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지탱했던 神·가치의 몰락… 인간의‘피와 살’도 사라지다[서동욱의 세계의 산책자]
니체,‘즐거운 지식’에서
“우리가 신을 죽였다…
밤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獨시인 하이네 “신은 환영”
칸트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로베스피에르 혁명과 비교해
“신의 목을 잘랐다” 표현도
신을 죽인 인간에겐
‘사유의 과제’ 남겨져
삶의 유한성 마주하는 것
하이데거 “피조물 인간이
의지할 아무것도 안남아“

‘신은 죽었다. 그리고 인간도 죽었다.’ 다소 유치해 보이는, 다소 치기 어려 보이는, 한마디로 중2병적으로 보이는, 그리고 무엇보다 썰렁하게 코믹해 보이는 이 제목을, 나름대로 근현대사상사를 요약하는 것이라 평가하며, 독자 제위께 음미해 보시라 권해 본다.
‘신은 죽었다’는 말은 니체를 통해서 유명해졌다. 그러나 신이 니체의 선언과 더불어 처음으로 죽음을 맞이하진 않았다. 급진적인 철학자마다 신의 해골을 목에 걸고 있으므로 신은 게임의 주인공처럼 여러 번 죽는다.
적어도 근대 사상에서 니체 이전에 신을 죽인 중요한 철학자는 칸트이다. 로베스피에르를 통해 현신한 프랑스의 급진적인 정치사상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 왕의 목을 잘랐다면,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 불리는 독일의 새로운 철학적 기풍은 칸트로 하여금 신의 목을 자르게 했다. 이 두 도살자의 이야기를 독일 시인 하이네는 ‘독일의 종교와 철학의 역사에 대하여’(태경섭 역)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사유의 제국의 위대한 파괴자인 이마누엘 칸트는 테러리즘이라는 면에서 로베스피에르를 훨씬 능가했지만, 이 두 사람을 비교할 때면 몇 가지 비슷한 점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두 사람은 칼로 자르는 듯한 엄격하고 감상이 없는 냉정한 정직함을 공유했다. 그리고 불신이라는 동일한 재능을 소유했다. 한 사람은 그것을 사유에 적용해서 비판이라 명명했고, 다른 한 사람은 그것을 인간에게 적용하여 공화주의적 덕성이라 칭했다.…한 사람은 왕을, 다른 한 사람은 신을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그리고 그들은 정확한 무게를 달았다!”
불신의 재능을 가지고서 로베스피에르는 왕정 시대 구제도를 의심에 부쳤고, 칸트는 중세 철학 이래 신이 존재한다는 확신을 의심에 부쳤다. 왕과 신은 모두 무자비한 저울 위에 올려졌고, 신뢰의 함량이 모자란다고 판결 난 이들의 목은 잘려나갔다. 하나는 단두대 위에서,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신 존재 증명에 대한 비판 속에서.
칸트의 결론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 마음에 만연한 ‘환영(幻影)’이라는 것이다. 하이네는 쓴다. “신은 자연스러운 환영의 산물이다.…‘희망을 포기하라!’는 단테의 말을 우리는 ‘순수이성비판’의 이 장 위에 써야 한다.” ‘희망을 포기하라!’는 문구는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의 입구에 쓰여 있는 문구이다. 이제 신과 그의 천국은 실존하지 않는다. “자비도 아버지의 은혜도 이승의 단념에 대한 저승의 보상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영혼의 불멸성은 숨을 거두기 직전이다.”
하이네는 칸트를 로베스피에르와 비교함으로써, 실존하는 신의 죽음에 대한 칸트의 견해가 가지는 혁명성을 성공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신을 죽인 자로서의 칸트에 대한 하이네의 저러한 묘사를 전제하고서만,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이규현 역)에서 결론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니체를 경유해야만 한다. 니체는 ‘즐거운 지식’의 125절 ‘미친 사람’에서 신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밝은 대낮에 등불을 들고 거리를 쏘다니며 ‘나는 신을 찾는다’라고 외치는 광인이 있다. 그는 사람들을 쏘아보며 외친다. 너희들과 내가, 우리가 신을 죽였다! 신을 매장하는 인부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가? 신이 썩어들어가는 저 냄새를 아직 맡지 못했는가? 미친 사람은 대낮에도 등불을 켜야 하지 않는지 묻는다. 밤은 점점 짙어지고 있다.

신은 죽었고, 세상엔 밤이 왔다. 신이 죽었다는 것은, 니체가 염증을 내던 기독교적 신의 죽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고대인들의 이데아를 중심으로, 중세인들의 신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 짜인 세상의 다양한 가치들의 직조물 자체가 누더기가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기독교적 신의 죽음 뒤에 그 신이 가졌던 자리가 ‘아버지’에게 상속되었다면, 진정한 신의 죽음은 ‘신의 자리’의 파괴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부성적 원리, 즉 오이디푸스를 개인과 사회 모두의 차원에서 욕망에 대한 억압자로서 파괴하고자 했던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는 신의 죽음을 사유한 가장 최근의 형태일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전통적 가치의 와해는 단지 신의 죽음 속에서만 사유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신의 죽음’과 긴밀히 연관된 ‘인간의 죽음’을 통해서도 사유되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읽은 하이네의 저 구절이 알려주듯 신을 죽인 자는 니체 이전에 먼저 칸트이다. 칸트에게서 신의 죽음이란, 신의 실존 여부에 대해서 결코 알 수 없는 인간의 무능력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이 무능력을 인간의 ‘유한성’이란 말로 바꾸어 써도 좋을 것이다. 요컨대 칸트에게서 신의 죽음과 인간의 유한성은 맞물려 있다. 이 점에 대해 미셸 푸코는 ‘말과 사물’ 마지막 부분에서 적절히 쓰고 있다.
“신의 죽음과 최후의 인간이 이해관계를 같이한다는 것은 명백해진다.…신을 죽인 자로 자처하고 이 살해의 자유와 결정을 삶으로 구현하는 것은 최후의 인간이 아닐까?…신을 죽였으므로 자기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만, 최후의 인간이 말하고 사유하고 살아가는 것은 바로 신의 죽음 속에서이므로…인간은 곧 사라질 것이다.”
신을 죽인 뒤 남겨진 최후의 인간은 바로 이 살해의 추억 속에서 살아간다. 달리 말해, 신의 생존을 확인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남겨진 사유의 과제란 이제 자신의 유한성을 이해하는 일이다. 유한성의 형식 속에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학문을 ‘인간학’이라 부른다. 칸트는, 신이 세계에 부여했던 가치들을 어떻게 유한한 인간이 대신 떠맡을 수 있을지, ‘순수이성비판’으로 대표되는 ‘비판철학’과 20여 년 동안 강의 주제로 다루었던 ‘인간학’을 통해 고심해야 했던 것이다. 가령 신이 더 이상 주관하지 못하는, ‘세계가 향하는 목적’을 이제 인간 이성이 대신 주관할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에 대한 고심.
그러나 인간학은 인간을 그의 당면한 죽음에서 영구히 구해주지는 못한다. 인간학이 탄생시킨 근대의 이 인간은 결국 니체를 통해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다.
신의 죽음이 곧 인간의 죽음으로 귀결되리라는 것을 하이데거는 니체에 관한 글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신상희 역)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현실적인 모든 것이 추구하는 근원적 목적으로서의 신이, 즉 초감성적인 근본 바탕으로서의 신이 죽었다고 한다면, 이념들의 초감성적 세계가 자신의 구속력(지배능력)을 상실할 뿐만 아니라 특히 무엇보다도 자신의 고무적인 힘과 건설적인 힘을 상실했다고 한다면, 인간이 의지하고 따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즉 신이 죽었다면, 피조물인 인간 저 혼자서는 인간이 의지하고 있던 가치를 지켜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의지했던 가치의 몰락(허무주의)과 함께 그 가치가 피와 살을 이루었던 인간 역시 사라지는 것이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생각은 인간의 죽음을 기록하고 있는, 푸코의 ‘말과 사물’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오늘날의 사유가 필시 인간학의 근절을 위해 기울일 최초의 노력은 아마 니체의 경험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니체는 인간과 신이 서로에게 속하고 신의 죽음이 인간의 사라짐과 같은 뜻을 지니고 약속된 초인의 출현이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임박한 죽음을 온전히 의미하는 지점을 발견했다.”

신의 죽음과 인간의 죽음이 별개로 있는 것이 아니다. 신의 죽음의 완성이 곧 인간의 죽음이다. 각종 ‘인간학’이 신이 죽으면서 남긴 가치의 상속자로 인간의 이성을 지목하려 할지라도, 철학의 시선이 이제 가닿는 사업은 목적론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상속받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 이성이 가질 수 있는 덕목 저편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이 펼쳐질 수 있도록 살피는 일이다. 푸코는 말한다. “철학의 영역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Was is der Mensch?)라는 질문의 도정은 그 질문을 거부하고 무력하게 만드는 초인(der Ubermensch)이라는 답변을 통해 완성된다.”(김광철 역) 인간의 죽음이 인간을 넘어서는 자, 초인의 개념을 살피도록 우리를 부추긴다.
서강대 철학과 교수
■ 인물 설명 - 로베스피에르(1758~1794)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정치가이자 법률가. 혁명 이후 국민공회(국회)가 들어서자 국민공회를 장악하고는 공포정치를 펼쳤다. 1년 남짓한 그의 공포정치 기간 약 1만7000명이 단두대에 의해 처형당했다. 결국, 로베스피에르 역시 농민 봉기 이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며 최후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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