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추기를 바랐던 그 겨울의 우리 [비장의 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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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과 록다운,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
"겨울이 배경인 많은 영화에서 눈은 이미 충분히 보았다. 그래서 나는 얼음에 주목했다. 낮은 온도에서는 빨리 얼어 단단해지지만 한번 녹기 시작하면 금방 다시 물로 돌아가는 얼음처럼, 청춘의 시간도 영원하지 않다. 모든 관계는 빠르게 녹아 없어지고 남는 건 늘 기억뿐이다(앤서니 첸 감독)."
그들의 '겨울'이 때때로 나의 '거울'이 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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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앤서니 첸
출연: 저우둥위, 류하오란, 취추샤오

팬데믹과 록다운,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 극장이 문을 닫고 관객은 마음을 닫았다. 영화의 미래도 함께 닫힐까 두려웠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기 앞에서 그는 결심했다.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방식으로” 영화를 한 편 만들어보기로. 어쩌면 오기, 아마도 용기.
배경은 꼭 겨울이어야 했다. 싱가포르에서 나고 자란 그에겐 가장 낯선 계절이니까. 주인공은 반드시 젊은 친구들일 것. 나이 든 인물의 가족 드라마를 연이어 만든 그에겐 가장 낯선 나이대의 인물이므로. 이제 촬영 장소를 고르는 일만 남았다. 가본 적 없는 제일 낯선 곳을 수소문했다.
백두산이 좋더라는 지인의 얘기를 듣고 직접 올라가 보았다. 어떤 “영적인 기운이 충만한 대자연”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백두산과 가까운 옌볜(연변) 조선족자치주 옌지(연길)시의 기묘한 풍경도 잊히지 않았다. “중국 도시인데도 한글 간판이 더 많이 보이는” 변방의 경계도시에서 각자 흔들리고 함께 방황하는 세 청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겨울이 배경인 많은 영화에서 눈은 이미 충분히 보았다. 그래서 나는 얼음에 주목했다. 낮은 온도에서는 빨리 얼어 단단해지지만 한번 녹기 시작하면 금방 다시 물로 돌아가는 얼음처럼, 청춘의 시간도 영원하지 않다. 모든 관계는 빠르게 녹아 없어지고 남는 건 늘 기억뿐이다(앤서니 첸 감독).”
그래서 제목이 〈브레이킹 아이스〉. 2013년 66회 칸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신인감독상) 수상자 앤서니 첸 감독의 신작. 모든 걸 꼼꼼히 준비한 뒤 빈틈없는 연출로 영화를 만들던 그가, 촬영 시작 열흘 전까지 시나리오조차 완성하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 캐스팅부터 해놓고 배우들과 함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소년시절의 너〉 그리고 〈먼 훗날 우리〉의 주인공 저우둥위 배우가 가장 먼저 이야기의 출발선에 선다.
옌지에서 여행 가이드로 일하는 나나(저우둥위). 우연히 외지에서 온 여행자 하오펑(류하오란)을 돕게 되고 친구 샤오(취추샤오)까지 합세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다음 날, 돌아가는 비행기를 놓친 하오펑. 며칠 더 어울려 놀기로 하는 세 사람. 함께 백두산으로 떠난다. 돌아올 땐 모든 것이 달라져 있다. 세상은 여전히 겨울이지만 어떤 이의 계절은 더 이상 겨울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영화엔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카메라 앞, 방황하는 세 청춘의 이야기. 그리고 카메라 뒤, 나의 이야기. 배우들과 함께 웃고 먹고 마시며 다시 젊음을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그만큼 이 영화는 나에게도 정말 특별하다(앤서니 첸 감독).”
특별할 것 없어 보이던 작은 영화 한 편이 나에게도 아주 특별한 영화로 남았다. “이 작품을 정말 좋아한다”라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심심한 한 줄 평이, 실은 가장 솔직한 마음을 담은 고백이라는 걸 이젠 나도 알아버렸다. 그들의 ‘겨울’이 때때로 나의 ‘거울’이 되는 이야기였다.
영화 속 한 장면. 하오펑의 멈춰버린 손목시계. 시계는 멈추어도 시간은 간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가더라도 계속 그 자리에 붙잡혀 있는 ‘나만의 시간’이란 것도 있다. 누구는 ‘청춘’이라고 부르고 누구는 ‘시절’이라고 부르고, 아마도 이 세 친구는 ‘그해 겨울’이라고 부르게 될.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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