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뚜껑 열리는 맨홀…"예산 없어" 추락방지시설 설치율 고작 8%
[편집자주] 장마철이 시작됐다. 폭우 피해가 우려된다. 매년 반복된다. 올해는 더욱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산불 피해 지역이 폭우에 더욱 취약해서다.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하자마자 재해 예방을 강조했다. 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 방안을 꼼꼼히 챙길 필요가 있다.

#지난 14일 부산에서 폭우로 뚜껑이 열린 맨홀에 30대 여성이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22년 8월 폭우 당시 서울에서 시민이 맨홀에 빠져 숨지는 사고를 계기로 환경부는 맨홀 내 추락방지시설 설치를 의무화했다. 2년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부산 맨홀에는 추락방지시설이 존재하지 않았다.
장마철을 앞두고 맨홀 사고에 대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진다. 맨홀 내 추락방지시설 설치가 환경부 고시로 의무화됐음에도 실제 설치율은 7.7%로 매우 낮아서다. 전국에 설치된 맨홀 10개 중 9개에 추락방지시설이 없는 실정이다. 지방자치단체 예산 부족이 미설치 요인으로 꼽힌다.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가 각각 '중점관리구역'으로 지정한 맨홀 중에서도 13.6%만 추락방지시설이 설치된 것으로 나타났다. 중점관리구역은 하천변이나 상습침수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것으로 우려되는 지역을 말한다.
광역자치단체별 중점관리구역 설치율 순위를 따져본 결과 제주 지역 설치율이 약 59.3%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다. 대구(42.5%)와 서울(36.3%)이 그 뒤를 이었지만 설치율 50%를 넘기지는 못했다.
설치율 하위 3곳은 전북(0.07%), 세종(0.25%), 광주(3.2%)로 나타났다. 맨홀 8만4000여개를 두고 있는 울산시는 중점관리가 필요한 구역을 애초 0곳으로 봐 유의미한 통계가 집계되지 못했다.

서울시는 추락방지시설 설치가 필요한 맨홀을 전체 28만8000여개 중 5만3000여개로 본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2년부터 지난 5월까지 서울 시내 총 3만2960개 맨홀에 추락방지시설이 설치됐다.
설치율을 기준으로 보면 서울 25개 자치구 중 양천구가 설치율 101.9%를 기록해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이어 동작구(92.1%), 송파구(88.1%), 서초구(85%), 성동구(79.7%) 순으로 집계됐다. 하위 5곳은 용산구(34.3%), 중랑구(41.8%), 중구(45.7%), 도봉구(49.4%), 영등포구(49.5%)로 파악됐다. 2022년 집중호우로 침수 등 피해를 겪었던 강남구와 관악구의 설치율은 각각 65.5%, 58.6%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발행된 서울연구원의 '하수도 맨홀 내 추락방지시설 설치 설계기준 도출' 자료를 보면 추락방지시설을 28만여개 맨홀에 모두 적용하기에 비용적 부담이 있기 때문에 서울시는 침수취약지역과 하수도 역류 구간에 장치를 우선 도입한 뒤 점진 확대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실제 서울시는 지난해 말 특별교부금을 추가로 받아 올해 설치 예산을 확보했다. 1개소당 100만원으로 비용을 잡았고 2만여개를 추가 설치하려면 200억원가량이 소요된다.
서울시는 오는 11월까지는 우선 도입 대상인 5만3000여개 맨홀에 추락방지시설 설치율을 100%로 끌어올리겠다는 방침이다. 또 연내 하수도 관리 전산시스템에 자치구별 맨홀 내 추락방지시설 설치 현황 DB(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예정이다. 관련 사업을 맡은 서울시 물재생계획과 관계자는 "자치구 예산만으로 부족하다 보니 2022년부터 서울시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다"며 "올해까지 (설치 대상 기준) 설치를 모두 완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함은구 을지대학교 안전공학전공 교수는 "비용이 크게 드는 부분이 아닌데 조례로 전용하는 예산을 확보하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라며 "(조례로 정하려면) 시의회 결정을 거쳐야 하겠지만 급한 상황에 협조를 얻는 데 여야 구분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재정 자립도가 낮은 지자체는 여전히 예산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전북도 물통합관리과 관계자는 "설치 실적이 저조한 부분이 있는데 중점관리구역을 우선으로 시군 예산 상황에 따라 점차 설치하고 있다"며 "국비 지원이 있다면 시군에 예산을 지원해볼 수 있겠지만 전북도도 여력이 없어서 도에서 따로 지원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국비로 전국 지자체에 추락방지시설 설치 예산을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부 지자체는 재정이 열악한 상황"이라면서도 "새로 시설을 짓거나 노후 관로를 교체하는 등의 정비 사업은 국비를 지원하지만 하수도 시설 유지관리는 지자체가 하는 것이어서 기존 맨홀의 적정 관리를 위해 국비를 지원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김미루 기자 miroo@mt.co.kr 박진호 기자 zzin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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