무표정에 가까우며, 어색한 자세로 앉아 있거나 넋을 놓고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는 책상 밑에 숨어 있고 누군가는 비좁은 공간에 몸을 욱여넣고 있다. 이처럼 공간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장면은 툰비에르크 특유의 유머와 불편함이 교차하는 지점을 형성한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공간 자체가 가진 ‘기능성의 미학’이다. 사무실이라는 공간은 생산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다. 효율, 규칙성, 통제, 청결함이 우선시되는 곳이다. 그러나 툰비에르크는 그 기능성 이면에 있는 부조리와 비인간성을 포착한다. 인간은 그 공간 속에서 오히려 비능률적이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며, 공간에 ‘맞지 않게’ 존재한다. 편해 보이지 않고 경직된 인물과 공간의 부조화를 통해 오늘날 노동의 현실과 인간의 몸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책에는 다양한 나라의 사무 환경이 담겨 있다. 스웨덴의 통신 회사, 일본의 자동차 회사, 미국의 은행 등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의 각국 사무실이 등장한다. 그러나 작가는 이질적인 문화를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공통점을 드러내는 데 주안점을 둔다.

어떤 나라 사무실이든 공간은 비슷한 구조와 배색, 조명, 가구로 구성되어 있고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어딘가 피로하고 무력해 보인다. 이는 오늘날 사무실이라는 공간이 글로벌 표준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즉, 자본과 효율이 지배하는 세계화된 노동 환경 속에서 인간은 국적이나 문화와 무관하게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간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러면서도 툰비에르크는 진기한 광경이라도 본 듯 사무실에서 독특한 장면을 찾아낸다. 거대한 컴퓨터와 그 뒤에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선, 수많은 종이와 서류, 버려진 사무실 간식, 팩스가 계속 들어와 바닥까지 늘어뜨려진 종이, 방금 정리되어 쓰레기가 들어있지 않은 깨끗한 쓰레기통 등을 그는 들여다본다.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오브제와 심각한 얼굴로 일하는 사람의 병치(竝置)는 기묘할 뿐 아니라 묘하게 슬프기까지 하다.

이 책은 오늘날의 노동, 공간, 인간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매일 드나드는 사무실과 익숙한 공간이 실은 얼마나 표준화되어 있고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억눌러온 장소였는지를 보여준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람에게 이 책은 이렇게 질문하는 듯하다. ‘당신은 이 공간에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가?’

‘사무실/LA 사무실’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사무실이라는 공간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며,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현대의 익명화된 삶과 감정의 소거, 공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시각적으로 탐구한 이 작업은 강력하게 현대사회의 실체를 비추고 있다.

사무실/LA 사무실’ 표지 /사진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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